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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고스 Jul 10. 2022

배려가 버거워 울어본 적 있나요?

몰래 하는 배려가 독이 되는 세상

빠르게 성장 중인 스타트업의 신입사원 로이는 리액트 프런트엔드 개발자입니다. 로이는 최근 론칭했지만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서비스의 유지보수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업무입니다. 운영팀이 고객으로부터 전달받은 불편사항 또는 버그를 접수하면, 프런트엔드 개발자인 로이에게 전달하여 버그가 최종적으로 수정되면 됩니다.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것이 역설입니다.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고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덩달아 버그의 개수도 빠르게 증가합니다. 이제는 로이 혼자서 모든 버그를 그때그때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신규 인력 충원을 건의했지만, 현재 회사의 자금 사정상 인원을 충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충원한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높은 인재 채용 기준을 만족하는 지원자가 바로 나타날지도 의문이고요. 로이는 처음에는 모든 버그를 제때 처리하기 위해 무리하게 야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한 달이 지나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즉시 처리되어야 하는 버그는 우선순위를 높이고 조금 나중에 처리되어도 비즈니스에 치명적이지 않은 버그는 우선순위를 낮춰서 나중에 처리하는 것이죠.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는 한정적인 시간을 훨씬 더 가치 있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회사에서도 좋아하겠죠? 그런데 즉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선순위는 나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죠. 운영팀에서 생각하는 버그의 우선순위와 내가 생각하는 버그의 우선순위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운영팀과 우선순위를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도구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그게 바로 Jira의 칸반 보드였습니다. 칸반이란 내가 해야 할 일, 진행 중인 일, 완료된 일을 각 단계별로 모아서 팀원들과 함께 보기 위한 도구였어요. 그런데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이 로이와 운영팀이 서로 조금씩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운영팀은 개발 우선순위는 개발팀에서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로이는 아니었죠. 로이는 현재 고객들이 어떤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루 종일 고객의 불편사항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로이는 개발자이니까 개발에 집중을 해야죠! 그런데 운영팀에서 버그의 우선순위를 정해주지 않는 거예요. 로이는 점점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아니  우선순위에 대한 내용을 나한테 정확히 알려주지 않지? 그런데 로이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수평적인 회사의 문화 특성상 로이가 직접 운영 팀원 전체에게 말해야 했는데, 내가 말하는 것이 너무 공격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로이는 배려심이 많은 개발자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거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거죠. 사실 로이도 운영팀에 업무 우선순위 의견을 확실히 첨부해서 버그 리포팅을 해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운영팀 인원이 여러 명이라 모든 운영 팀원에게 해당 사실을 전파할 수가 없었던 거죠. 운영팀 리드는  문제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고, 운영 팀원도 신경 써야  일이 너무 많아 해당 문제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상황은 그때그때 로이가 우선순위 의견을 첨부해 달라고 피드백해주지 않으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로이는 애써 피드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영 팀원들이 모두 바쁜데 괜히 내가 우선순위 의견을 첨부해달라고 운영 팀원에게 말하면 운영 팀원들이 스트레스받으시지 않을까? 내가 우선순위 의견을 첨부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무례하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내가 이 말을 해도 되는 위치인가? 생각이 많아졌어요. 생각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회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개발이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죠. 그 결과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높은 업무들이 먼저 처리되지 못하니 고객과 운영 팀원들도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니 이 버그는 비즈니스에 엄청 치명적인데, 왜 빠르게 처리되지 못하는 거지?". 그럴 수밖에 없죠. 버그를 수정하는 로이가 버그 우선순위에 대한 의견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으니까요.


결국 이 이야기는 대표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어요. 대표님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분명 치명적인 버그가 먼저 처리되어야 할 텐데...? 그래서 로이에게 치명적인 버그를 조금 더 잘 봐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로이는 이미 본인이 치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업무에다 대표님이 말씀해주신 버그까지 고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어요. 매일매일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운영팀에서 닦달하는 버그까지 고쳐야 했어요. 결국 폭발한 로이는 이 이야기를 운영팀에게 합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저는 이제 한계까지 다다랐다고요". 운영팀 팀원들은 서운했어요. 사실 운영팀도 지금까지 서운한 점이 많았는데 로이를 배려하기 위해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거든요. 사실 로이가 운영팀에게 그때그때 우선순위를 좀 더 잘 전달해달라고 말했으면 되는 문제였거든요. 그래서 로이와 운영 팀원은 점점 어색한 사이가 되어갔습니다.


"당신의 배려는 배려가 아니야"

저는 고향에 내려가면 할머니께서 맛있는 밥을 양껏 차려주십니다. 할머니 생각에는 손주들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열심히 일하는 게 손주들에게 최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시거든요. 그게 할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손주들에 대한 최고의 배려입니다. 그런데 손주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손주들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서 밥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손주들은 더 이상 많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또 새로운 세대들은 추구하는 가치가 너무 다양해져서 어떤 사람은 아예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만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당연히 있죠. 그래서 할머니께서 맛있는 고기를 그릇에 가득가득 담아서 먹으라고 권하며 지켜보는 행위가 그들에겐 더 이상 배려가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단순했습니다. 그냥 배부르고 등 따뜻한 것이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였죠. 그러나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지금은 집 안에 앉아서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료와 함께 협업을 하거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인 거죠. 그들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어요. 심지어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의 젊은이들과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고, 내 목숨을 걸어 싸우기도 하는 시대입니다. 다양성과 복잡성의 사회에서는 내가 하는 배려가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배려로 느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서로 질문을 해야 합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뭐야?"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도 솔직하게 말해야 하죠. "이렇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 간단합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의사소통하면 나중에 서운할 일도, 나의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불필요한 곳에 낭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는 솔직함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상황을 살피는 일도, 누군가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도 모두 솔직하게 말한 이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함께 힘들어지니까요. 특히 주니어로 이루어진 스타트업에서 많이 발생하는 어려움이기도 해요. 아직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는 시기이죠. 여러분이 스타트업에 다니신다면 하나만 명심해 주세요!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솔직한 피드백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함께 이루어 나갑시다.


아, 로이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 이후로 운영 팀원과 서로가 원하는 것을 투명하게 소통하기로 하면서, 행복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위 에세이는 아래 도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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