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이 유례없는 판매 한파를 맞으며 제조사들이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내려놓고 있다. 특히 한때 ‘국민차’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모델들이 줄줄이 단종되고, 브랜드 전체가 소비자의 선택에서 멀어지면서 생산라인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차라리 안 사고 만다”는 외면 속에서 공장 가동률 저하와 판매 부진이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유례없는 판매 한파를 맞으며 제조사들이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내려놓고 있다. 특히 한때 ‘국민차’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모델들이 줄줄이 단종되고, 브랜드 전체가 소비자의 선택에서 멀어지면서 생산라인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차라리 안 사고 만다”는 외면 속에서 공장 가동률 저하와 판매 부진이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르노코리아는 2025년 초 부산공장 가동을 5주 동안 전격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 측은 “전기차 생산 설비 구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그 이면에는 내수 판매 부진으로 인한 재고 과잉과 라인업 전환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 QM6와 SM6 두 주력 모델이 지난 11월을 끝으로 9년 만에 완전히 단종되면서, 르노코리아는 사실상 신차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QM6는 2016년 출시 이후 누적 25만 8000대가 팔린 효자 모델이었다. 특히 도넛탱크 기술을 적용한 ‘LPe’ 모델은 경제적인 LPG 연료로 트렁크 공간까지 확보하며 LPG SUV 대중화를 이끌었다. SM6 역시 15만 7000대 판매를 기록하며 중형 세단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출시 후 두 차례의 부분 변경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두 모델의 퇴장으로 르노코리아의 11월 글로벌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69.4% 급감한 4649대에 그쳤다. 내수 판매는 51% 줄어든 3575대를 기록했다. 신차 그랑 콜레오스가 2403대 팔리며 숨통을 틔웠지만, 이는 과거 QM6 단일 모델의 월간 판매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르노코리아는 현재 부산공장을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차를 한 라인에서 동시 생산하는 ‘혼류 생산 시스템’으로 재구축했다.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폴스타 4’ 양산을 시작하며 북미 시장 수출을 개시했지만, 정작 국내 소비자들은 르노 브랜드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한때 ‘합리적 독일차’라는 명확한 포지셔닝으로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굵직한 존재감을 보였던 폭스바겐코리아가 사실상 시장에서 고립됐다. 올해 월 판매량은 단 한 차례도 1000대를 넘지 못했고, 1~10월 누적 판매량은 전년 대비 39.2% 급감한 4048대에 그쳤다. 이는 2018년 국내 재진출 이후 최악의 판매 실적이다.
폭스바겐의 몰락은 시장 트렌드를 읽지 못한 전략 실패에서 비롯됐다. 경쟁사들이 전기·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전환하는 동안, 폭스바겐은 디젤 비중이 높은 구형 내연기관 라인업을 고집했다. 전기차 ID.4의 국내 출시는 글로벌 시장보다 2년이나 늦었고, 주력 모델인 8세대 골프 역시 해외 출시 2년 후인 2022년에야 한국에 도착했다.
가격 전략도 문제였다. 과거 ‘합리적 수입차’로 평가받던 시절과 달리, 최근 모델들은 수입 대중차치고 비싸면서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보기엔 설득력이 부족했다. “이 가격이면 굳이 폭스바겐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소비자 사이에 퍼지며 브랜드 충성도마저 무너졌다.
업계 관계자는 “판매 부진이 계속되면 마케팅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그러면 또 판매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한국이 더 이상 그룹 차원에서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게 됐고, 유럽이나 중국에 주력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폭스바겐이 잃은 것은 단순한 판매량이 아니라 ‘구매 이유’ 자체다. 시장은 이미 대중화와 프리미엄 양극화로 갈라졌고, 폭스바겐은 그 사이에서 포지션을 완전히 상실했다.
2025년 국내 자동차 시장은 명확한 승자와 패자를 가려냈다. 테슬라는 연속으로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하며 전기차 시장을 장악했다. 7월 기준 테슬라는 7357대를 판매하며 BMW(6490대), 메르세데스-벤츠(5838대)를 모두 제쳤다. 렉서스와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마저 빠르게 점유율을 올리고 있다.
반면 명확한 전략 없이 과거의 명성에 기대 온 브랜드들은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폭스바겐은 7월 601대 판매에 그쳤고, 아우디는 10월 689대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51.7% 급감했다. KG모빌리티 역시 토레스의 초기 인기가 식으면서 내수 판매가 25.6% 감소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전동화와 고급화가 공존하는 지금 시장에서는 중간 포지션에 안주하기 어렵다”며 “전동화 전략을 전면 재구축하거나 특정 세그먼트를 집중 공략해 브랜드 역할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지금의 흐름은 쉽게 반전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이 2006년 이후 19년 만에 장기 가동 중단을 결정한 것은 단순히 설비 개선 차원이 아니다. 내수 판매 부진과 재고 적체로 인해 공장을 돌릴 명분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QM6 마지막 판매량이 601대, SM6가 6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소비자들이 이미 이 모델들에서 등을 돌렸음을 보여준다.
폭스바겐 역시 국내에서는 공식 생산 공장이 없지만, 수입 물량 자체가 급감하면서 딜러망 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월 2000대 이상 팔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현재는 사실상 틈새 브랜드로 전락했다.
자동차 업계는 “소비자들이 ‘차라리 안 사고 만다’며 구매를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며 “가격 인상, 보조금 축소, 불확실한 전동화 전환이 맞물리면서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고 진단했다.
결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제 단순히 신차를 내놓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전동화 로드맵, 가격 경쟁력, 브랜드 포지셔닝, 사후관리(AS) 품질까지 모든 부문에서 소비자를 설득할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야만 공장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19년 만에 공장이 멈춘 지금, 자동차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뼈아픈 교훈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