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1. 살아간다는 건

by 남해바다

1-1.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


“살아남는 것과 살아간다는 건, 무엇이 다를까?”


2010년 11월, 연평도.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소구 쳤다. 주택들은 불탔고, 사상자가 속출했으며, 군은 최고 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휴전이 깨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포격 직후, 인천항엔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일부는 화물선 컨테이너에 몸을 숨긴 채 그 섬으로 향했다.

며칠 뒤, 나도 그곳에 들어섰다. 포격은 멎었다. 하지만 전쟁의 긴장감은 여전히 섬을 짓눌렀다.

붕괴된 건물, 군인들의 통제, 땅을 울리며 지나가는 전차들. 그리고 수시로 울리는 공습경보.


나는 그전에도 수많은 현장을 밟아왔다. 이라크 전쟁,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천안함 피격, 격렬한 시위 현장들. 두려움 속에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았고, 그것이 기자로서의 사명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내 안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연평도에서는 그 균열이 더 크게 흔들렸다. 포탄이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카메라를 들었고, 경보가 울릴 때마다 방공호로 뛰었다. 먹을 게 떨어지면 주민에게 쌀을 얻고, 밭에서 야채를 캐어 끼니를 때웠다. 열흘 가까운 시간 동안, 긴장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닫힌 표정, 메마른 공기, 울리는 경보.
그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나는 지금, 정말 살아 있는 걸까?”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숨은 쉬었지만 내 안의 스위치는 꺼져 있었고, 감정은 바스락거리며 무너졌다.



2010년 12월 10일 오전 8시


섬에서 돌아온 다음 날, 화장실 거울 속의 나는 분명 나였지만 전혀 낯설었다. 굳은 어깨, 무표정한 얼굴, 침잠한 눈빛. 나는 줄곧 ‘살아남는 것’에 집중했을 뿐, ‘살아가는 삶’과는 멀어져 있었다.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는 동안,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 사람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희미해졌다. 그렇게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던 끝자락에서, 나는 직감했다.


두려움을 외면하는 한, 삶은 다시 시작되지 않는다는 걸.
피하지 않고 통과해야만 길이 열린다는 걸.


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탈출구가 아니라 돌파구를 원했다.
그것만이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여행은 도망이 아니다.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는 일이다.
멀어져야 중심이 선명해지고, 한 발 물러서야 더 넓은 풍경이 열린다.


그래서 떠나야 했다.
버티는 하루가 아니라, 살아내는 하루를 위해.
진짜 나를 마주하고,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 결심은 거창하지 않았다.
오늘, 당장. 어디든.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판단은 단순해진다.
나를 살리기 위한, 가장 본능적인 결정이었다.




1-2. 출발은 두려움을 안고


용기를 내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무슨 말을 듣든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오직 나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항공권을 검색했다. 조건은 단순했다. 직항, 최대한 빠른 시간. 목적지는 부차적이었다. 필요한 건 ‘떠나는 것’ 그 자체였다.


검색 결과, 오후 5시 30분 인천발 방콕행 제주항공. 예약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두려움이 설렘보다 먼저 찾아왔다.


“정말 이 비행기를 타도 괜찮을까?”


2006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서울–부산 노선 첫 취항을 알리던 제주항공. 기상악화로 다른 항공사들이 줄줄이 결항했을 때, 그들만 강행했다. 불안한 기류 속, 직원은 담담히 말했다.


“대형 항공사들이 더 민감하게 대응할 뿐입니다.”


나는 믿고 탔다.

김해 상공에서 기체는 사납게 흔들렸다. 착륙은 번번이 실패했다. 객실은 울음으로 가득 찼다. 승무원조차 꼼짝 못 했다. 나는 안전벨트를 움켜쥐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공포를 삼켰다. 결국 비행기는 회항했고, 두 시간반의 허망한 여정이 끝났다.


그날이 첫 취항이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그들은 날씨가 아니라 ‘기념일’을 선택한 것이다.


돌아온 건 단 하나의 안내.
“기상 악화에 따른 회항은 전액 환불됩니다.”


몇 번을 항의해도, 사과는 없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시간.
그리고 다시 부산에 도착하기까지 열두 시간.


남은 건 하나였다. 불신.

신뢰를 저버린 항공사.
생명을 가볍게 다룬 기억.


그 기억이 떠오르자, 예약 버튼 하나가 쉽게 눌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믿었다. 나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 결제 완료.


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으로 가는 길, 바닥에 떨어진 전선 덮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심히 그것을 주워 홈에 끼워 넣었다. 불안은 몸짓으로 흘러나왔다. 이륙 전, 승무원들은 머리 위 짐칸을 점검하며 서둘렀다.


이륙 5분 후.

내 앞쪽 짐칸이 열리며 여행가방들이 쏟아져 내렸다. 머리 위로, 발밑으로, 굴러내리는 짐.

객실은 비명과 충격음으로 가득 찼다.


그 광경은 오래된 공포를 열어젖혔다. 닫아 두었던 불안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

속삭임이 귓가에 맴돌았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방콕까지 이어진 여섯 시간, 나는 좌석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었다.


도착 후 최대한 침착하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12월의 방콕.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는 시간.

거리는 불빛으로 가득했고, 후끈한 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나는 무사히 도착해 있었다.

살아 있었다.

여행에는 늘 변수가 있다. 로마에서는 소매치기에 카메라를 잃었고, 발리에서는 트렁크 바퀴가 부서졌다. 미국에서는 부친 짐을 며칠씩 찾지 못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했다. 대안을 찾거나, 빨리 잊는 것. 중요한 건 거기에 머물지 않는 태도였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놓아야 할 건 놓는 것.

그것이 여행의 방식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삶에는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 막히는 도로, 낯선 도시에서의 불운한 사건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교통체증은 피할 수 없지만, 일찍 집을 나서는 건 내 선택이다. 소매치기당한 카메라는 돌아오지 않지만, 새 카메라를 살지 말지는 내가 정한다.


결국 모든 선택은 나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누구도 내 불안을 대신 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불안을 끌어안고,

불완전함을 껴안고서라도 나아가는 일.
그것이 여행이고, 곧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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