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뭐야? 지금 이거 뭐야?"
정말 내 뱃속에 아기가 있는 건지, 그래서 건강하게 잘 놀고 잘 자고 있는 건지 온종일 무척이나 궁금하다.
2주에 한 번씩 병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생각지도 못했다가 갑자기 처음으로 심장소리를 듣게 된 날의 벅차오름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쿠궁 쿠궁' 심장소리일 뿐인데 그 소리를 하루에 몇 번이나 듣는지 모르겠다. 어떤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데 내 몸속에서 살아있다니. 내 몸속에서 생명체가 하루하루 커가고 있다니.
진료날이 되어 초음파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기가 얼마나 큰 건지, 지금 잠을 자고 있는지, 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저녁에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누가 내 뱃속에서 노크를 '콩' 한다. "어머, 뭐야? 지금 이거 뭐야?" 소리가 단번에 나왔다.
아니 이걸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까. 시간이 지나 이미 한창 육아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날의 첫 태동 느낌을 설명하고 싶어 새끼손가락으로 내 배를 콕 찔러본다. 아니야, 이게 아니다. 이런 건조한 터치가 아니다. 내 손가락보다 훨씬 더 앙증맞고 귀여운 노크였다. 아쉽게도 그날 뱃속 주인의 노크는 단 한 번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매일매일 아기의 존재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소통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이제 병원 가는 날만 기다리지 않고 뱃속 주인의 신호만 기다린다. 아주 작은 탱탱볼 하나가 살짝 튕겨지는 느낌일까. 이제 '나와 뱃속의 아기'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이 날부터 그 어떤 관계보다도 찐하고 가까운 사이가 됐다.
그렇게 아기가 어느덧 3kg이 가까워지면 꿀렁꿀렁 한참을, 하루에도 몇 번씩 놀곤 한다. 지금은 자고 있나 보구나, 지금 한창 놀고 있구나. 혼잣말을 잘하는 이 엄마가 재잘재잘거리며 노크를 하면 내 뱃가죽을 주욱- 밀어내기도 한다. '너랑 노는 거 재미있다!'
태동이라는 걸 직접 느껴보지 못하고 어떻게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찐한 소통을 주고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부성애가 생길 수 있을까? 입덧부터 시작해서 피로감, 체력저하 등 직접적인 영향으로 종일 아기의 존재를 의식하고 살아가면서 아기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생겨나는 것 같은데, 아빠의 입장에선 그저 아내의 배만 쳐다보고 '내 아기다.' 하는 거 아닌가. 부성애의 영역은 확실히 조금 더 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태동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이 나라는 게 참 귀하고 귀하다. 이런 귀한 시간을 아빠들도 느껴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