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늦추면 사람이 보입니다.

행복하고 싶은 마음.

by 달빛한줌

1. '성장 강박증'이 찾아오다.


stress-3853148_1920.jpg

2020년. 1년간의 육아휴직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이 기간 동안 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성장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시작부터 조금 틀어졌습니다. 1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두 아이가 3개월간 유치원을 가지 못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유치원 등원이 허락된 5월이 돼서야 겨우 낮시간을 제 성장을 위한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을 가지 못했던 시간 동안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 집에 있으면서 제가 계획했던 시간들을 충분히 가질 수 없었습니다.


제 성장만을 위해 무작정 아내에게 육아의 짐을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휴직을 허락해준 것만도 감사하고, 아내 또한 올해 10월 시험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데드라인이 있는 아내의 시험을 위해 제가 더욱 육아에 신경 써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안했습니다. 야심 차게 시작한 휴직인데, 이미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5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 해낸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은 저를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럴 거면 그냥 회사 다니며 돈이나 벌걸, 괜히 휴직한다고 설쳤구나'라는 생각을 수십 번은 한 것 같습니다.


복직까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제부터라도 제 자신의 성장을 위한 시간들을 충분히 갖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마음 때문인지 최근 '성장 강박증' 비슷한 것이 제게도 생겼습니다. 제가 설정한 하루 루틴을 해내지 못하면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최근 아이들이 2주간의 유치원 방학을 맞았는데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잘 때까지 아빠를 가만두지 않고 놀자고 하는 아이들이 조금은 미웠습니다. 그런 마음이 행동으로도 표출되어 가끔 짜증, 혹은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제 성장을 가로막는 '방해꾼'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2. 속도를 늦추면 사람이 보인다.


nature-3176542_1280.jpg

최근 첫째 아이가 무릎이 아프다고 해서, 그리고 둘째 아이의 다리 모양이 휘어 보인다는 동네 어머니들의 말에 두 아이를 데리고 정형외과에 다녀왔습니다. 진료를 다 받고 나올 때, 병원 주차장 쪽 벽면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볼 수 있었는데요.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있었습니다.


"속도를 늦추면 사람이 보입니다."


모든 독서는 왜곡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작가의 글을 보더라도 결국 읽는 이의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이해하는 범위가 달라진다는 것인데요. 저는 현수막에 적혀있는 문장이 지금의 저를 꾸짖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성장에만 매몰되어 제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들, 가족을 보지 못하는 저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것 같았죠.

현수막의 문장을 보고 난 이후, 며칠 전 사랑스러운 우리 첫째 따님께서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빠 조금 있으면 회사가?"

"응, 아빠 5개월 지나면 회사 다시 가야 돼."

"아빠, 회사 가지 마. 아빠가 회사를 안 가서, 매일 놀 수 있어서 너무 좋아."


아직 복직까지 5개월 정도 남았지만, 아빠가 곧 회사에 갈 것 같았는지 울먹이면서 말했던 그때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저는 지금까지 휴직 전반부의 시간을 버려진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계획했던 제 성장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실 그 시간을 통해 저는 아이들의 진짜 아빠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버려진 시간이라 생각했던 순간들이, 아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빠가 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성장만을 맹목적으로 쫒고, 그것만이 나의 휴직의 최고 가치라고 생각했었는데, 잠시 그 선로에서 벗어나니 그때서야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에게 달려와 뽀뽀부터 해 줍니다. 아빠와 노는 것을 최고로 좋아합니다. 유치원이나 밖에서 재미난 경험을 하고 나면 항상 다음번에 아빠를 데려가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내는 제가 해주는 요리에, 그리고 저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말합니다.(물론 가끔 돈이 필요하다는 잔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성장을 쫓는 속도를 조금 늦추니, 가족이 보였습니다.


3. 제가 원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love-3145948_1280.jpg

저는 책 속에서 소개되는, 혹은 책을 낸 사람들처럼 꽤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근사한 사람이라는 기준은 모두 제각각일 것입니다. 어쨌든 제 기준엔 그들이 근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선 반드시 성장이 필요했습니다. 휴직 기간 동안 독서, 글쓰기, 영어 등을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에는 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한 걸음씩 성장 강박증의 늪에 발을 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제 성장을 위한 시간 외에는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김주환 님은 그의 저서 『회복탄력성』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100미터 달리기처럼 정해진 결승선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온갖 방향으로 다 달려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모든 사람들이 달려가고, 그 목적에 누가 빨리 도달했느냐를 기준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이 인생이 아니다. 달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경기장 옆에 핀 꽃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뒤로 돌아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 『회복탄력성』, 김주환 저, 위즈덤 하우스 -


회사 내에서의 일반적인 경쟁이 아니라, 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랜 고심 끝에 휴직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원했던 성장을 100미터 달리기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빨리 결승선에 도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바라는 삶이 맹목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삶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올해 초 100개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었는데요. 거기에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존경받을 수 있는 아빠 되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성장만이 아니라 가족을 포함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 즐거움을 주는 행동(GOD 콘서트 가기, 슈가맨 방청 등) 등 다양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버킷리스트를 다시 보며, 제가 원했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저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성장은 그중의 한 꼭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성장이라는 한 꼭지에만 매몰되어 주변의 다른 것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루빨리 성장을 이루어내야겠다는 성장의 속도에 더 이상 목매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저 조금이나마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꽃을 볼 줄 아는, 그리고 가끔은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 있는 사람이 제가 진실로 원하는 My Life니까요.



P.S 성장 강박증이라고 해서 정말 성장을 위해 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실 텐데요. 사실은 게을러터진 사람입니다. 사실 코로나는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책 보는 것보다 TV 보는 것을 더 좋아하고, 글 쓰는 것보다 머릿속에 되지도 않는 망상을 써 내려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미라클 모닝보다는 침대와 혼연일체가 되어 누워있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마음만 바쁘고, 현실 생활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니 강박증에 빠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