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다치즈 Nov 23. 2019

의과대학 학생회는 어떤 일을 할까?

 학원물을 보면 항상 나오는 학생회,

드라마나 영화에선 엄청난 권력집단이자 기성세대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최후의 수단으로 그려지지만 내가 의과대학에서 수년간 학생회에서 일하면서 각인된 이미지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것 같다. 

학생회장은 왠지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는 것 같은 이미지다 (출처: 하야테처럼)


 일단 의과대학 학생회는 인력이 항상 부족하다.

공부할 것이 무척이나 많고, 성적이 향후 과 지원하는데 중요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과외(外)활동을 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설사 들어와도 시험기간엔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는데 의과대학은 거의 대부분이 시험기간이라... 

 학생회를 이끌어가는 학생회장과 부회장역시 보통 1팀만 나오기 때문에 거진 찬반 투표가 진행된다. 의과대학 학생회칙상 단일후보일 경우 전체 의과대학 학생의 절반 이상이 참여한 선거에 찬성이 반대표를 넘으면 당선이 확정되는데 여기서도 가장 큰 문제는 선거율 50%를 넘기는 것이다. 그나마 각 학년마다 단체톡방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독려 캠페인을 펼치는 것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실 누가 당선되는지 다들 관심이 없기에 항상 선거 마지막 날쯤 돼야 간신히 목표치를 맞추는 형편이다. 아직까지 반대가 찬성표보다 많아 떨어졌다는 팀을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런식으로 투표 현황을 항상 중계한다.


 학생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또다른 이유는 학생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진로가 어느정도 정해져있는 과에서 학생회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는다. 왜냐하면 나중에 직장에서 상사로 만날 교수님들에게 감히 찍히고 싶은 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학생회 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회대를 보면 대자보도 붙이고 투쟁도 격렬하게 하는데 의과대학에선 그러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아무리 우리가 학생들의 설문조사를 가져오고 여러 이유를 대도 교수님께서 안된다고 하면 거기서 끝이다.

 의과대학 학생회 공약중 매년 나오는 것이 도서관 24시간 개방이다. 우리 의과대학은 따로 캠퍼스가 떨어져있어 치과대학, 간호대학과 같이 도서관을 쓰는데 인원이 적다보니 12시만 되면 문을 닫는다. 새벽까지 문을 열기엔 수지타산이 안맞는다는 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개방해달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고 매년 학생회측에서 주장을 했지만 교수님들이 귀가할 때의 안전을 이유로, 늦게까지 공부하다 다음날 강의에 빠질 거라는 이유로 거절해왔다.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공약을 꺾어야하니 내가 일반 학생이어도 학생회에 큰 기대를 갖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다보니 과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단체 같은 느낌이 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돌아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안한것은 아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이 故백남기씨 사인과 관련된 서명이었다. 누군가 죽으면 사망진단서를 의사가 작성하는데 이 때 사인을 기록하는 것 역시 의사의 업무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때 사인을 병사로 기록했던 것이 원인이 되어 선배중 한분이 대자보를 작성하게 되었다. 이 분께서 의과대학 학생회를 통해 서명을 받고 싶다 하여 홍보 창구가 되었는데 이 사건이 그 당시 시국과 연관되면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었다. 


 또한 시험기간 때마다 학생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축제나 여러 다른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총학생회에서 매주 회의가 있을 때 참여해 의과대학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목표를 정해주고 거기에 달려가겠금 교육을 받는다. 마치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 마냥. 대학에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 같지만 그 때부턴 이제 취업이라는 다음 목표가 생겨 거기에 도움이 되는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은 외면을 받고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 역시 강탈당한다. (위에 의과대학 학생회가 인기 없다고 썼는데, 다른 과 학생회장들과 얘기를 해보면 점점 다른 과들도 학생회 활동 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푸념을 하더라.)

 가끔 돌이켜보면 학생회해서 남는게 뭐가 남았나 씁쓸하기도 하고, 대신 공부를 했으면 30등은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후회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 활동들을 통해 무형의 재산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Connecting the dots라는 표현을 쓰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중에 이어질 수 있다 한 것처럼, 이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들이 나중의 나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4교시 - 신경해부학(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