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그리고 독서
1년의 휴직을 시작하며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최호진 님의 가르침하에 연초에 야심 차게 '2020년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들었습니다. 100개를 완수하기는 힘들겠지만, 시간이 허용되는 한 최대한 해 보려고 합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또다시 가까운 시일 내에 언제 있을지 모르기에 말이죠.
100개의 버킷리스트 안에서도 나름 우선순위는 있습니다. 독서 영어공부 달리기 그리고 글쓰기. 사실 이 네 가지에 조금 더 몰입해 보고 싶어 휴직을 한 것입니다. (뭐 이런 걸로 휴직을 다하냐 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오늘은 그중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약 2년 6개월 전. 그러니까 2017년도까지 저는 책 한 권 읽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성인 연간 독서량 0권에 대략 15년간 한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입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는 회사에서 능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연차는 자꾸 올라가고,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수룩하고 후배들에게 어떤 인사이트도 주지 못하는 제 자신이 창피했습니다. 가뜩이나 소심한 성격인데 자존감마저 떨어지니 회사에서 자꾸만 위축되어 갔습니다. 제게 신입 때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던 10년 차 선배님들은 정말 똑똑하시고 자신감 넘치셨는데, 제게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회사만이 저의 유일한 선택지이기에 (능력과 깡, 그리고 돈이 부족한 저는 그것밖에 대안이 없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회사생활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저도 능력 있고, 신뢰할만한 멋있는 선배이자 후배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내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 훌륭하신 분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독서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조금이나마 그들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말이죠.
2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약 120권 정도의 책을 읽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많은 권수는 아닙니다. 지금이야 책을 읽는데 조금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책만 보면 물밀듯 한 수면 쓰나미가 몰려왔습니다. 하얀 종이에 적혀있는 한글만 보면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영어 원서도 아니고 평생을 봐왔던 한글인데 10장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겨우 한 권을 다 읽어도 책 속의 내용들이 하나도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통장에 들어온 월급처럼 저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정류장뿐이었습니다.
이런 순간이면 여지없이 '나는 책과 안 맞는 사람이야, 읽어봤자 소용없을 것 같다'라는 '자기 적성 미스매치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이전의 저였으면 쉽게 포기했을 텐데요, 당시에는 회사에서의 제 모습을 바꾸고 싶다는 절실함이 조금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졸음과 지루함을 뒤로하고 계속 책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재미없는 책을 도대체 사람들은 왜 재미있다고 할까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년은 10년 동안의 회사생활 중 가장 꿈만 같았던 한 해였습니다. Division 내 사내 공모전에서 제 아이디어가 최종 8팀에 뽑혔습니다. 2019년 한 해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회사 전 직원 중, 칭찬할 만한 9명의 인물에도 선정되었으며, 우수 인재 풀에 등록되어 역랑 개발 지원도 받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감히 상상치도 못한 순간들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물론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독서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책에서 얻은 지식들을 통해 제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단 회사에서만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지난 2년 6개월간 저는 말 그대로 책 따라 살아왔습니다. 박웅현 님의 《책은 도끼다》시리즈와《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여덟 단어》를 읽으며 일상의 행복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아는 것이 있어야 즐길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며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신정철 님의 《메모 습관의 힘》을 통해 스치기만 했던 정보들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두기 위한 메모를 시작했으며, 김민철 님의 《모든 요일의 기록》과 김민식 PD님의 책들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키타 젠지의 《식사가 잘못됐습니다》를 읽은 이후 식단 관리, 그리고 점심 식사 이후 산책을 습관화할 수 있었고(1년 반전에 건강검진에서 고도비만, 고혈압이었던 저는 지금은 정상 몸무게와 혈압을 찾았습니다),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을 따라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엄남미 님의 《삶을 변화시키는 감사 메모》와 제니스 케플런의《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론다 번의《매직》등을 통해 감사일기를 쓰며 현재 약 160일간 매일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안정은 님의《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며 이번 생애에는 정말 저와 관련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마라톤이라는 것에 도전하고 있으며, 이영미 님의 《마녀 체력》을 읽고 어릴 때만 타는 줄 알았던 자전거도 다시 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저는 그녀처럼 철인 3종은 감히 생각지도 않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지만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크리에이터 박웅현 님입니다. 그의 책 《책은 도끼다》를 읽으며, 지루하기만 했던 책이 조금은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독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 당시 그가 《책은 도끼다》에서 이야기했던 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왜 읽느냐, 읽고 나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볼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제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며 지루하기만 했던 하루가 달라졌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마음속에 또 하나의 새로운 열정이 솟아납니다. 그것이 행동이든, 글쓰기이든 얼른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매일을 기대하고, 기대했던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박웅현 님이 말씀하셨던 풍요로운 삶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과연 다음엔 어떤 책을 만나 또 어떤 것들을 하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