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우리 회사에서는 명사 초청 강연이 열린다. 오늘은 가정의 달을 맞아 『행복의 기원』의 저자인 연세대학교 서은국 교수께서 '행복'을 주제로 귀한 걸음을 해주었다.
평소 온라인으로 편하게 시청하곤 했지만, '행복'이라는 단어에 특히나 관심이 많기에 (아마도 결핍이 있나 보다) 오랜만에 현장 강연을 직접 찾아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교수님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들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행복에 대한 생각들을 기분 좋게 깨뜨려 주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던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행복과 같은 이런 정서적인 경험은 머리의 명령을 받지 않도록 설계가 되어있어요. 그래서 행복과 관련한 자기 계발서 600권을 읽어도 크게 행복해질 수가 없는 건 당연해요
우리는 종종 행복해지기 위해 머리로 애쓴다. "감사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와 같은 자기 계발서의 조언들을 따르려 노력한다. 하지만 서은국 교수는 행복은 감정의 영역이지, 이성적인 명령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다짐을 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없다면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행복에 관심이 많았던 나도 한때 행복한 나를 꿈꾸며 감사일기를 100일 넘게 꾸준히 써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기대했던 만큼 드라마틱하게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내 정성이 부족해서,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고 흉내만 내서 그런 걸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마치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숙제의 답을 찾은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시원해지면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행복의 본질은 좋은 경험의 총합이에요
거창한 목표 달성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경험들로 일상을 채워나갈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스스로 발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성공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기보다는, 나만의 고유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거 하지 마라", "위험하다"와 같은 말들로 스스로 혹은 타인의 다양한 경험을 제한하곤 한다. 그렇게 하나둘씩 울타리가 쳐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좁은 세상에 갇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좋은 경험들로 채워나가야 할 삶의 공간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경험의 울타리를 치지 않는 아빠가 되자고 다짐했다. 어제, 둘째 아이에게 7단 기어가 달린 새 자전거를 사주었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뒤를 따르며 내뱉은 첫마디는 "일어서서 타지 마!", "너무 빨리 달리지 마!", "코너에서는 속도 줄여!"와 같은 잔소리였다. 아이의 즐거움보다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강연을 듣고 나니, 그런 나의 모습이 아이의 행복을 가로막는 행동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퇴근 이후에 비가 그쳐서 아이와 함께 다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이번에는 정말 단 한마디의 "~하지 마"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신나게 페달을 밟았고, 우려했던 사고 없이 즐겁게 자전거 타기를 마쳤다. 아이들의 행복한 경험을 빼앗지 않는 아빠가 된 기분이다.
행복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방법 하나는 많은 즐거움을 찾고 그것들을 내 삶에 깔아놓는 것밖에 없어요
돈에 대해서 자꾸 생각을 하면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돼요
최근 우리 사회는 물질적인 가치를 지나치게 중시하며, 돈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어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기도 한다.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 1위가 표면적으로는 암이지만, 그 배경에는 사회적 고립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암에 걸리고 자살하는 사람들의 환경을 보면, 사회적 고립감에 있는 사람이 더 큰 확률로 그러한 상황을 맞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홀로 힘들어했을 일부 연예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떠올랐다.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상, 그들은 늘 관심과 감시 속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황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솔직히 나 또한 최근 경제적/시간적 어려움에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왜 둘이나 낳았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말이다. 경제적인 여유와 개인적인 성장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을 듣고 나니,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더 많았다면 정말 더 행복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잠들기 전 아이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단둘이 먹는 야식, 주말 한강에서의 즐거운 시간들... 가족이 있기에 가능한 이 모든 순간들이 어쩌면 나를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지켜주고,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 아이들이 성장하여 각자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가끔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될 테니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배는 어떤 배일까? 말할 것도 없이 항구에 묶어두는 배예요. 얘는 폭풍을 맞이할 리도 없어서 걱정할 거리가 없죠. 하지만 배는 이런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에요
흔히 걱정 없는 평온한 삶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교수는 이러한 생각이 오히려 행복감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걱정 없이 살기 위해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피하고, 낯설고 어려운 일들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늘 똑같은 안전지대에만 머무르게 된다. 물론 당장의 걱정거리는 줄어들 수 있겠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들 긍정적인 경험들을 쌓아나갈 기회 또한 놓치게 되는 것이다.
교수님은 "가장 불행한 배는 항구에 묶여있는 배"라고 말했다. 모험을 떠나지 않으면 폭풍우를 만날 걱정은 없겠지만, 동시에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며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과 성장의 기회도 잃게 된다. 걱정과 낯섦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용기를 내어 다양한 시도를 하고 경험을 수집하며 우리 삶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야 한다
서은국 교수님의 강연은 내게 행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경험하는 것,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것, 그리고 도전과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 온다.
나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경험을 허락하고,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며, 내가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것들을 더 많이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복 경험'들을 내 일상에 더 많이 뿌려놓을 것이다.
행복은 좋은 경험의 합이다. 걱정 없는 삶을 추구하기보다 다양한 경험과 관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