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심재선 씨의 유언
기무라 히데토 선생님은 제가 <기록되지 않은 기억 군함도>를 쓸 때 많은 힘이 되어주셨는데요.
10월 말에 선생님을 또다시 뵈었습니다. 4개월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친구와 함께 한국에 방문했다"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하셨어요.
저는 선생님과 선생님 친구분에게 따뜻한 점심 한끼를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오전 11시 경에 박물관에 도착해서 이곳저곳 기웃대며 선생님을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이 친구분과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계시더라고요.
선생님은 "민족문제연구소 분들과 상의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면서 사무실에 가셨습니다.
얼떨결에 저도 그 자리에 따라갔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냥 앉아 있었죠.
민족문제연구소 김명환 선생님과 김영환 선생님이 서류를 들고와 자리에 앉으셨어요.
김명환 선생님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팀장이셨는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진중하게 일하시더군요. 김영환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죠. 워낙 열심히 하시는 분이니까요.
머리를 갸웃대며 '지금 이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건가' 생각해 봤는데요.
기무라 선생님이 간단히 정리해주시더라고요.
"조선인 심재선 씨가 친구에게 '죽으면 나를 고향 땅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는데요.
아직도 그 유골이 일본에 있습니다. 이 유골을 한국에 모셔올 방법은 없을까요?"
정리하자면 사연은 이렇습니다.
심재선 씨는 1923년 8월 16일 강릉에서 태어난 분인데요.
1943년 강제 동원되어 일본 나가사키현에 있는 탄광에서 일을 했고요.
광복 후에는 나가사키 군함도 옆에 있는 다카시마 탄광에서 일했습니다.
가족 없이 홀로 지내다 2007년 1월 29일 나가사키현의 한 연립주택에서 돌아가셨는데요.
현재 그 유골은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천주교회 납골당에 임시로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심재선 씨는 친구A(야마시타 나오키 씨)에게 "죽으면 나를 고향 땅에 묻어다오"라고 부탁했다고 하는데요.
이후에 친구A는 친구C(후쿠도메 노리아키 씨)와 함께 한국에 사는 심재선 씨 가족들을 찾아봤대요.
재선 씨 밑에 3명의 남동생이 더 있었는데요. 살아 있는 동생과 연락이 닿아 유골 봉환을 추진했다고 해요.
당시 동생은 "우리는 여력이 없다. 망향의동산에 안장해줄 수 있다면 우리도 참배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중간에서 일을 도와주던 친구C가 세상을 뜨고,
뒤이어 심재선 씨의 동생마저 사망하는 바람에 일이 더이상 진척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재선 씨에게 부탁을 받은 친구A는 2019년 뇌경색이 발병해 후유증으로 거동하기 어려운데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심재선 씨의 유골을 한국에 보내고 싶어 합니다.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생이 다 하기 전에 들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기무라 선생님과 함께 이 자리에 오신 분은 친구B(친구A의 친구)인데요.
성함은 이시마루 고지입니다. 나가사키현 공무원 노조에서 청년부장을 하신 분이죠.
이분은 쇼와 천황의 전후책임 이슈를 보면서 식민지 피해상황과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아지셨대요.
"친구가 건강이 나빠지자 나에게 심재선 씨의 유골 봉환일을 "같이 할까?" 제안했다"고 해요.
친구B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홈리스들의 수급자 신청을 도와주는 업무를 해오셨는데요.
"심재선 씨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2019년 11월 29일, 친구B는 후쿠오카 대한민국 영사관에 가서 심재선 씨 유골 봉환 의사를 타진했는데요.
영사관 측에서도 "유가족 존재 여부와 소재를 확인하는 것을 협력하겠다"고 답변했대요.
하지만 현재까지 친구B는 아무런 소식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무라 선생님과 친구B는 이번에 한국에 와서 강릉에 가셨어요.
유골 봉환을 추진하려고 심재선 씨 유족을 수소문했습니다.
배를 타고 한국에 와서 버스로 이동하셨지요.
강릉시 강동면사무소에 가고, 정동2리 이장을 만났지만 소득은 별로 없었다고 해요.
"심재선 씨의 유족 정보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알아봐 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기무라 선생님은 친구B라는 분을 위해 한국어 통역과 번역을 도와주고 계셨는데요.
친구B라는 분은 심재선 씨와 일면식도 없는 분입니다.
이분들은 어째서 심재선 씨를 도와주고 계실까요?
부디 심재선 씨 유골이 한국 땅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심재선 씨의 유골을 한국에 안치할 방법은 없을까요?
글의 마지막에 심재선 씨의 유언을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친구A의 글을 싣습니다.
친구A는 야마시타 나오키 前 다카시마 지역 노동조합 대표입니다. (번역-기무라 히데토)
여러분!
강제연행-강제노동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인간성을 무시한 일본의 국가 범죄입니다.
전후 그 은폐에 혈안이 되어 최근에는 강제 연행은 없었다라고 말하는 무리도 방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전쟁 전, 전쟁 중에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 조사에는 정말 고개가 더 숙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유골이 단 한 구라도 흐지부지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전후 강제연행 피해자인 재일동포들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강제연행된 재일동포들은 모두 고령입니다.
증언할 때에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한국과의 교통도 편리해져 누구나 쉽게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제연행되어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쉽게 왕복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합니다.
또 일본에 머무른 것은 스스로 좋아서 선택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재일동포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그것이 두번째 강제연행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심재선 씨처럼 돌아가신 후에도 갈 곳 없는 유골이 존재한다는 것이
내가 말하는 두 번째 강제연행 피해자의 모습입니다.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은 지금도 두 번째 강제연행에 의한 피해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강제연행-강제동원 조사에서 저는 앞으로도 재일동포들을 떠나지 않고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