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가 쏘아 올린 휴직이라는 작은 공

휴직 이야기

by 달빛한줌

나는 트리플 A형의 성격 소유자다. 소심하고 겁이 많다. 이런 나는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상처 받거나(상대방은 신경도 안 쓸 수 있지만 난 집에 돌아와 그것들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이불 킥을 한다.) 혹은 누군가로부터 내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애초부터 원천 차단한 것이다.


회사에서 나름 선배님들한테 인정받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을 잘해서? 그건 절대 아니다. 그저 상명하복에 최적화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윗분들이 명령이라는 것을 하면 그에 토 달지 않았다. 말씀하신 그대로 따랐다. 사실 내가 아무 말하지 않은 이유는 나의 의견이 없어서도, 불평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것들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것뿐이다. 왜냐면 난 내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겁쟁이였으니까.


이런 내가 1년의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예전에 비해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주변에서 그러한 분들을 찾아보긴 힘들다. 다른 회사를 경험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들리는 이야기들로 어림잡아 생각해볼 때,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조직문화는 최고가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육아휴직자는 거의 없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육아를 대하는 남성과 여성의 생각, 그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돈, 그리고 회사 내 커리어에 대한 걱정 등등 말이다. 그런데 내겐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리 말하자면 참으로 한심하고도 바보 같은 이유로 휴직을 망설이고 있었다.

cat-3602557_1920.jpg <출처 : Pixabay>




어렵사리 아내에게 휴직 허락을 받았다.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이제 회사에 나의 휴직 의향을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비록 남성 육아 휴직자가 많진 않았지만 휴직 사용을 못하게 할 회사는 아니기에 아내와의 내부 협의가 끝난 상태에서 더 이상 나를 가로막을 것은 없었다. 그런데 회사에 나의 휴직 계획을 알리는데 무려 3개월이라는 시간이 또 걸렸다. "휴직하겠습니다."라는 10분도 체 걸리지 않는 말을 꺼내는데 3개월이, 90일이, 2,160시간이 걸린 것이다.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트리플 A형인 나의 성격이었다. 팀의 리더분께 "팀장님 잠시 시간 있으세요? 저 휴직하려고 합니다." 이 두 마디를 도저히 내 입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매일 '오늘은 말해야지, 오늘은 꼭 말해야지' 다짐하며 출근하는데, 언제 말할지 눈치만 보다 '에이.. 오늘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 다음에 다시 기회를 봐야겠다.'라는 미루기만 하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오호. 통재라... 이를 어찌해야 할꼬!! 이 소심한 성격을 말이다.)


당시 나는 글쓰기라는 것에 막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글쓰기와 관련된 명언 등에 대해서 종종 찾아보곤 했다. 그러다 글쓰기의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은 우리 삶의 나침반이다. 자신이 쓴 글대로 우리의 삶은 흘러갈 것이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내 성격을 뜯어고칠 수는 없으니, 글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당장 블로그에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 '나는 6월 19일 날 휴직을 한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혹시나 당시 글이 궁금하시다면 요 링크로 https://blog.naver.com/dolsse822/221556247801 )


나의 글과 말을 통해 몇몇 동료는 나의 휴직 계획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공언했던 날이 다가오자 그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조만간 말하겠네. 파이팅", "드디어 오늘이 말씀드리는 날이네. 내일 어떻게 됐는지 결과 알려줘." 사실 이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힘이 되기는커녕 후회만 됐다. '아~오늘도 말하지 못할 것 같은데, 괜히 쓸데없는 행동 해가지고... 거짓말쟁이 되게 생겼네.'


나 같은 트리플 A형의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불편함을 느껴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상처를 받아도 그것에 대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삭힐 뿐이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처 받고, 때로는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 말해놓고 행동하지 않는 허언증 환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다음날 "나 아직 말 못 했어"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평소 나를 잘 아는 동료들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결국 퇴근시간 6시까지 한 시간 앞두고, 자존심을 지킬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과 함께 행동에 착수했다. 팀장님께 다가가 말씀드렸다. "팀장님, 혹시 시간 있으세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 뒤, 나의 1년간의 휴직은 시작되었다.

public-speaking-3926344_1920.jpg <출처 : Pixabay>




소심한 내가 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것이 글의 힘 덕분이었는지, 그저 자존심 때문이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블로그에 썼던 당시의 글로 주변 동료들이 알게 됐고, 그들의 관심으로 인해 휴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의 휴직의 서막은 블로그에 내가 직접 쓴 글이었다.


소설가 김영하 님은 글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글의 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종이 한 장을 꺼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먼저 쓰고 그 옆에 '내일 죽는다'라고 쓸 수 있겠냐고 물으면,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의 힘을 깨닫는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글의 힘을 한번 믿어보시라 말하고 싶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돈 나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이왕이면 누군가가 볼 수 있는 곳에 적으면 나의 경우처럼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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