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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작가 Aug 28. 2021

상처 없이 큰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고들 한다.


첫째는 첫째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크고 작은 상처가 아니더라도 각각 어린 시절겪어야만 했던 어려움들이 있다. 맏이들은 맏이로서  양보해야 했고, 책임감과 부담감을 함께 가져야 했고, 동생에게 부모님의 사랑을 뺏기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터울의 오빠가 받는 사랑과 비교해볼  느끼는 상대적인 감정이다. 부모님의 애정이 나보다 오빠에게  많이 가고 있다고 느껴  부분에 대해  번이고 서운함을 토했다. 기억하기로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러고 보니   대를  따라다닌 생각이었다.


아홉 살, 다 같이 먹는 식사시간에 오빠 밥그릇에만 반찬을 올려주시던 엄마의 젓가락에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동그란 식탁에 모여 앉아 오빠의 밥그릇에 반찬이 올라갔을 때, 내 차례를 기다렸다. 안 보는 척 하지만 기대하면서 일부러 밥을 천천히 뜨고 있던 내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기다림에도 오지 않던 엄마의 젓가락에 식사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분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아홉 살의 소심한 아이에게는 너무 큰 서운함이었다.


열여섯, 진학할 고등학교를 정해야 했다. 오빠의 고등학고 진학을 앞두고, 원하는 고등학교를 적어서 내야 하는 가정통신문을 가져왔다. 엄마랑 오빠랑 나란히 엎드려 누워 종이를 바라보며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고, 나는 그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2년 뒤 나에게도 그 가정통신문이 왔고, 나도 엄마랑 나란히 누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 당시 하루하루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셨어야 했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으나 열여섯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오빠랑은 머리 맞대고 같이 했으면서 왜 나한테는 잘 생각해서 제출하라는 말만 하냐고, 왜 내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냐고.


열여섯 사춘기의 나는 꽤 힘들었다. 막내라서 혹은 여자라서 집안의 심부름을 늘 도맡아야 했다. 식사자리에 앉으면 물 가져와라, 가위 가져와라.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사이도 틀어졌고, 억울하게 당하는 일도 있었고, 오빠와 다섯 마디 이상이면 싸움으로 울음을 터뜨리면서 끝난 데다 엄마 아빠의 잔심부름이 그렇게 싫었다.


왜 나만 시키냐, 왜 나한테만 그러냐 울고불고 해도 하필이면 가정경제를 살리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어려우셨을 시기라 내 말을 들어주실 여력이 없었으리라. 사춘기의 열여섯은 과연 이해할 수 있었을까. 더 이상의 서운함을 표현하지도 않고 필요 외에는 방 안에만 들어가 있었다. 방 안에서 ‘하- 여기저기서 왜 다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거냐. 어디로 혼자 나가버릴까. 내가 없어져봐야 이것저것 시킬 사람 없어서 소중한 걸 느끼시겠지!’라고 생각했다는 건 아무도 모르겠지.




부모님은 내가 사춘기도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아기 때부터 순했던 나는 사춘기도 없이 순탄하게 컸다고.

‘내가 그렇게 힘들다고 티 낼 때 아무도 몰라줬으면서! 얼마나 화가 들끓었는데, 혼자 그 화를 달래느라 무척이나 애썼다고!’

처음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성인이 돼서야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다. 무슨 소리냐고, 나도 사춘기 있었다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서운한 기억들이 과연 가족들의 사랑이 작아서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거다. 넘치는 사랑과는 별개로 순간순간 서운한 감정이 생기는 상황은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겠지. 사소한 일들도 서른이 된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걸.




내가 기억하는 좋지 않았던 상황들만큼은 태어날 내 아이에게 경험하지 않게 해 주리라. 완벽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 아이가 서운하다 힘들다 이야기해준다면 그랬냐고, 그럴 수 있었겠다고 토닥여주며 아이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눠주리라 여러 번 다짐을 한다.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넌 꼭 별거도 아닌 거 가지고 그러더라’라며 결코 시덥잖은 소리겠거니 하찮은 감정으로 여겨 고개를 돌리지는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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