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남깁니다.
작년, 가수 에프엑스의 멤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설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선택에 위로와 애도를 표했다. 그러한 와중에 유독 같은 멤버였던 한 명이 비난을 받았다. 바로 '빅토리아'다. 설리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을 SNS에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어떻게 함께했던 동료의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일언반구 없을 수 있냐며 많은 이들이 그녀를 비판했다. 그녀는 자신을 비난한 악플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덕을 측정하기 위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측정하기 위해서, 감정을 측정하기 위해서 공공 플랫폼은 언제부터 쇼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는가.
쇼를 보고 싶다면 소리치고, 소문을 만들고 싶다면 계속해라. 나는 놀랍지 않다. 난 그저 댓글을 다는 사람들보다 더 현실적으로 살고 싶다. 선한 마음 가지고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실제로 그녀는 드라마 촬영 중, 설리의 비보를 듣고 급하게 한국에 입국해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지켰다. SNS에 글을 남긴 대다수의 이들보다 아마도 함께 한 시간이 많았던 그녀의 슬픔과 충격이 더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눈에 띄는, 혹은 자신들이 바라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섣불리 어떠한 사람이라 판결 지었고, 비난했다.
《아웃라이어》, 《티핑포인트》로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타인의 해석》은 이러한 우리에게 경종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결코 낯선 이를 완벽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처칠 이전 영국의 수상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몇 번의 만남 이후, 그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려는 야심은 전혀 없는 인물이라 파악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세계 제2차 대전의 발발로 이어졌다. 미국 펜타곤에 잡입한 스파이는 수년 동안 우수한 정보국 요원들을 깜쪽같이 속였다. 한 천재 사기꾼은 세계적인 경제 전문가들이 모인 월스트리트를 우롱됐다.
우리는 흔히 낯선 이를 직접 대면해서 그들의 행동과 표정을 살펴볼 수 있다면 상대방에 대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생각한다. 위의 언급했던 모든 사례는 실제로 상대방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만남 이후 상대방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고 판명 짓는 실수를 저질렀고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결코 낯선 이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내 앞에서 짓고 있는 표정과 웃음, 행동으로 타인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우리의 오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래도 촉이 좋아"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여기 그 마지막 믿음마저도 산산조각 내는 사례를 제시한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뉴욕에서의 피의자 약 55만 명 중, 뉴욕의 판사들이 석방한 수는 약 40만 명이었다. 검사가 판사에게 제출한 것과 같은 기록을 집어넣어 인공지능에게 석방 대상 40만 명의 명단을 추출하라고 지시했다. 컴퓨터가 뽑은 명단에 있는 사람들이 뉴욕시 판사들이 석방한 40만 명보다 재판을 기다리는 중에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무려 25퍼센트나 낮았다. 무려 25퍼센트나.
재판장에서 직접 피의자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표정을 살펴볼 수 있던 판사들이, 실제로 데이터에만 의존하여 판결을 한 인공지능에 완패했다. 왜 그럴까? 판사들은 깜쪽같이 피의자의 행동과 표정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잘못했습니다. 반성합니다가 실은 반성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체임벌린이, 펜타곤이, 그리고 월스트리트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낯선 이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의심할만한 확신을 스스로 가지지 못한다면, '설마 그러겠어 저 사람이'하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일단 믿고 보는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해 아무런 의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은 의심의 부재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한 의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미국 국가대표 체조 선수단의 주치의였던 '나사르'가 여성 체조선수들에 대한 성추행, 성폭력 혐의로 심판을 받았다. 그는 약 20여 년 간 무려 300명 이상에게 성추행을 했다. 사실 그에게 치료를 받았던 많은 선수들이 치료 도중 이상한 낌새를 느꼈음에도,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부모에게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설마...'라는 생각으로 그러한 신호를 무시했다. 결국 그의 컴퓨터 드라이브에서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인 끔찍한 이미지들이 발견되자, 그때서야 우리는 그에 대한 의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증거가 나오기 이전까지 많은 이들이 '설마'라는 가정하에, 그가 '그럴 리 없다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낯선 이를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지 않고, 모든 만남에 있어 의심을 전제로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나와 이야기하는 낯선 이들이 사실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실제 도움을 주려는 사람마저도 우리가 의심을 해야만 한다면, 우리의 삶이 너무 각박하고 힘들지 않을까?
중앙정보국이 조직 한가운데에 침투한 스파이를 찾아내거나, 투자자들이 모사꾼이나 사기꾼을 발견하거나, 우리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심중을 투시력으로 꿰뚫어 보는 완벽한 기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과 자제이다.
진실을 기본값으로 두기에, 낯선 이를 완벽히 파악할 수 없기에 타인에 대한 의심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려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겸손'과 '자제'이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행동이라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최인철 님의 《굿 라이프》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격이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정의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은 도덕적 완성의 정도가 아니라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가정들의 정확성과 품격의 문제다. 그러므로 인격수양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정들을 점검하여 나쁜 가정을 좋은 가정으로, 근거가 없는 가정을 정확한 가정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자기가 늦은 이유는 차가 밀렸기 때문이지만 다른 사람이 늦은 이유는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가정, 남을 도운 대가로 인정을 받게 되면 이타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가정, 능력이 뛰어나면 성격이 안 좋고 성격이 좋으면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가정, 자신이 나쁜 일을 한 후에는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라는 가정, 좋은 일을 하고 난 후에는 나 같은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가정. 이런 평범한 가정들보다는 자신의 행동과 타인의 행동이 동일한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가정, 능력과 인품은 비례한다는 가정, 설사 결과적으로 이득이 생기더라도 남을 돕는 일은 여전히 이타적이라는 가정, 나처럼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드물고 나처럼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많다는 가정이 훨씬 품격 있다.
세상에 긍정적 행동과 부정적 행동이 있다면, 나는 우리 주변에 긍정적 행동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다만 우리는 부정적 행동을 더욱 부각하고, 인지하기에 부정이 넘치는 세상으로 생각하지만 말이다.) 글레드웰이 말한 것처럼, 나 아닌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겸손한 마음과 함께, 나는 최인철 님이 말한 좋은 가정을 가진 삶을 살고 싶다. 품격 있는 삶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