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담판 끝에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양국 정상은 87분간의 마라톤 회담을 통해 석 달간 이어진 팽팽한 줄다리기를 마무 짓고 합의에 도달했다. 협상 결과, 당초 예상됐던 상호 관세 25%는 15%로 인하됐으며, 자동차 관세 역시 동일하게 25%에서 15%로 낮아졌다. 한국은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밝혔으며, 이 중 현금 투자 규모는 2,000억 달러로 확정됐다.
지난 10월 29일,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담판 끝에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양국 정상은 87분간의 마라톤 회담을 통해 석 달간 이어진 팽팽한 줄다리기를 마무 짓고 합의에 도달했다. 협상 결과, 당초 예상됐던 상호 관세 25%는 15%로 인하됐으며, 자동차 관세 역시 동일하게 25%에서 15%로 낮아졌다. 한국은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밝혔으며, 이 중 현금 투자 규모는 2,000억 달러로 확정됐다.
대통령실은 이번 협상 결과를 "불확실성을 해소한 성과"라고 평가하며 자체적인 성과 부각에 나섰다. 실제로 미국 측의 '현금 100% 선불 투자' 요구를 57% 수준으로 낮추고, 연간 투자 한도를 200억 달러로 설정한 것은 외환 시장에 가해질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협상 타결 이후 공개된 팩트시트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곳곳에 잠재적 위험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1월 14일 발표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공동 팩트시트는 양국의 입장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국 측 자료는 '성과' 중심으로 작성된 반면, 백악관 팩트시트는 한국의 이행 '조건 명시'에 집중했다. 특히 미국 측 문서에는 한국이 이행해야 할 의무 조항들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어, 향후 이행 과정에서 양국 간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큰 쟁점은 관세 인하 시점이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 목재 제품에 대한 232조 관세 15% 인하는 "전략적 투자 MOU 이행을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자로 소급 적용"된다. 이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관세 인하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의미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은 기납부 관세 소급 시점을 8월 초로 확정한 반면, 한국은 빨라야 11월에나 가능하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비관세 장벽 협상은 더 큰 잠재적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11월 1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미 양국이 12월부터 디지털, 농업, 의약품 등 분야에서 비관세 장벽 철폐를 위한 실무 협상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망 사용료 및 온라인 플랫폼 규제 완화 △농산물 검역 기준 개선 △위치 정보 및 개인 정보의 국경 간 이전 허용 △제네릭(복제약) 의약품 관세 철폐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망 사용료 문제는 국내 통신사와 해외 빅테크 기업 간의 첨예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구글, 메타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국내 통신 업계의 주장이다. 반면 미국은 "한국의 망 사용료 제도는 불공정한 비관세 장벽"이라며 철폐를 압박해왔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이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국내 통신 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농산물 검역 문제 역시 민감한 사안이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산 농산물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검역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완화를 요구해왔다.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개방 문제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국내 농업계는 "식품 안전과 직결된 문제를 협상 카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 관세 철폐 요구 또한 국내 제약 업계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당초 거론됐던 100% 관세 부과 우려에서 벗어나 15%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추가 개방 압력이 거세질 경우 국내 제약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2,000억 달러 현금 투자의 구체적인 실체다. 한국 정부는 "외화 자산의 운용 수익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자금 조달 방안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연간 200억 달러씩 10년간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것이 외환 시장에 미칠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전문가들은 "연간 200억 달러 한도 설정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투자 과정에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조선업 협력과 관련된 1,500억 달러 투자 약속의 성격 또한 불분명하다. 정부는 "민간 차원의 상업적 협력"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미국 측은 이를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약속으로 간주하고 있다. 만약 민간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할 경우,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관세 문제 역시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팩트시트에는 "미국이 판단하기에 타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대만 등 다른 국가와의 협상 결과에 따라 한국에 대한 관세 조건이 변동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8월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하되,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은 면제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지만, 언제든지 추가적인 압박이 가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당은 이번 협상 결과를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한 법안들이 다수 존재하여 정치적 공방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3,500억 달러 투자가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며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협상 타결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무역 전문가는 "진짜 협상은 지금부터"라며 "이행 과정에서 미국의 추가적인 요구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경제학자는 "비관세 장벽 협상에서 국익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면 관세 인하 효과는 반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한미 관세 협상의 성패는 이행 단계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관세 인하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부각하고 있지만,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할 비용과 조건들이 만만치 않다. 특히 망 사용료, 농산물 검역, 의약품 개방 등 민감한 사안들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이어서 국내 산업계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2,000억 달러 현금 투자와 1,500억 달러 조선업 협력이 실제로 어떻게 이행될지도 핵심적인 관건이다. 외환 시장 안정을 위해 연간 200억 달러 한도를 설정했지만, 10년간 지속적으로 달러가 유출될 경우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미국이 요구하는 비관세 장벽 철폐 조건을 모두 수용할 경우,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구조적인 변화와 충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
한미 관세 협상은 겉으로는 '윈윈'처럼 포장되었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훨씬 더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비는 넘겼지만, 진정한 시험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부는 이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국익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협상 결과를 현실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기대와 환호는 실망과 분노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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