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5. 뜻 밖의 '행운'과 예상 밖의 '고난'

‘날것’ 그대로를 드러낸 날

by 남해바다

여행 마지막 전날 오후.

래프팅을 마치고 카오락에 돌아왔을 때, 뜻밖의 축제가 한창이었다.

알고 있던 것도,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우연’은 준비된 기쁨보다 훨씬 더 큰 즐거움을 데려왔다.

허기진 우리 앞에 태국 특유의 강렬한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매콤한 똠얌의 얼얼한 향, 망고스티키라이스가 혀 위에서 사르르 녹으며 달콤한 안도감을 흘렸다, 바삭한 튀김의 고소함이 뒤섞여 입안에서 경쾌한 춤을 췄다. 우리는 양손 가득 음식을 들고, 그날 저녁을 태국이라는 나라의 깊은 맛으로 채웠다.

밤이 되자 무대 위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몸짓을 이어갔다. 불빛과 음악이 어우러져 축제는 뜨겁게 타올랐다. 관중 속에 섞여 박수를 치고, 탄성을 내뱉으며 우리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연결감’ 속에 잠겼다.

그 순간, 여행의 마지막 밤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웃음과 음악이 귓가에 달라붙은 채,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그러나 그 축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통이라는 손님이 불쑥 찾아왔다.


숙소 문을 열자마자, 내 몸은 강렬한 복통에 휘청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창자가 칼날에 베이는 듯 비틀렸고, 속에서는 무겁고 끈적이는 액체가 뒤틀리며 파도쳤다.


배는 마치 쇠사슬에 꽉 묶인 듯 단단히 부풀어 올랐다. 조금만 움직여도 속이 뒤엉키듯 요동쳤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방 안 공기는 무겁게 눌려 있었고, 창밖에서는 축제의 북소리가 희미하게 멀리 들려왔다. 그 소리는 살아있는 세상의 증거 같았지만, 내 세계는 오직 끔찍한 요동과 고통으로 가득했다.


비상약은 없었고, 도움을 청할 병원도 없었다. 내일 저녁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녀 앞에선 그 고통을 숨기려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뱃속에서 물결치는 소리에 다시 의식을 붙잡았다. 그녀는 축축한 수건으로 내 이미를 닦으며, 부드러운 손길로 내 배를 조심스레 감쌌다.
그 순간에도 고통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귀에서 소중히 여기던 금 귀걸이를 빼내더니, 뾰족한 부분으로 내 엄지를 찔렀다. 순간, 검은 피가 한 방울 떨어졌고 귀걸이는 부러졌다.
그녀의 손끝에는 두려움 대신 단호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버텼을까.

날이 밝아오자, 부풀었던 배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쥔 채 침대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고,

나는 그 조용한 장면 안에서, 혼자가 아님을 뜨겁게 느꼈다.


그 순간, 그 통증은 몇 해 전 병원 침대 위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았다.

차갑고, 버겁고, 어쩌면 죽음이 문턱에 와 있는 듯한 감각.

그 기억은, 예능 PD로 살던 시절의 한 장면으로 나를 데려갔다.

피 말리고 지독하게 힘들었던 그때.

촬영이 끝나면 늘 편집실에서 밤을 세웠다.


어느 새벽, 잠깐 눈을 붙였다가 깼더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기억도, 이유도 없었다.


팔에 꽂힌 주사바늘을 빼고 다시 편집실로 향했다. 몇 시간 후 나는 다시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그러기를 세 번이나.


의식이 돌아왔을 때, 의사는 과로라고 말했다. 뇌졸중 초기 증상까지 보인다는 소견에 “보호자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아니 차가운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알면 걱정할까 봐 퇴원을 부탁했다. 하지만 의사는 ‘지금 나가면 위험할 수 있다’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설득 끝에, 나는 100알이 넘는 약을 받아들고 병원 문을 나섰다.


비틀거리며, 기어이 걸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면 무너진 나를 지키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내 몸이 부서질 만큼 무리했던 이유, 그건, 아마도 ‘약한 나’를 들키기 싫어서였다.

강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살아 남았다.

그래서 무너진 내 모습을 들키는 게, 두려웠다.


이번은 달랐다.

처음엔 나도, 그녀도 서로를 경계했다. 조금씩 속도를 맞춰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 막바지에 나는 가장 약하고 솔직한 나를 그녀에게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 나를, 그녀는 다그치지도 외면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었다.


그 밤, 나는 처음으로 나의 가장 약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함께 한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날것’을 마주하고,

때로는 안아주고, 때로는 한 발 물러서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일임을 깨달았다.


단순히 같은 공간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 속에 자리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함께 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라는 걸

그 밤 나는 분명히 느꼈다.

아침이 밝자, 아픈 배를 안고 약국을 찾았다. 약을 삼킨 뒤에야, 비로소 속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고난과 행운이,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게,

더 깊이 묶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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