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째 글쓰기
나는 꽤 많은 메모를 한다. 항상 갤럭시 패드를 갖고 다디며 상사의 업무 지시만이 아니라, 무언가 떠오르거나 일상의 것들을 삼성 노트에 수시로 적는다.
하지만 메모를 하면 할수록 자괴감이 든다. 분명 열심히 공부했고 적었는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마케팅 관련 학습을 했지만, 정작 마케팅 회의 시간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마치 뇌가 초기화된 사람처럼 학습하고 적어놓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고, 기억이 난다 해도 순발력 있게 현재의 상황에 적용하지 못한다. 이러길 몇 년째다.
메모라는 행위를 하는 것 자체에 만족하며 메모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메모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사고와 통찰력을 함양하길 항상 바랐다. 하지만 잘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메모와 관련한 여러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나의 고민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나라 기록학자 1호라는 김익한 님의 《거인의 노트》를 통해, 어느 정도 메모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내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했고, 앞으로는 오랜 시간 공들여 적은 메모들이 머릿속에서 생동감 있게 살아 넘칠 거라는 기대를 잔뜩 품으며 서평을 써본다.
너저분하게 적어 둔 것을 '메모'라 한다면 이렇게 조각난 글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을 '기록'이라 한다. 기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적는 메모를 제대로 정리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메모와 기록은 동일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노트 필기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 적는 메모에 불과했다. 메모 속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이 '기록'인데, 이제껏 기록은 하지 않았다. 적어놓은 내용들을 그대로 노션이나 에버노트에 옮겨적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면 되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IT기기를 이용해 그때그때 찾아보는 것과 머릿속에 지식이 있을 때 사고하는 수준은 현격히 다르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메모를 정리하며 생각하고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구잡이로 적어놓은 정보들을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내 것으로 소화할 때만 간절히 바라던 내 지식이 될 수 있다.
쓰기만 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답은 요약과 집중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스티브 잡스는 애플 내부 훈련 기관으로 '애플 대학'을 만들었다. 해당 수업에서는 피카소의 〈황소〉를 다루는데, 핵심이 아닌 것들은 버리고 군더더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피카소의 그림으로 설명한다. 현재 애플의 간결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책을 읽거나 회의 이후 메모를 하는데 내 경우에는 그 양이 엄청나다. 오랜 시간 공들였는데, 아까운 정보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진았았기 때문이다. 요약을 통해서만 머릿속에 어지럽게 나열되는 것을 '자기화'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려 했다. 많은 것을 적다 보니 역설적으로 오히려 남는 게 없었다.
저자 김익한 님은 요약을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저 자기만 알아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어미를 넣어 문장을 만들려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 키워드를 적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산재되어 있는 잠재적 가치들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답은 바로 '분류'에서 찾을 수 있다.
요약을 해야 한다고 하니, 막상 어떻게 요약할지 막막하다. 저자는 친절하게 이에 대한 설명도 한다. 분류를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 뭐 먹을까?'라고 하면 마뜩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① 한식 ② 중식 ③ 일식 ④ 양식의 보기를 준다면 한층 선택하기가 수월해진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산재되어 있는 정보들을 분류해서 키워드로 요약하는 것이다.
《거인의 노트》 서평을 쓰고자 분류를 시도했다. 그렇게 분류한 챕터가 다음과 같은 4개다. ⓐ 메모와 기록은 다르다 ② 기록하는 방법 ③ 분류하라 ④ 반복하고 되뇌고, 생각하라. 분류한 이후, 각 챕터에 적절한 내용을 찾아 채워 넣으니 한결 서평 쓰기가 수월하다. 분류며 요약이며 이제 갓 시작한 단계이지만, 키워드 중심으로 분류하는 효과를 벌써부터 조금은 체감 중이다.
기록들을 정리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기록한 것을 다시 읽어 보며 생각해야 한다. 아쉽게도 대부분은 이를 지나쳐 버린다. (...) 기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주 보고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고, 뒤돌아서면 까먹어 버리네"라는 말을 많은 이들이 한다. 당연한 결과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Forgetting Curve) 연구에 따르면 학습 후 10분 후부터 망각이 시작되며, 1시간 뒤에는 50퍼센트, 하루 뒤에는 70퍼센트, 한 달 뒤에는 80퍼센트를 망각하게 된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한 달 뒤에는 80퍼센트나 잊어버리다니 원통할 노릇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망각을 늦추고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주기적으로 복습을 하고, 반복적으로 생각을 하면 장기 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경주마처럼 정보를 쌓아가는데 몰두했다.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 지식의 양이 부족했기에 평균 수준이라도 맞춰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정보들이 내 지식으로 치환되지 않았다. 100을 넣으면 10이나 될까. 정보 발견 → 요약을 통한 내 지식으로의 전환 → 그리고 현실에 적용가능한 지혜를 함양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기 위해선 기록한 것들을 자주 보며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앞으로 주말은 미래를 향한 과정이 아닌,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하나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메모한 것들을 정리 요약 분류하며 기록하고 생각할 것이다.
[거인의 노트를 읽고 기록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