우리는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저는 글을 느리게 씁니다. 이렇게 쓸까 저렇게 쓸까 고민하며 씁니다. 글을 손보는(데스킹 하는) 선배가 알면 기겁하겠지만 사실입니다. 취재원이 한 말을 곱씹어보고, 참고할 만한 자료를 계속해서 찾아봅니다. 심지어 이 글은 몇 달째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이제는 쓰고 싶습니다. 이러다 영영 못 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만나고 싶은 분이 있나요. 저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하야시 에이다이. 이 이름은 몇 년 전 러시아 사할린을 취재하면서 들었습니다. 학자들은 "하야시 기자 덕분에 사할린 조선인 학살사건이 밝혀졌다"고 말했습니다. 취재력보다 놀라운 건 태도였습니다. "하야시 기자는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고통을 느끼려고 그때 그 조선인처럼 얇게 입고 사할린 취재를 떠났다"고 합니다.
한동안 그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분이 낸 '치쿠호, 군함도-조선인 강제연행, 그 후' 덕분입니다. 책은 군함도에 살았던 조선인의 강제동원 사실을 다각적으로 담았다고 하네요. 저는 이 책을 연구자가 건네준 PDF 파일로 처음 접했습니다. (책 실물 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즈음 하야시 에이다이를 다룬 기사를 읽었습니다. '50년간 조선인 강제연행을 기록해온 85세 일본인 작가'가 살아계신다니... 만나고 싶었습니다. 기사를 쓴 이령경 편집위원에게 "하야시 선생을 만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하야시 기자의 따님은 이 위원에게 "아버지 건강이 악화돼 만날 수 없다"고 했다더군요.
지난해 6월, 그와의 인연을 기대하며 무작정 일본에 갔습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2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그의 마을 고도지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이 마을에 있는 다가와석탄역사박물관을 둘러봤습니다. 그가 산다는 아리랑문고를 들를 수 있었지만 관뒀습니다. 구경꾼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길 바랐습니다. 그의 군함도 취재기를 듣고 보완해야 할 부분을 여쭙고 싶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기차를 1시간가량 타고 고쿠라 역에 내려, 고쿠라교회로 향했습니다.
이곳에 하야시 에이다이 기자의 취재 기록이 전시돼 있거든요.
전시를 보면 하야시 선생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전시공간은 고쿠라교회를 세운 최창화 목사님과 하야시 에이다이 선생의 인연으로 10여년 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이곳에는 그가 50여 년간 사할린에서 오키나와까지 취재한 기록이 전시돼 있습니다. 그의 취재기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공적 공간이지요. 고쿠라교회가 그의 취재물을 공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국가기록원이 하야시 선생의 기록을 기증받지 않았을까요.(기증 작업은 지난해에 이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어 달 지난 8월 26일.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초청된 하야시 선생의 다큐를 이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봤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분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주최 측에서 "하야시 선생의 건강이 나아졌다"고 하자 반가움은 더해졌습니다. 언젠가 이 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영화관을 나설 때 페이스북 친구인 아사히신문 기자가 제게 그러더군요.
"편지나 감상기를 써주면 제가 일본어로 번역해 하야시 선생님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인연이 시작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분께 편지를 쓰려고 하야시 선생의 저작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 강제동원을 연구한 그의 저작이 한국에 얼마나 발간됐는지 알아봤습니다.
그의 동의를 얻어 출간된 책은 절판됐고, 나머지 책은 해적판이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그의 대표작인 자료집(전집)은 복사본으로 유통됐더군요.
다큐를 보고 열흘이나 지났을까.
9월 1일 그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한겨레 김효순 대기자가 추모 기사를 썼더군요.
‘하야시가 세상을 떠난 날은 묘하게도 1923년 조선인 학살의 비극을 가져온 간토대지진 발생일이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날로 심해져 1일 도쿄에서 열린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처음으로 추도문을 보내는 것조차 거부했다. 하야시의 후계자는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일본 사회는 그저 부음 기사 하나로 그를 완전히 묻어버릴 것인가? 또한 한국 사회는 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11월 12일, 하야시 선생의 추모식이 열리는 후쿠오카를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