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대대적으로 예고했던 반도체 관세 부과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집적회로와 반도체에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강경하게 밝혔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결정 지연의 배후에는 중국과의 무역전쟁 재발 우려와 미국 내 물가 폭등에 대한 부담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대대적으로 예고했던 반도체 관세 부과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집적회로와 반도체에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강경하게 밝혔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결정 지연의 배후에는 중국과의 무역전쟁 재발 우려와 미국 내 물가 폭등에 대한 부담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 부과를 늦추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관세를 강행할 경우, 현재 휴전 상태인 미중 무역전쟁이 다시 격화될 수 있다는 게 백악관 내부의 판단이다. 특히 중국이 보유한 희토류 수출 통제라는 강력한 보복 카드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신중론이 힘을 얻고 있다.
희토류는 첨단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군사 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원자재로,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1년간 무역전쟁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반도체 관세를 강행하면 중국을 자극해 희토류 수출 중단이나 통제 조치가 재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 보좌진의 우려다.
관세 부과 지연의 또 다른 배경에는 미국 내 인플레이션 우려가 깔려 있다. 반도체는 스마트폰, 노트북, 자동차, 가전제품 등 거의 모든 현대 전자기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만약 100% 관세가 부과되면 이들 제품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 연방정부 의회예산처(CBO)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철강과 자동차 등 다양한 품목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뒤 소비자 물가가 오르면서 정치적 압박을 받은 바 있다. 이에 행정부는 지난달 200여 개 식료품 관세를 철회하는 등 물가 관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관세가 실제로 부과되면 노트북은 물론 전동칫솔, TV까지 모든 전자제품의 가격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며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소비자들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관세를 들고 나온 본래 목적은 해외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트럼프는 관세 부과 발표 당시 “미국 내에서 제조하거나 제조를 약속한 기업은 면제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삼성전자와 TSMC 같은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짓도록 압박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양날의 칼이다. 관세를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중국의 보복과 물가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반대로 계속 미루면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본격화하지 않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딜레마 속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관세 부과 시기가 계속 미뤄지면서 관련 업계는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공장 건설 계획을 세우면서도 관세 부과 여부와 시기를 예측하지 못해 투자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AI 반도체 패키징 시설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관세 정책의 향방에 따라 이들 투자 계획의 규모와 속도가 달라질 수 있어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당분간은 반도체 관세 카드를 협상 수단으로만 활용하면서 실제 부과는 계속 미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임원은 “트럼프는 관세를 실제로 부과하기보다는 협상 테이블에서 압박 도구로 쓰는 것을 선호한다”며 “당분간은 ‘늑대 소년’ 전략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재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1년간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조치일 뿐이다. 내년 하반기쯤 되면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강경한 대중국 압박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와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첨단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의 핵심 이슈다. 두 나라가 각자의 강점을 무기화하면서 기술 냉전이 심화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중간 국가들의 선택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 부과 시기가 언제가 될지, 그리고 실제로 부과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반도체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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