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다람쥐 May 15. 2021

정녕 우리 아이를 위한 행동일까요?

놀이공원에서 생긴 일.

5월 5일, 어린이 날을 맞아 아내, 그리고 8살, 6살 두 아이와 함께 과천에 위치한 서울랜드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탐탁지는 않았습니다. 날이 날인만큼 어마 무시한 인파들이 몰릴 거라 뻔히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몇 주 전부터 어린이 날에 꼭 서울랜드에 가고 싶다고 부르짖던 아이들 때문이죠. 평소 좋아하는 슬라임과 애니멀 포스로 꾀어봐도 소용없었습니다. 진짜 선물은 오직 서울랜드뿐이라며, 다른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예상대로 였습니다. 개장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도착했는데도 이미 사람은 인산인해였습니다. 정말 엄청난 인파였습니다.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서 기본으로 1시간 이상씩 줄을 서야만 했습니다. 최고 인기 있는 놀이기구 중 하나인 급류 타기를 타기 위해선 약 2시간, 바이킹을 타기 위해선 약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라바나 범퍼카는 길게 이어진 사람들의 행렬의 위압감에 짓눌려 감히 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1.


터닝 매카드 줄을 서고 있을 때였습니다. 할머니 한 분과, 엄마, 그리고 유치원 생으로 보이는 아이. 이렇게 셋이 저희 가족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엄마와 아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더군요.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남기면서요. "엄마, 나 00랑 저기 갔다 올게. 줄 잘 서있어." 아이가 줄을 서있던 놀이기구 외에, 다른 놀이기구가 타고 싶었나 봅니다. 엄마와 아이는 할머니 혼자 대리 줄을 서게 한 체,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최소 앞으로 1시간 이상은 줄을 서야 할 텐데, 할머니 혼자서  그 긴 시간을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말이죠. 할머니는 놀이공원에서 자신의 딸, 그리고 손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을 텐데, 함께 온 두 사람과 떨어진 체 혼자서 멀뚱멀뚱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죠.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2.


이번에는 서울랜드 최고 인기 놀이기구인 급류 타기 줄을 설 때였습니다. 그 인기만큼 줄의 길이가 엄청났습니다. 그래도 서울랜드에 왔는데, 급류 타기를 타지 않고 돌아간다면 그건 서울랜드에 오지 않은 것과 진배없으니, 기다림을 감수하고서라도 줄을 섰습니다.


1시간을 기다려서야 본래 놀이기구 타기 위한 입구 대기줄에 도착했습니다. 앞으로 약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위치였죠. 그곳에서 약 40분을 더 기다려 이제 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어느 한 여성이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와 함께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줄 서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기를 한참, 곧 한 남성의 옆에 섭니다. 오랜 시간 아빠가 대리 줄을 섰고, 아이와 엄마는 다른 놀이기구를 탄 이후, 바로 아빠가 서있는 쪽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아이와 엄마는 급류 타기를 타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 줄 서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행동일까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심리를 반영하듯, 소위 학군이 좋다고 불리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높게 형성되어있죠. 아, 물론 그러한 지역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다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개개인의 생각에 따라 그럴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놀이공원에서의 부모들의 행동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사실 저는 조금은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할머니를 홀로 두고, 엄마와 함께 자신이 타고 싶은 놀이기구를 탄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할머니는 혼자 기다려도 되는 사람이야.' 그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고, 자신의 아이, 엄마와 놀이공원을 오게 될 때, 그 아이는 자신의 엄마에게 어떤 행동을 할까요? '엄마는 손주를 위해 혼자 줄 서도 되는 사람이야.'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과연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힘들고 지치고 귀찮지만 약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달콤한 열매인 급류 타기를 탄 아이들과 달리, 부모들의 대리 줄 덕분에 기다림이라는 고난 없이 열매만 따먹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아, 엄마 아빠는 내가 쉽게 즐거워질 수 있도록 이 정도 고생은 당연히 해줘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요?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일정한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는 교훈을 그 아이들은 얻을 수 있을까요?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 날.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날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부모들의 그 마음, 두 아이의 아빠로서 저 또한 절대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와중에도 부모는, 자신들의 행동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8년에 걸쳐 미국인 6000명 이상의 음주 습관을 추적한 연구 자료가 있다. 거주하는 지역 내 주류 상점의 개수에 따라 주민들의 음주 습관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살펴봤다. 주류 상점의 밀도가 증가하자 음주 횟수도 증가했다. 약 1.6제곱킬로미터당 상점 네 곳이 늘어날 때마다 남자들의 주당 맥주 소비량은 32퍼센트씩 증가했다. 여성들의 와인 섭취량은 16퍼센트씩 증가했다.

- 『해빗』, 웬디 우드, 다산북스 -


성인일지라도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개인의 의지로 환경 따위는 극복할 수 있다'라는 것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경이 미치는 영향력을 절대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부모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아이가 가장 신뢰하는,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행동과 생각을 표준으로 인식하고 따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비추는 행동 하나하나의 영향력은, 다른 외부의 자극들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소한 것이라도 부모의 행동에는 조금은 세심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이가 조금 더 인격적으로 성숙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작가의 이전글 쑥스럽지만책임감을 갖고 소개해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