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다람쥐 Oct 20. 2021

"우리는 자라면서 지식을 얻지만 가능성은 잃는다"

『어린이라는 세계』서평.

흔히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고들 말한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 아이든, 내 아이가 아니든,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고 올바르게 성장하길 바랄 것이다.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좋은 의도로 접근하는 이 과정에서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는 것 같다. 정작 아이들의 상황을, 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어른들이(물론 나를 포함한) 자신들의 잣대로만 아이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며, 충고하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좋은 의도로 행해지는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왜곡되어 보인다.   


저자 김소영 님은, 현재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서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험한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훈계하듯이 말하고 있진 않으나,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 어떤 육아 책보다 더 많은 훈계를 받은 느낌을 받는다.


어린이의 세계는 이렇다고.
어리다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어리다고 함부로 지도하려 하지 마.
좀 제대로 알고 하라고.


1. 어른들의 역할


① 기다릴 줄 아는 어른.

어른들이 보기에는 간단한 일이라 어린이가 시간을 지체하면 일부러 꾸물대는 것처럼 보이고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기다려주는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일이었다. 아파트 내부에 위치한 '맘스테이션'에서 하원 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집까지는 약 100m, 아이들 걸음으로도 5분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날 집까지 가는데 약 40분이 소요됐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 위에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콘크리트 타일 형태로 구성된 아파트 도로는 물이 잘 배출되기에 습기는 전혀 없고, 햇빛을 받으면 금세 뜨거워진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는 지렁이는 아마도 얼마 못가 생명을 다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지렁이를 발견한 아이들은, 지렁이를 지켜줘야 한다고, 이대로 두고 가선 안 된다고 말한다. 결국 첫째 아이는 집에 가서 종이컵에 물을 받아왔고, 나무 꼬챙이 비슷한 걸로 둘째 아이와 함께 약 30분 간 '지렁이 잔디밭으로 옮기기' 대작전을 수행했다. 


느긋한 성격이 아닌 사람인지라, 종종 아이들에게 '빨리빨리'를 종용하곤 한다. 그런데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린이라는 세계』, 이 책을 읽고 나서, 기다릴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기다리며 지켜보다 보니,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것이 비단 작은 지렁이일지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인 나는 분명히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가던 길을 갔을 텐데 말이다.


"빨리 이빨 닦고 자자" "빨리 밥 먹자" "빨리 옷 입고 학교 가자" 무슨 아브라카다브라같이 주문 외우듯 매일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거 이빨 닦는데 몇 분 걸린다고, 빨리 밥 먹고 놀면 될 텐데, 미리 옷 갈아입으면 편할 텐데 하며 말이다. 아이들이 일부러 꾸물대는 것처럼, 낳아주고 길러주는 부모의 말을 귀 똥으로도 안 듣는 것처럼, 그리고 반항하는 것처럼 느껴져 화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어른들의 편협한 생각은 아니었을까?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의 세상이 있을 텐데 말이다. 서로 어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면, 조금이라도 인생을 더 산, 소위 성숙하다고 생각되는 어른이 한 발 양보해서, 지켜봐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② 아이들을 지켜주는 어른.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겠다

흔히 어른 말을 잘 듣고, 타인을 도울 줄 아는 아이를 '착한 어린이'라고 이야기한다.(어른의 말을 잘 듣는 걸 착하다고 말할 수 있는진 모르겠으나, 실제 대다수의 어른은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아이를 두고 "참 착하네"라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착한 아이들이 종종 비극적인 사건에 연루되는 소식을 볼 때가 있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거나, 짐을 옮기는데 도움을 요청한 어른을 도와주다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착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그런 범죄에 희생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어른이라면 어린이들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봐서는 안 된다. 법에 문외한이기에 함부로 말하긴 뭣하지만, 종종 아이들 범죄와 관련된 범죄자들의 형량을 볼 때면 아쉬울 때가 많다. 과연 이 정도로 우리 아이들을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을까?


착하디 착한 우리 아이들이 아무 걱정 없이, 선한 마음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른들의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    


③ 정중한 어른.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는 데서 시작해 보라고 권한다. 이웃 어린이와 마주쳤을 때, 조카의 친구를 소개받았을 때, 어쩌다 어린이 친구를 사귀는 행운을 얻었을 때 꼭 존댓말로 관계를 시작하라고. 말을 놓는 게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철없는 어른의 생각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할 때의 기분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길을 지나가다, 혹은 아이들의 초대로 집에서 아이들의 친구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아이들은 내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나는 자연스럽게 응답한다 "안녕!!"


지금껏 단 한 번도 아이들의 존댓말에 대한 인사에, 내 반말 답변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저자의 말에 뜨끔했다. 아무리 나보다 연장자라도, 내게 처음부터 반말을 찍찍하면 내 기분은 어떨까? 불쾌할 것은 자명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그런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키가 작다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이 함부로 행동해도 괜찮은 존재가 아니다. 똑같은 감정과 정서를 가진, 어른과 동일한 인격체이다. 아이들에게 어떠한 행동을 할 때는, 항상 역지사지의 마음을 떠올려보자.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행동을, 웃어른이 나한테 했을 때, 내 기분은 어떤지 말이다.       


