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행복해지는 시간.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부터 찾는다. 약 7시간 동안 암흑 속에 있던 눈이 갑작스럽게 전자파에 노출되면 안 좋은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핸드폰 중독이다. 핸드폰으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최근 이슈 되는 기사들을 읽는 것이다. 주로 정치, 경제, 사회면의 기사들을 본다. 나의 성향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알고리즘 때문인지 해당 유형의 기사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최근 내게 자주 노출되는 기사는 의료 파업과 관련한 기사들이다.
의사인력 확대 및 공공 의대를 추진하려는 정부, 그리고 정부의 법안을 반대하며 파업하는 의사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각각의 언론사들은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데, 의료계의 현황에 무지한 나는 이러한 다른 성향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헷갈린다. '과연 어느 쪽 말이 옳은 것일까?'
최근 파업하는 의사들을 상대로 정부가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봤다. 코로나가 재 확산되는 시기에 국민 생명을 담보로 파업을 진행하는 의사들을 정부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의사들 또한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직업의 자유를 해친다는 명분으로 정부를 상대로 고소했다고 하며 교수들 또한 전공의에 대한 제재를 묵시하지 않겠다고 한다. 의료계와 정부의 엉킨 실타래가 풀어질 기미는커녕,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코로나가 재 확산되고 있는 지금, 어쩌면 가장 중요한 두 이해관계자들이 화합보다는 극렬한 대립을 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숍 이야기 중 우리가 잘 아는 해님과 바람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해님과 바람님이 누가 더 힘이 센지 말다툼을 벌였다. 그들은 지나가는 한 노인의 코트를 벗기는 자가 더 힘이 센 사람이라고 결정하기로 했다. 먼저 바람님이 나섰다. 푹풍이 일어날 정도까지 바람을 뿜어냈다. 그러나 바람이 세면 셀수록 노인은 코트를 더욱 꼭 움켜잡았다. 결국 바람님은 실패했다. 다음으로 해님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노인은 더움을 참지 못해 옷을 벗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우화를 들어왔을 것이다. 이 우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온순하고 다정함이 노함이나 강함보다 더 힘이 세다"라는 것이다. 힘으로 상대를 이기려 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정부의 결정이 조금 아쉬웠다. 정부와 의사,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무지한 내가 감히 그것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대화와 소통을 통한 협치보다 명령과 경고를 통한 법적 제재가 우선시 되는 모습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두 아이의 아빠다. 아이들이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몇 년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그것이 별로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들 잘 되라고 하는 말이지만, 그것이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느껴질 때에는 단지 잔소리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안다. 수많은 육아 관련 서적에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야단과 명령보다는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물며 어린아이들도 이와 같을진대, 자아가 확립된 성인에게 힘을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 유재석 양세호 님이 진행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봤다. 역사 수집가 '박건호'님이 출연했다. 인터뷰 도중 그에게 꼭 기억할만한 역사적인 인물을 묻자 그는 세종대왕을 꼽았다. 그가 세종대왕을 뽑은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세종대왕은 전분 6 등법과 연분 9 등법을 실행하려고 했다. 실행 전 사람들에게 투표를 했다. 약 17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당시 조선의 인구 70만 명 중 약 4분의 1이 투표한 것이다. 사실상 노인, 어린이, 여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성인 남성에게 의견을 물은 것이다.(당시 투표권을 갖고 있던 전부) 전국 각지를 돌며 의견을 묻는데만 무려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결과는 찬성 9만. 반대 7만. 과반 이상이 찬성했다. 이런 결과가 나타났으면 대부분의 왕들은 자신의 정책을 실행했을 텐데 세종대왕은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반대의견 또한 상당했기에 '누구도 억울하게 세금을 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고민하며 법을 계속 수정했다. 무려 25년 동안 말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왕이라고 불리는 세종대왕은 확실히 남달랐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왕권 체제였던 조선시대에도 그는 자신의 뜻만을 밀어붙이고 강요하며 정책을 실행하지 않았다. 설령 자신의 생각이 100% 옳다고 생각해도, 그리고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었다고 해도, 누구 하나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려 25년 동안 고민하고 수정했다고 한다.
물론 장기간 안정적으로 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당시와 지금의 단기 임기 체제인 대통령제는 분명히 다르다. 무엇을 추친하기에 세종대왕님처럼 느긋이 기다릴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통령님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좋은 정책을 실현하는 것보다 국민의 동의와 화합을 우선적으로 이끌어내는 먼저가 아닐까?
아무리 좋은 음식도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시간에 쫓겨 조급히 행동하는 것은 설령 좋은 정책이라도 반드시 그 부작용이 뒤따른다. 나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을 믿는다. 세종대왕님처럼 25년을 기다릴 수는 없겠지만은 정부와 의사가 천천히 정책을 꼭꼭 씹어먹으며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지도자의 역량은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갈등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갈등 상황은 소통의 전시 상태다. 소통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대충 덮은 채 넘어가지 말고, 갈등의 근원을 찾아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저, 위즈덤하우스 -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 시절의 청와대 글쓰기를 담당했던 강원국 님의 책을 읽다 이와 같은 문구를 발견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지도자의 역량은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 소통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위는 아마도 평범한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압박을 받는 위치일 것이다. 두 아이의 아빠 노릇, 회사에서 몇몇 후배들의 선배노릇 하기도 벅찬 내게, 5천만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대통령의 심정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것이 대통령이라는 독이든 성배를 마시기로 선택한, 그리고 한 나라의 리더로서의 숙명인 것을.
코로나의 종식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지금, 하루빨리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께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년 전, 온 국민에게 밝은 희망과 미래를 꿈꾸게 해 주셨던 그때의 모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