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고왕 당근마켓 에피소드로 보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와 넛지(Nudge)
나는 어릴 적 일기가 그렇게 쓰기 싫었다. 그런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브런치에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요즘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을 숙제로 내주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담임선생님께 검사를 맡았다. 아직 한글도 겨우 뗀 어린아이가 매일 1장의 글을 빼곡히 적어가야 했으니 죽을 맛이었다. 혹여나 실수로 밤에 일기를 쓰다 잠들어 아침에 일기장을 챙기지 못하면, 무려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죄로 회초리로 손이 빨갛게 되도록 매를 맞아야 했다. 방학 때도 예외는 없어 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부터 그동안 제쳐놨던 일기를 몰아서 쓰곤했다. 덕분에 글쓰기는 한동안 나에게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학생이 되자 강제로 일기를 쓰는 숙제는 없어졌다.(독후감을 쓰는 숙제가 생겼다는 것은 함정이었다.) 글을 읽는 것은 그렇게 재밌었는데 이상하게 쓰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재밌는 건 아무도 글을 쓰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톰 소여의 전략: 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
톰 소여도 나처럼 글을 쓰고 공부하는 게 싫었나 보다. 친구랑 놀다가 이모에게 걸려 담장을 페이트로 칠하는 벌을 받았다. 그런데 친구가 오자 톰 소여는 재밌다는 듯이 페이트를 칠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나도 페인트를 칠하고 싶다고 하자 톰 소여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안된다고 했다. 결국 친구는 톰 소여의 꾀에 넘어가 페인트를 칠하게 되었다. 만약 상대에게 온전히 선택권이 있는 상태에서(나의 제안을 거절하던 수용하던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정한다.) 상대의 어떤 행동을 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대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는 자신에게 가장 득이 되는 행동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득이 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놀랍게도 사실이다. 인간은 완벽히 합리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이론: 우리는 게임 속에 사는가?
게임이론이라는 이론에서는 사람을 완벽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더불어 수학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그래서 무려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라는 전략을 활용하면 인간관계에서 서로의 이득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상호작용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학자 존 내쉬는 복잡한 수학적 모델링으로 내쉬균형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그런데 우리가 타깃으로 하는 시장은 어떤가? 시장의 소비자는 집 근처 마트에서 옷을 살때 수학적 모델링의 결과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라고 생각되는 옷을 선택하는가?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분명히 이득이 아닌 것을 추구하기도 하며, 그저 습관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면 게임 이론이 모든 상황에 적용이 될 수 있을까?
넛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로 Win-Win 전략 이끌어내기
내가 갓 입사한 주니어 개발자인데 팀의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케팅팀이 개발팀의 협조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팀의 매니저가 팀원의 동기부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 내에서 대부분의 상호작용은 사실 협력에 의해 일어난다. 직장 내에 상하 관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사실 나의 직속 상사에 국한된다. 대부분의 업무는 다른 부서의 협조를 받아야 하거나 고객과 외부 이해관계자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업무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내가 설득할 사람들이 나의 논리나 그들의 이득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영향을 받는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게 뭔지 내가 잘 모른다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고민해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으니 말이다. 특히 누가 봐도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일인데(예를 들어 담배를 끊는다던지) 그들이 거절한다면 어떨까? 어떻게 그들이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내 직업적 사명과 주어진 역할이 그들로 하여금 금연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다음은 "넛지"라는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전략을 소개한다.
1. 물질화(Materialization)
사람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눈에 보이는 물질과 연결시켜 생각한다. 뭔가 당기고 싶게 생긴 커다란 손잡이가가 문에 달려있으면 사람들은 "미는 문"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적으로 당기게 된다. 심지어 수십 번 드나들던 문이라도 당겨버리고 민망해한다.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한 것이 바로 스타트업의 웰컴 키트이다. 회사의 가치가 담긴 굿즈는 백 마디 말보다 영향력이 있다. 상대의 선택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인식 속에 회사의 가치를 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웰컴 키트 제작은 다음 블로그 포스팅에서 보는 것과 같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초기 스타트업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제작한다. (심지어 당근마켓에는 당근 조끼라는 것도 있다.)
2. 동조
당신이 스타트업에서 스크럼을 진행하는 스크럼마스터라고 생각해 보자.(*스타트업에서는 스크럼이라는 업무 방식을 조율하는 역할이 있다.) 팀원이 이번 주 금요일까지 회고(Retrospective)를 작성해야 하는데 작성하지 않은 직원이 10명 중 3명이나 있다. 당신이 스크럼 마스터라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회고를 작성하지 않으신 분이 많으니 빨리 작성해 주세요!"라고 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대부분 회고를 하셨네요! 아직 작성하지 않으신 분은 작성해주세요!"라고 한다. 어떤 것이 효과가 더 뛰어난 요청일까? 후자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는 일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도 안 지키는데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3. 반복적인 노출
당신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광고를 보며 살아왔다.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우리가 기억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 하나를 떠올려 보자. 그 광고는 십중팔구 당신이 가장 많이 본 광고 일 것이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당신이 설득해야 하는 동료나 상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당신이 해야 할 것은 그의 눈에 자주 띄는 것이다.
4. 순서의 조정
단순히 순서만 바꾸는 것으로 사람들의 선택의 확률을 현저히 바꿀 수 있다. 당신이 UI/UX 디자이너라면 확인과 취소 버튼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유저의 전환율을 확연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어른들이 말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순서의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어른들이 생각하는 순서가 항상 맞다는 보장은 없다.)
마지막으로 네고왕 당근마켓 에피소드에 포함되어 있는 넛지를 일부 나열하며 글을 끝맺음한다. 주니어 개발자여 잊지 말자! 당신은 지금 넛지(Nudge) 당하고 있고 또 반드시 넛지(Nudge) 해야 한다.
[회사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동료들을 설득하지 못해서 고민인 동료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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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도서]
- 미디어의 시대, 인생을 바꾸는 소통 전략 | 유현재 교수 | 세바시 12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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