④ 아이들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어른.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 주는 것 아닐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응원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이면서

유명한 '사다리 위 바나나와 원숭이' 실험이 있다. 원숭이 4마리를 한 우리에 넣고, 긴 사다리의 꼭대기에 바나나를 매달아 둔다. 배가 고픈 원숭이 한 마리가 그것을 먹으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샤워기에서 찬물이 뿌려졌고, 물세례를 받은 다른 원숭이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다른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으려고 시도하자 나머지 원숭이들이 그를 내려오게 하거나 공격한다. 그 이후 바나나의 유혹에도 원숭이들은 더 이상 사다리 위로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그 후에 한 마리를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한다. 그리고 새로 온 원숭이는 바나나를 보고 사다리 위로 올라가려 한다. 그러자 먼저 있던 원숭이들이 몰려가 소리를 지르며 제지한다. 이에 위축된 새 원숭이는 결국 바나나를 포기하게 되고, 그 이후 차례로 새로운 원숭이들이 한 마리씩 교체되면서 시도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현상은 반복된다. 결국 모든 원숭이가 교체되고 샤워기도 없었지만 어떤 원숭이도 감히 사다리에 오르려 하지 않게 된다. 어떤 원숭이도 사다리 위에 매달린 바나나를 따 먹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경험을 통해 어떤 행동이 위험하고 안전한지, 어떠한 행동을 해야 아이들이 녹록지 않은 삶을 잘해나갈 수 있을지 잘 안다. 아니,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알량한 지식을 토대로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의 행동에 간섭한다. "높은 데 올라가지 마" "TV, 핸드폰 보지 마" "얼른 방에 들어가서 공부해" 


아이들은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한 체, 부모의 걱정으로 인해 남과 다른 길을 가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눈앞에 있는 바나나를 포기하고 돌아서는 원숭이와 다를 바가 없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은 만족한다. 아이들이 위험한 길에서 벗어나, 안전지대로 들어섰다고 확신하며.


오래전, 책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 님의 말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자라면서 지식을 얻지만 가능성을 잃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지도하에 실제 몸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도 못한 체,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가능성을 잃어간다. 요즘 인재상의 최고의 능력은 창의성인데, 그런 환경에서 창의성까지 요구하니 잘 될 턱이 있나.  


⑤ 판단의 기회를 주는 어른.

"학교에서는 왜 '통일의 좋은 점'만 가르쳐 줘요?"
"왜? 은규는 통일에 반대하는 쪽이야?"
"찬성인지 반대인지 잘 모르겠어요. 통일하면 안 좋은 점은 안 가르쳐주니까요."
"지금이 이미 분단 상태니까, 이걸 바꾸면 좋은 점을 설명하느라 그럴 거야."
"그렇지만 어른들 중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시위도 하고. 그러면 어린이한테 양쪽 입장을 다 가르쳐 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학교는 공교육을 하는 덴데 '좋은 점'만 가르쳐 주는 건 잘못된 것 같아요."

정권이 바뀔 때면 국정 교과서와 관련된 이슈가 항상 있다. 권력을 잡고 있는 편에서는 지속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래의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의 신념과 사상을 주입시키고자 하며, 그 반대편에 위치한 무리들은 미래에는 반드시 권력을 되찾기 위해 그러한 행위를 저지한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기에 다른 인간의 영향을 받습니다. 엄마가 공무원이 좋다면 그런 줄 압니다. 세상 사람들이 학벌이 중요하다면 좋은 학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공산주의는 악하다고 하면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교육은 어떤 사람, 어떤 집단, 어떤 힘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지만, 본질은 생각의 주입이죠. 푸코의 말처럼 지식은 권력입니다.

 - 『사장의 철학』, 안상헌, 행성 B -


제발 아이들을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른들을 속이려 하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어른의 도리가 아닐까? 미래는 현재의 어린이들이 만들어가고, 책임질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관여하려 해선 안 된다.  




내겐 두 아이가 있다. 첫째는 8살로 초등학생이고, 둘째는 6살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첫째 아이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실력이 늘었으면 그걸로 충분해."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노력했으면 됐어" "포기하지 마, 할 수 있어" 등등이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진심으로 아이들이 그러길 바란다.) 정작 나한테는 '나는 왜 지금 이것밖에 못하지' '실력이 느는 게 왜 이렇게 더딘 거야' '노력했는데 안 되네' '나는 여기 까진가 봐' 등등 비관적인 생각을 너무 쉽게 한다.


책을 읽고 아이들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봤다. 기다려주는 사람, 정중한 사람, 이것저것 도전해 보는 사람 등등...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떠올리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말한 그대로 살면 된다. 그러면 분명 훌륭한 어른이 되지 않을까    


어린이에게 할 말을 고르고, 그 말에 나를 비추어 보면서 '길잡이'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어린이가 가르쳐 주어서 길을 아는 게 아니라 어린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심하면서 우리가 갈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