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인도에 7조 폭탄?! 진짜 이유
자동차 업계가 중국 시장의 높은 의존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를 필두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14억 인구의 인도와 성장 잠재력이 높은 동남아시아 시장을 겨냥,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동차 업계가 중국 시장의 높은 의존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를 필두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14억 인구의 인도와 성장 잠재력이 높은 동남아시아 시장을 겨냥,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15일, 2030년까지 인도 시장에 4500억 루피(약 7조2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발표한 2032년까지 3200억 루피(약 5조2000억원) 투자 계획을 1년 만에 수정한 것으로, 투자 규모를 약 40%나 확대한 것이다. 연간 평균 8000억원에 달하는 투자가 인도 시장에 집중될 전망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는 인도에서 열린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2030년까지 인도를 현대차의 두 번째로 큰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현대차는 현재 약 14% 수준인 인도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15%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인도 첸나이 공장 / 사진=현대자동차인도 시장의 잠재력은 이미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인도는 2022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으로 도약했다. 올해 1분기 기준 자동차 판매량은 143만5000대로 중국(746만7000대), 미국(402만6000대)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14억 인구에 평균 연령 28.8세의 젊은 소비층을 보유한 인도는 연간 6%대의 견조한 경제 성장률을 바탕으로 자동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는 2027년까지 인도 전략형 전기 SUV와 제네시스 모델을 출시하고, 2030년까지 총 26개의 신차를 인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30년 매출 110억 달러(약 15조원)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다. 현재 현대차는 인도에서 글로벌 판매량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첸나이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 역량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기아 역시 인도 아난타푸르 공장을 글로벌 전략 거점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2019년 인도 공장 준공 이후, 가동 4년 만에 누적 생산 100만 대를 돌파하며 빠른 성장세를 입증했다. 기아 인도 공장은 현재 연간 30만 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내수 판매는 물론 중동, 아프리카 등 제3국 수출 기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기아 아난타푸르 공장 / 사진=기아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전장부품 전문기업 모티브링크는 최근 인도 현지 스털링툴스그룹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첸나이 지역에 새로운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모티브링크가 생산하는 인버터와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EPS) 부품은 현대차 아이오닉 5, 제네시스 GV60, 기아 EV6 등 주요 전기차 모델에 탑재되는 핵심 부품이다.
모티브링크 관계자는 "현지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인도 로컬 자동차 업체의 생산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인도 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물량 확대 또한 기대된다"고 밝혔다.
SK엔무브 역시 인도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SK엔무브는 인도 자동차 부품 기업 아난드그룹의 계열사 가브리엘 인디아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12월 신규 법인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엔진오일, 기어오일, 전기차 전용 윤활유 등을 인도 시장에 선보이며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인도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 역시 높은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차는 2021년 인도네시아에 완성차 공장을 준공하며 아세안 지역 첫 생산 기지를 확보했다. 인도네시아 공장은 연간 25만 대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현지 전기차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거점으로 육성되고 있다.
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 / 사진=현대자동차한국수출입은행 해외투자현황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멕시코 4개국에 대한 국내 기업의 투자 총액은 2022년 54억3200만 달러에서 2024년 63억7100만 달러로 17.3%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대중 투자액은 85억3800만 달러에서 19억3000만 달러로 77.4% 급감하며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자동차 업계가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중 외교 갈등과 현지 시장 경쟁 심화로 인해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전체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6년 7.5%에서 2024년 0.9%까지 급락했다. 올해 1~8월 판매량은 13만1341대로 점유율 0.9%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 자동차 부품 업계 관계자는 "GM, 포드, 테슬라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공급망 이슈에 직면하면서 미국 수출 물량을 중국 외 지역에서 생산하는 제조 이원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며 "더 이상 중국에 대한 공급망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기에 중국 생산 시설을 미국과 제3국으로 빠르게 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대미 자동차 수출 관세율이 현행대로 25%로 적용될 경우 현대차그룹이 올해 부담해야 할 관세 비용만 8조4000억원에 달한다. 미국 관세 리스크와 중국 시장 위축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신흥 시장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이다.
인도자동차산업협회(SIAM)는 향후 5년간 인도 자동차 산업 성장률이 4%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도시화와 청년층 인구 증가, 친환경 차량 수요 확대가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네시아 정부 역시 2025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20%로 늘리고 2030년에는 25%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호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분석실 책임연구원은 "인도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자동차 판매량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중국 의존도 완화의 핵심 수혜국으로 주목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성장 또한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의 규제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인도는 가장 유망한 대체 시장"이라며 "인도의 인구 구조와 성장률, 정부 정책 모두 자동차 산업에 우호적인 만큼 현지 생산 및 기술 협력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년간 글로벌 자동차 생산 기지 역할을 수행해 온 중국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자동차 제조 허브로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부상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계는 7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신흥 시장 선점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최전선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