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비용, 후회, 책임
중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다. 그 기회를 포기했다. 그러기까지 깊은 고민을 했냐고 물으면 사실, 깊진 않았다. 나는 생겨먹은 게 깊은 고민보다 빠른 회전에 가까운 편이라 내가 가진 데이터들을 모아 결론을 냈을 때는 가진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포기하는 게 맞다는 결론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중국을 가게 되면 내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과 잃을 것들이 꽤나 많아 보였고 그게 그만큼 값어치가 있냐고 물으면,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가, 그것들을 다 견뎌낸 후 어떤 결과일지도 모르는 상황에 도박수를 던질 만큼 버텨내주지 못할 거라는 정도의 생각은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포기했다.
그리고 함께 사는, 나의 소울메이트와 싸웠다.
배려에 대한 이야기로. 서로가 바라는 배려가 너무도 달라서.이틀을 싸웠다. 쌓아뒀던 것들이 터졌는데, 그로 인해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이 생겨났다. 가슴은 갑갑하고 생각은 정리가 안되고 그런 와중에 꼭 해야 할 것 같은 말은 떠올랐다. 결국 자리를 잡고 앉아 앞으로 함께 살게 되지 못할까 봐, 오늘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결정을 꼭 말해야겠다 싶어 이야기한다고 했다.
나는 싸우는 게 싫어 지금까지 쭉 눈치를 봐왔다. 맞춰주려 했고 내 주장을 세게 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고 오래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 그랬다. 나는 타인이 봤을 때 굉장히 주관이 센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정작 나는 내가 누군가의 눈치를 무지하게 보고,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의 소울메이트에게 나는 어린 시절의 ‘나’가 엄마에게 해왔던 방식으로 소통을 해오고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좋아라는 변명으로 상대에게 선택과 책임을 지게 했고 그에 따라 불만과 툴툴거림을 내비치며 내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억지로 끌려가기 일쑤였다. 근데 그게 유독 좋아하고 지켜내고 싶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런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얼마만큼 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나는 소울메이트에게 딱 잘라 말했다. 하기 싫다고. 갈팡질팡 하던 내 모습이 싫었는데, 이것에 있어서는 질질 끌려가서 나를 합리화하며 불만을 터뜨리며 다니기 싫다고. 그러니 하지 않겠다고. 이건 내 선택이고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이제껏 여러 선택들 중에 내 주장대로 내가 끌고 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싸움을 피하기 위해 했던 억지로 끼워 맞추기는 더는 못하겠다고. 결과가 어떻든 일단 나는 이렇게 결정했고 책임은 내 몫이라고. 사실 말하면서도 두려웠다. 너무 불안하고 확신 없는 매일의 선택이. 하지만, 해야 한다고 느껴졌다. 이제서야.
대립이 싫다. 언성이 조금만 높아지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 정말이지 보기보다 너무나 말랑한 속내가 원망스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싸워보려고 한다. 하다 보면 늘겠지라고 생각한다. 자꾸 내 의견을 꺼내놓다 보면 덜 힘들고 덜 괴로워하지 않을까 싶다.
가능성이 너무도 많은 시기. 그래서 놓치는 것도 보이고, 큰 그림이 보이다 보니 내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서 따라갈 수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너무도, 너무도 복잡하고 생각이 많은 나이.
그저 치열하게 어른이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어른이 되기 위한 어른이가 된 상태라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나를 토닥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