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그리고 달리기
2020년. 오매불망 기다리던 1년간의 육아휴직이 시작되었습니다. 휴직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착수한 작업은 버킷리스트 만들기였습니다. 계획 없이 있다 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1월에 최호진 님이 진행하시는 버킷리스트 워크숍에 참여해 '2020년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만들었습니다.
유튜브 보며 기타 배우기, 아내와 두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1주일간 혼자 여행하기, 브런치 작가 되기(지금 이 순간 이곳에 글을 쓰니 이건 해냈습니다.^^), GOD 콘서트 가기 등 다양한 것들을 적었는데요. 그중 한 꼭지에 하프마라톤 달리기도 있었습니다.
목표는 2020년 9월 하프마라톤 완주였습니다. 군 제대 이후, 약 15년간 운동과는 담쌓고 살아왔습니다. 뱃살을 중심으로 지방들이 이미 제 온몸 구석구석 자리를 잡은 상태였죠. 다른 분들은 몇 개월 준비하시고 풀코스를 뛰셨다고 하는데, 저의 몸 상태로 그건 무리였습니다. 일찍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2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이고 하니, 목표는 3km였습니다. 사실 3km는 거뜬히 뛸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몇 번 뛰어보고, 적응하고 바로 5km로 넘어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3km는커녕 그의 반밖에 되지 않는, 1.5km 정도의 거리에 도달했을 때 무릎에서 삐걱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숨도 차올랐습니다. 당시의 제겐 3km도 뛰어낼 수 있는 신체도, 체력도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이니만큼 꾸역꾸역 참아가며 겨우 3km를 뛰었습니다. 그렇게 뛰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달리기는 나랑 맞지 않아. 뛰다가 무릎 나가겠어. 그만하자."
달리기를 시작할 때, 저의 나약한 의지를 잘 알기에 커뮤니티에 참여해 다른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정말 그만두고 싶었는데 하루 뛰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만두겠다고 말하려는 게 창피했습니다. 이놈의 자존심이 뭔지 눈 딱 감고 1달만 뛰어보기로 했습니다, 1달만 달리고 그만두려 했습니다.
그런데 1달을 꾸준히 달리고 나니, 조금씩 적응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달리는 거리는 여전히 3km였지만, 이전처럼 무릎이 아프거나 숨이 차오르지 않았습니다. 계속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약 3개월 일주일에 3회 이상씩. 단 한주도 빠지지 않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1일. 드디어 하프마라톤의 절반 정도 되는 거리인 10km 달리기에 성공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매주 1km씩 거리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시작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 목표들을 매주 달성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9월에는 하프마라톤을 뛸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습니다.
개리 비숍의 《시작의 기술》이라는 책에 로마의 황제이자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야기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이 규칙을 기억하라. 혹시라도 억울한 기분이 들려고 하면 '나는 불운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걸 잘 이겨내면 '행운이 올 거야'라고 생각하라
처음에 달리기는 저와 절대 맞지 않는 운동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만두려 했지만 커뮤니티의 '함께'라는 암묵적인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뛰었습니다. 힘들기만 했던, 처음을 버텨내고 나니 계속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매주 달리기 덕분에 성취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시작은 어렵습니다.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것이니,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그 시작의 어려움만 잘 이겨낸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걸 달리기를 통해서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