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해서 돈 벌었어요. 그런데 불안해 죽겠네요.
어린 시절, 저는 저축왕이라 불렸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용돈 세뱃돈 등을 받으면, 즉시 집 근처 은행으로 달려가 통장에 바로 입금했었습니다. 그 결과 초등학교 졸업 즈음에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는 드물게 백만 원이 훌쩍 넘는 개인통장을 소유했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39년간 저축만이 돈을 모으는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알뜰살뜰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제가, 2020년 8월에 주식을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듣는 일확천금의 성공 신화, 언론과 책에서 소개되는 믿기지 않는 재테크 스토리를 듣고도 꿈쩍하지 않았었는데, 작년부터 시작된 주식시장 광풍의 유혹은 도무지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습니다. 매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주변에서 흔하게 듣게 되는 "돈 벌었다"는 이야기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배짱 없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단돈 일만 원만 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식을 시작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기에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삼성전자에 묻지 마 투자를 할 뿐이었죠. '나 주식해요'라고 말하기도 창피한 300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말입니다. 제겐 이 정도 액수가 심리적으로 잃어도 되는 마지노선이었습니다.(막상 잃게 되면 피눈물을 흘렸겠죠.) 그런데 웬 걸이요? 돈을 꽤 벌었습니다. 그저 야식 한 번 먹을 수익만 바랄 뿐이었는데 그 몇 배로 말입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수익이 생겨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내 돈의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루 종일 주식의 오르내림을 살피기 위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불안 초조한 심정으로 말이죠.
지금 사야 할까?
이렇게 가격이 떨어졌는데
이제 오를 일만 남지 않았을까?
지금 팔아야 할까?
아냐... 조금 더 기다려볼까?
주린이 of 주린이 주제에 건방지게도 신의 영역인 매수 매도 타이밍 맞추기에 도전했었습니다. 개장 30분 전인 8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제 일상은 올스톱이 되었습니다. 단 한 번도 제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말이죠.
8월에 주식을 시작했으니, 이제 갓 4개월이 됐습니다. 운이 좋게도 주식시장의 광풍 덕분에 꽤 쏠쏠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축만 했다면, 기껏해야 연 2% 수익에 그쳤을 텐데 그 몇 배에 해당하는 돈을 번 것이죠. 그런데 희한합니다. 어떠한 노력 없이 수익이 생겼으니 당연히 기쁘고 행복해야 할 텐데, 그 마음은 잠시뿐이었습니다. 이내 불안 초조 긴장 비난 고민이 저를 지배하게 됩니다.
주식을 매도하고 수익을 얻었음에도 해당 주식이 계속 오름세를 이어나가면
바보야. 그냥 장투(장기투자)해야지
한심한 놈아...
혹은
이렇게 주식을 잘하는데...
조금 더 배짱 있게 많은 돈을 투자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익이 생기든 그렇지 않든, 예상이 맞든, 틀리든과 관계없이 저는 항상 스스로를 비난하고 질책하고 있었습니다. 300만 원으로 시작했던 투자금액은 어느새 몇 배로 커졌고, 그만큼 수익이 늘었지만 그에 비례해 불안감은 훨씬 더 커졌습니다.
주식 투자에는 2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시점 투자와 가격투자. 시점 투자는 차트와 주가의 흐름을 보며 매수와 매도를 결정하는 방법이고, 가격투자는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여 매수 매도 가격 기준을 스스로 설정해 가격에 따라 투자하는 방법입니다. 시점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주가의 변동, 경기 흐름, 시장 동향, 투자자들의 심리적 요인인 반면, 가격투자는 주변의 상황과는 별도로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산정하고 자신이 설정한 가격대에만 매수 혹은 매도를 진행하면 됩니다.
투자하는 돈이 커지면서 불안한 마음에 조금씩 재무제표라는 것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차트만 보고, 빨간색 파란색 숫자들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에,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올해부터 가치투자라는 것을 해보고 있습니다.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통해, 적절한 가격을 산정하고, 제가 정한 가격 기준에 따라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정한 가격에 기준을 두었기에 단기간의 주가 흐름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10분이 멀다 하고 주식창을 들여다봤는데 말이죠.
'책 몇 권을 읽고 가치투자를 한다', '주린이 주제에 주식에 대해 안다'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수익이 공부의 결과가 아닌, 주식시장의 과열 때문이라는 것을요.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행동을 하든, 그 행동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식시장의 흐름과 변동을 추측하며 매수 매도 타이밍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기준점을 외부에 두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것이 옳든, 틀리든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투자를 하는 것은 기준점을 내부, 자신에게 두는 것이죠. 이 두 방법의 차이는 꽤 큽니다. 똑같은 주식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있느냐 아니냐, 즉 행복한 마음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인 박웅현 님은 『여덟 단어』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가 아닙니다. 기준점을 바깥에 두고 남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안에 두고 나를 존중하느냐일 겁니다.
- 여덟 단어, 박웅현, 북하우스 -
주식 흐름을 보며 감히 당치도 않는 신의 영역에 도전했고, 수익을 얻었음에도 다른 이들이 더 많은 수익을 얻으면 배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더 이상 그러지 않습니다. 두둑한 배짱이 없는 저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투자금액 안에서만 주식을 운영합니다. 주가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제가 설정한 가격대에 따라 매수 매도를 결정합니다.(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제가 주식을 잘한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지금의 수익이 주식시장의 과열 때문이란 것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타인의 행동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무언가 쫓기는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가 좋다고 절대 행복하지 않습니다. 수익을 벌었어도, 기준점을 외부에 두면 자신을 질책하고, 타인의 성공을 배 아파만 하게 됩니다. 결과와 관계없이 기준점을 자신의 내부로 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편안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그러면 기준점을 밖이 아닌 나에게 둬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