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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Nov 02. 2023

김성태 국군포로의
유언을 들어주세요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잠수를 오랫동안 탔네요.

그동안 갑작스레 퇴사를 하면서 힘든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는데요.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두려워졌습니다. 

브런치를 비롯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대인기피증일 겁니다.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니 그렇게 되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을 향해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생기네요. 

10년 정도 노력해 책을 만들었을 때조차 부끄러워서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는데요. 

부채감과 죄책감, 책임감과 미안함이 엉켜서 오늘 이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고 공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이 좀 많이 무거울 수도 있는데요. 조금 더 읽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오늘(11월 1일) 김성태 6.25전쟁 귀환 국군포로 분의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2023년 10월 31일 밤 9시 20분 경에 돌아가셨거든요.


경기 성남에 위치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가는길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외부 모습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1층에 마련된 안내판
김성태 6.25전쟁 귀환 국군포로의 빈소


6.25전쟁 정전협정 이후 한국 사회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은 5만~10만명으로 추산되는데요. 

6.25전쟁 국군포로들은 북한 사회에서 처참하게 살면서도 '누군가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까' 기대했대요. 

40년 이상 북한 땅에서 억류됐던 이분들은 기다리다 지쳐 1994년부터 '자신의 힘으로' 탈북했습니다. 

남한 땅에 안착한 분들은 모두 80명인데요. 2023년 11월 1일 현재 10명만이 생존해 계십니다. 


저는 2013년부터 10년 동안 띄엄띄엄 한국사회로 돌아온 국군포로들을 취재했는데요. 

얼마전에 가까스로 깊은바다돌고래 출판사를 만들어 취재한 결과물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책 제목은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6.25전쟁 귀환 국군포로 9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저는 책 뒷표지에는 이렇게 써두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들을 둔 사람은 대부분 아들을 군대에 보낸다. 그럼에도 내가 "국군포로를 취재한다"고 하면 대다수 사람은 "너무 오래된 주제,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주제를 취재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국군포로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내 아들이 경험할 수도 있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분들의 생이 다하기 전에 '가공하지 않은 목소리'를 책에 담았다. 


즐기면서 일해야 능률이 오른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일하지 않았다. 부채감으로 취재하고 기록했다. 부채감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모르겠다. 군대를 가지 않아서 그런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접해서 그런지 알 수 없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두운 내용을 취재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그분들의 어머니가 느꼈을 고통을 생각하면 그만둘 수 없었다. 나 역시 아들을 둔 어미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속내를 좀 더 보여드리고 싶은데요. 사실은 이렇게 정제된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건 바로 한 어르신이 수박을 자꾸만 먹고 가라고 하셨기 때문이에요.  

2013년 서울 중계동에서 만난 어르신은 귀환 국군포로분들과 함께 계셨는데요. 

여러번 제 옷깃을 잡으며 "더운데 수박 하나 잡숫고 가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허리가 굽은 정많은 그분을 보고 먹먹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의 참혹한 일생을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제가 엄청 착하거나 사명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예요. 


예전에 사이판, 팔라우를 다니면서 위안부 취재를 해보려고 노력해봤거든요. 

https://weekly.donga.com/coverstory/3/01/11/94657/1

러시아 사할린에 가서 강제동원 피해자 취재를 해보려고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고요.

https://weekly.donga.com/coverstory/3/01/11/94330/1 

그런데 피해자가 돌아가신 상황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저는 계속 절망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국군포로에 눈길을 돌렸습니다.


김성태 어르신은 2020년에 연락드렸을 때 허리가 아프다며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셨는데요. 

다행히 시간을 내주셔서 2022년 9월 19일에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책에 실릴 어르신의 인터뷰 원고를 확인하기 위해서 2023년 5월 10일에 찾아뵈었고요. 

책을 전달해드리려고 2023년 7월 21일에 뵈었는데요. 그날이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네요. 


저는 책을 드리러 가서 엄청난 환대를 받고 왔습니다. 

어르신은 "어제 밤에 나가서 치킨 두마리를 사왔다"고 하셨습니다. 

더운 여름날이었는데요. 어르신은 베란다에서 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전동차를 타고 나가서 국수를 사오겠다"고 하셔서 요양보호사님께 한소리를 듣기도 하셨는데요.  

과일도 자꾸만 권하셨어요. 집에 갈 때는 "책 써줘서 고맙다"며 참외, 복숭아가 가득 든 봉지를 주셨고요.

 

저는 집에 가면서 '2013년에 내게 자꾸만 수박을 권했던 분이 이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성태 어르신이 맞을 거예요. 이렇게 다정다감한 분은 굉장히 드무니까요. 


장례식장을 다녀오니 이분의 부재가 느껴져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4번밖에 만나지 않은 분에게 왜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르신의 인생이 너무 안쓰러워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그 정많은 마음씨 때문일까요. 


저는 이분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하고 싶다'는 어르신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대통령님께 

저는 2001년에 탈북해온 국군포로 김성태입니다. 

올해 92살입니다. 얼마남지 않은 목숨입니다. 

이 논내(노인네) 맞으막(마지막) 소원은 내가 죽어서 

영광스러운 국립 현충원 <동작동> 땅에 무치는(묻히는) 것입니다. 

파묘도 좋습니다. 재(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2023. 4. 17일 김성태 올림 

군번 110514

주민번호 320930-

옛날 주소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하성묵리 곡촌

지금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재(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자료제공-물망초)



김성태 어르신의 명복을 빌며 

어르신의 인터뷰 전문을 곧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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