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고래 Nov 13. 2023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들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기무라 히데토 선생님

저는 5년 전에 <기록되지 않은 기억 군함도>라는 책을 썼어요. 

책을 쓰면서 느낀 고충은 이곳 브런치에도 올렸는데요. 


일본어를 못하는 제가 일본 현지 취재를 할 수 있었던 건 귀인을 만난 덕분이에요. 

귀인은 바로 기무라 히데토 선생님인데요. 이분은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일본인입니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하면서 한국어 통역을 도와주세요. 그것도 무료로 말이지요. 


<기록되지 않은 기억 군함도>에 실린 기무라 히데토 선생님의 모습.


선생님은 정말로 선생님이셨어요.  

일본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는데요. 은퇴 후에 한국어를 배워서 이렇게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세요. 

"한국어는 일본어와 어순이 비슷하고, 한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배우기 쉽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2년 넘게 배우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기초 수준입니다. ㅠㅠ) 


기무라 선생님을 처음 만난 곳은 일본 나가사키였어요. 

그곳에서 다카자네 야스노리 선생님의 추모회가 열렸거든요. 

나가사키대학 교수를 지낸 다카자네 선생님은 나가사키평화자료관 이사장이셨는데요. 

조선인, 중국인 강제연행과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를 해오셨는데 폐렴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어요. 

  

<기록되지 않은 기억 군함도>에 실린 다카자네 야스노리 선생님 추도식 사진.


군함도 취재 초기에는 다카자네 선생님을 만나서 군함도를 손쉽게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그분과는 인연이 닿지 않아서 어떻게든, 뭐든 취재해야겠다는 생각에 추도식에 갔는데요.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이 닿아 기무라 히데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의 소형차를 타니까요.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노랫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는데요. 선생님이 그 소리보다 더 우렁차게 따라 부르시더라고요.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 사랑~"

 

그 뒤에도 선생님은 제가 일본 나가사키에 서너 차례 갔을 때 가이드 역할을 해주셨는데요. 

이후에도 한국에서 몇 번 뵈었어요. 그때마다 선생님은 누군가를 돕고 계셨습니다. 

때로는 원폭 피해자들과 계셨고요.  때로는 전쟁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가를 지원해 주셨어요. 


저는 한동안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다른 일을 한다는 이유로 깊은 바다에 빠져 잠수를 탔는데요.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소리 없이, 계속해서, 무조건적으로 도와주고 계시더라고요. 


회색 정장을 입은 분이 기무라 히데토 선생님. 


올 6월에 서울에서 심포지움 <일본산업유산과 사라지는 목소리들: 기억·인권·연대>이 열렸거든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개최된 심포지움이었는데요. 이 자리에는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김영환, 김명환, 김민철, 김승은 선생님, 노리 카오리 선생님, 신카이 선생님, 다케우치 선생님...)


그 자리에서 기무라 선생님을 뵈었는데요. 선생님은 신카이 선생님의 발표를 응원하려고 오셨다고 했어요. 

그때도 티내지 않고 묵묵히 번역과 통역을 지원해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데이비드 파머(맬버른대) 선생님이 토론자로 나오셨는데요. 

이분도 5년 전 기무라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으신 걸로 압니다. 그때 저도 같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10월 말에 선생님을 다시 뵈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한국에 방문했다"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하셨는데요. 

저는 그날 그곳에서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분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안치환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조선인인 심재선 씨가 일본인 친구 A에게 "죽으면 나를 고향 땅에 묻어다오"라고 부탁했는데요. 

친구A가 몸이 좋지 않자 친구A의 친구인 친구B가 기무라 선생님과 함께 

그 바람을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계셨어요. 


심재선 씨의 유골 봉환을 추진하기 위해 작성한 전단지. 


한국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는데요. 

일본에도 나쁜 사람이 있겠지만, 이렇게 또 좋은 사람이 있더군요. 

안치환의 노래 구절처럼 이분들은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이자 '참 사랑'이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교화소에 있는 13년 동안 이 한 번 안 닦은 거 같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