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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Sep 15. 2019

1교시 - 해부학

시험이 다가오고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어색했던 해부학 실습도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이미 방독면은 벗어 던진지 오래였고, 이젠 해부를하며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지 얘기도하고, 사람의 근육은 닭고기같이 생겼다고 생각할 여유도 갖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편해졌다는 것은 아니었다. 의과대학 교수님들은 막 본과 올라온 학생들을 다루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뭔가 할만 하다 싶으면 진도를 더 빨리 빼셨다. 역시 사람의 몸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 사람 다루는 법을 더 잘 아는 것이었던건가! 생각해보면 본과 2학년땐 실습이 거의 없어서 오전 오후를 통째로 이론 수업으로 채우는데 그걸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본과 1학년 때 정신적 무장을 잘 하고 올라오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의예과 담당 교수님으로 정신과 교수님이 계신 것도!)


 그렇게 하루 벌어 하루 버티는 생활(?)을 하던 중 시험이 얼마 남지 않다는 사실이 동기들 사이에 독가스처럼 퍼져나갔다. 도서관 자리가 하나 둘 차 지더니 어느 순간 실습 끝나고 바로 가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지 사람이 많아서였는지, 아니면 그 불같은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시험기간의 도서관 공기는 항상 후끈했던 기억이 난다. 

 11시50분이 되면 빨리 집에 가라는 퇴실 안내 멘트가 나오는데 그걸 듣고 나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힘들었지만 오늘 하루도 이렇게 열심히 살았구나. 하지만 곧바로 극심한 피로감이 날 덥쳤다. 내일도 이렇게 살아야겠지. 어떻게 4년을 버티지하는 그런 생각들..  그럴 때면 하늘의 달을 보곤 했었다. 옛날부터 달을 참 좋아했는데 그 빛깔이 예뻐서였을까 아님 까만 밤 하늘에 홀로 세상을 빛추는 그 우아함에 끌렸던걸까. 무슨 이유가 됐든 달을 보면서 기숙사 까지 가는 그 짧은 길을 걷자면 조그마한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사람이 힘들면 하늘을 볼 여유가 없다고 하는데, 난 오히려 힘들 때면 하늘을 바라보려 했던 것 같다.



P.S 추석 때 다들 보름달에 소원 빌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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