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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다람쥐 Mar 11. 2023

가훈을 만들어 볼까나?

매일 한 문장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 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라고."

-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인용 - 


지혜를 잇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많은 집들에 가훈이 있었다. 꼭 벽면에 액자로 걸어놓지 않아도, 가족들이 공유하는 원칙이라는 것들이 존재했다. 우리 집 가훈은 '아껴야 잘 산다'였다. 부모님의 신혼집은 성북구 정릉동이었다. 내가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처음 장만한 집에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근처 우물가에 가 물을 길어 씻고, 밥하고, 설거지하셨다고 말이다.(당시 시대상황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부모님은 소위말해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신다.) 부족한 상황에서 남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아껴야 잘 산다'는 가훈을 실천해 오신 부모님은 지금은 꽤 여유롭게 생활하신다. 일을 전혀 하지 않으셔도 내 연봉보다 몇 배는 더 버시니 말이다.(하지만 지금도 가훈을 실천하며 사시고, 두 분 다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일도 하신다) 부모님의 모습, 혹은 가훈 덕분인지 나 역시도 절약이 몸에 배어있다. 한 달 용돈이 30만 원인데, 사실 이것도 남아돈다. 글 쓰고 학습하기 위해 한 달에 카페에서 약 10만 원, 교통비 6만 원을 포함해서도 말이다.  


두 아이가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도 다른 부모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아이들 학습이 조금은 신경 쓰인다. 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어릴 때 학습과 관련된 큰 압박은, 반작용으로 아이들이 오히려 공부에 흥미를 잃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에 아이들이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여전히 독서와 공부를 그다지 재미있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집을 나와 카페에 가서 글을 쓸지, 넷플릭스에서 어제 공개한 재미있는 〈더 글로리〉를 볼지 한참 고민했다.) 처음 공부를 할 때, 모르는 것이 나올 때 그것이 하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재미를 느끼기 위해선, 하기 싫은 것들을 꾸준히 해내면서 많이 알게 되거나,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을 때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당장 하기 싫어도 우선 하려고 하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매번 아이들에게 "공부해야 해" "끝까지 해내야 해"라고 잔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그렇게 엄한 아빠가 될 팔자는 아니어서 그런 말은 잘 꺼내지도 않는다. 다만 아이들 스스로 인식하고 깨닫기를 바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하기 싫은 것을 해내는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라는 가훈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절대 가훈을 지키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저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원칙을 공유하고, 부모님이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이 조금은 스스로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희망찬 상상을 할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아이들이 비스킷 통에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먼저 먹고, 이후에는 좋아하는 것들로만 그득한 삶이 되길 바란다. 지금껏 그렇게 살지 않은 아빠가 후회하며... 그리고 자신이나 잘하자고 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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