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절망을 겪는, 1등이 아닌 다수에게
2023년, 올해의 수학능력시험이 끝이 났다.
2010년 현역으로 봤던 해의 수능을 떠올리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방감, 패배감, 절망감, 두려움.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엮던 그해 12월. 나는 그때부터 새로운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삼수를 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공부를 그럭저럭 했다. 엄청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고, 요행을 바랐고, 춤을 좋아했으며, 아이돌 연습생 제안도 받아보며, 진로에 대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일정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던 시절. 결국 친구들과 함께 대입을 하는 건 실패하였다. 당연했다. 남들만큼 하지 않았으니까.
2011년. 죽지 못해 살았다. 눈을 뜨니 살고 있었고, 눈을 감을 때는 내일 아침 눈이 떠지지 않기를 빌었다. 그만큼 절망적이었고 고통스러웠다. 집에서는 나를 향해 한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눈길들을 보냈고, 나는 소속감도 잃고 방향성도 잃은 채 고등학교는 졸업하였으나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스무 살의 나는 지금 생각하면 누구보다 극도의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실패와 패배를 철저히 맛보았던, 그 시절. 고등학교 동창들이 그래도 성숙한 친구들이었기에 나는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은 대학생이었지만 종종 모였고 때마다 나를 불러주었다. 순수했던 친구들이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순수하게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동정일까, 배려일까, 아니면 이타적인 마음일까. 그들은 내 상황과 상관없이 나와 함께 해주었고 내 마음에 작은 찔림 들은 있었으나 그들은 개의치 않아 주었다. 부러웠고 괴로웠고 슬펐다. 그러나 그게 내게 동기부여가 되지는 않았다. 나를 더욱 철저히 내면 속으로 파고들게 만들었다.
결국 그해 대입도 실패했다. 재수학원을 다니며 또 그 집단에 적응했던 나는 또 다른 핑계를 대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어떻게 해온 걸까. 지금도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2012년, 다시금 새해가 밝았고 이제 나는 스무 살이 아니었다. 여전히 대학생도 아니었다. 오전에는 집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는 평생교육원을 다니고 있었다. 어쩜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N잡에 익숙해진 게. 그 해 겨울, 태어나 처음으로 두 개의 공부를 병행하며 대입과 자격증 취득을 모두 해낸 나는, 비로소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긴 어둠을 지나 끝에 선 채로 긴 숨을 내뱉었을 때, 비로소 안도했다. 아마도 실패를 이겨낸 그 순간에 대한 안도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나보다는 확실히 나라는 사람은 커져있었다. 이유라고 한다면, 내가 걸어온 긴 터널이, 내가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이 재수학원, 평생교육원, 어린이집이라는 공간 속에 녹아들어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 외의 길도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세상. 그것을 기다려줄 인내가 결핍되고 자신의 불안을 견뎌내지 못하는 지금의 시대가, 수학능력시험이 끝이난 후 수험생들에게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는가. 1등은 소수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다수이다. 언제나 소수가 되길 열망하지만 보통의 사람은 다수의 무리에 있을 확률이 훨씬 높다. 모든 소수를 위한 사회구조는 결국 다수의 무리 위에 서 있다. 다수인걸 인정하고 실패를 견뎌내고 그리고 소수를 향해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 이상적이지만, 우리가 해나가야 하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소수는 못되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어둠을 겪은 사람으로서 수험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1등은 그다음 영광을 누리기 위해, 떨어질 위험이 훨씬 높은 그 길에서 최선을 다해 발버둥을 친다. 1등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1등이 아니라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출발선에 서자. 20년의 세월은 헛되지 않았다. 그저 쌓여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포텐셜 에너지 일뿐. 이제 방향설정은 본인 몫이다. 실패는 어떠한 기준에서의 단편적인 결과이다. 하지만 인생의 기준, 시간의 기준에서 실패는 죽음 앞에 모두가 동등해질 때까지는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다. 견디는 힘을 길러라. 시간은 흐른다. 터널은 끝나고 어둠은 작은 불빛에도 사라진다. 사회에 도드라진 1등, 상위 노출은 그저 높이 있어서 잘 보일 뿐이다. 위로 가기 위한 계단은 내가 있는 곳, 가장 아래부터 밟을 때 올라갈 수 있다. 그러니, 너무너무 수고했고, 귀하고 값진 경험을 했으며, 12년의 학교 생활을 마친 것에 칭찬한다. 이제 툭툭 털자. 리셋하고 다시 출발선에 서라. 각자의 가장 낮은 계단을 확인한 후,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러면 언젠가 그 가장 낮은 계단을 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