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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Sep 17. 2019

1교시 - 해부학

시험 전날

 시험 전날이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보통은 '아.. 공부좀 더 할껄.' 혹은 다른 동기들이 뽐내는 지식에 주눅들며 '이것도 안다고?' 같은 보라색깔의 생각들. 하지만 그 색에 물들 겨를도 없이 바삐 움직여야 했다. 해부학 시험 전날이 사실 제일 바쁘기 때문이다.


  이전에 말했듯이 해부하는 시신에 따라 없는 장기가 있을 수도 있고 어차피 실습 시험은 그 년도의 시신에서 나오기 때문에 다른 조의 시신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해부학 시험 전날 실습실을 개방해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다.  이 때 족보의 3~5년치 구조물 혹은 수업시간 때 교수님께서 강조하셨던 것들을 스캔하고 만약 특정 구역을 유독 잘 해부해 놓은 조가 있으면 거기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디 조가 잘 했다더라 하는 소문을 캐치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보통 같은 실습 조원들끼리 움직이며 하루를 보내는데 우리 조원 중 한명이 전날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늦잠을 자버려서 오후 늦게 왔던 기억이 난다. 전화를 10번 정도 하다가 안 오길래 나머지 사람들끼리 시작을 해버렸는데 나중에 헐래벌떡 와서는 혼자 울면서 공부하는 뒷모습이 참 불쌍하달까.. 미안하달까..  


 의과대학 다니면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놀라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들 열심히 살 수 있는지. 시험 기간 때 에너지음료를 달고 살면서 자지 않고 공부하는 동기들이 참 많았다. 이 해부학 전날 특별 개방 기간 때도 밤 12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괴담이 돌았다. 이걸 내가 소문으로 들었다는 건 내가 거기에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난 그런 열정이 별로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애시당초 그렇게 매일 공부만 하면서 사는게 단순 '열정'으로 해석될 수 있는것일까? 아니면 고등학교 때부터 당연시 여겨지던 '1등'이라는 아성이 위협받으니 필사적으로 수성하려는 발버둥이었을까? 

P.S 그런데 학생 때 열심히 공부하던 사람들이 인턴 돼도 열심히 일하더라~ 나도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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