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문화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서양 문화는 주로 영미권 위주라서 유럽 문화를 접할 때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유럽 문화 중에서도 북유럽에 속하는 스웨덴의 색깔은 독특하다. 특히, 높은 세금을 기반으로 잘 마련된 육아, 교육, 근로 등 복지와 관련된 면들이 유독 눈에 띈다. 우리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도 어쩌다 북유럽 사람들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 놀란다. 비쌀 경우, 수천만 원의 학비를 내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온 교환학생들이 북유럽 국가들에서 온 친구들은 학비로 한 푼도 더 내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격하게 반응하던지... 등록금 말고도 아빠, 엄마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다룬 고용노동부 블로그처럼, 그들의 모습을 처음으로 접할 경우에 그들의 제도와 같은 문화적인 면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이런 전형적인 함정에 나도 빠졌었다. 청년실업으로 취업에 근심이 많던 대학생 시절, 당시에는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만나러 스웨덴에 갔다. 취업에 좋다는 학점에 목을 매고 방학에는 토익을 준비하던 난 그곳에서 고졸로 취업해도 결혼하여 두 아이들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전공을 떠나 꿈을 찾아 바리스타로 카페에서 일하거나, 언젠가 간호 대학에 갈 생각이지만 그전 몇 년 동안 이런저런 경험을 쌓는 친구들을 만났다. 솔직히 말해서 부러웠다. 한국인만큼 IQ가 높지도 않고, 부지런하게 일하지도 않는 이들이 우리보다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니 생각이 참 얕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맞고 틀림을 중요시했던 스물다섯의 어린 나였다. 한편으론 똑똑함과 근면함을 갖춰야 성공한다고 믿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노력해야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을 통해 느꼈던 그 만족감이란!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뚜렷한 목표를 갖고 경로를 정해 밟아나가며, 때로는 어제의 자신과, 때로는 타인과 비교하며 느꼈던 하루하루 더 열심히 성장하고 있다는 그 성취감을 이제는 느끼지 못한다. 아쉽다.
가지 않은 길을 바라볼 때 드는 복잡한 감정들은 이제 뒤로 하고 내가 걸어온 길을 좀 더 되돌아보자. 그런 믿음을 가졌던 스물다섯의 나는 스웨덴 사람들이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원인들을 찾아 나섰다. 한국의 스웨덴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기도 했고, (그 답을 처음 들었을 때는 '유레카'라고 부를 만한 환희를 느꼈었다.) 한국과 스웨덴의 업무 문화를 비교하며 깨달음이라 부르고 싶은 것을 얻기도 했다. (그 차이를 '비밀'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웨덴에 오고 나서야, 외교관이 알려준 '이유'나 업무 문화에 담긴 '비밀'이 스웨덴과 한국의 문화적인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맞지만, 그것들 또한 두 국가 간의 제도 차이와 마찬가지로 겉핥기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마치 명품백으로 포인트를 준 화려한 옷차림에 펌과 염색으로 멋을 낸 머리와 흠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메이크업이 그 알맹이를 가린 것처럼.
그런 원인들 역시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같은 방식으로 동작한다. 당연히 산타할아버지는 북극에서 요정들과 우리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시고 크리스마스마다 루돌프와 친구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그 선물들을 나눠주신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자 진실이다. 하지만 꼬치꼬치 캐는 어른의 나쁜 습성이 불쑥 고개를 든다. 산타할아버지는 요정들에게 정당한 인건비를 지불하고 계시는지? 루돌프와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밤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경이로운 업무량 중간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 와 같은 불충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런 의문들은 당연히 틀렸고 잘못되었으며 나쁘기까지 하다. 그래서 산타할아버지가 어른들에게 선물을 안 주시는 것이니 어린아이들은 그런 불쌍한 어른이 되지 말자. 산타할아버지라는 모두가 동의하는 그 확고한 진리를 믿을 때야말로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그런 원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아빠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제도'가 좋은 육아 문화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산타할아버지와 같은 믿음이다. 그 제도를 사람들이 따르리라는 믿음이 작동해야 비로소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외교관의 '이유'나 업무 문화의 '비밀' 또한, 그 믿음이 옳고 맞고 좋은지와는 별개로 실제로 작동하기에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논제가 참인지에 대해 논하느라 그를 어떻게 실현할 지에 대한 논의를 놓친다. 이러한 전형적인 함정은 마치 놀이동산과 같아서 사람들은 그 세계로 퐁당 빠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 함정에서 나온 다음에 던질 질문은 '믿음이 옳고 맞고 좋은지'를 지나 그런 믿음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성원의 다수가 선택할 수 있는가'이다. 못된 어른의 습성 상, 난 그런 논의에 회의적이기도 하고 또 그런 태도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맞고, 옳고, 좋은 우리의 기존 믿음을 버리고 작동 여부도 의심스러운 스웨덴이란 나라를 참고하여 새로운 믿음을 가져야 할까? 물론 그 새로운 믿음도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마다 나눠주시는 선물처럼 좋은 믿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그들의 믿음 둘 다 좋을 경우, 우리는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까? (혹은 둘 다 나쁠지도 모르지만 그런 불충한 생각을 하는 애들은 산타할아버지가 때찌때찌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블로그를 통해 문화에 관한 질문들을 던졌고 던지고 있고 던질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다 정답이다. (혹은 오답일 수도 있다. 혹시나 슈뢰딩거의 산타할아버지처럼 관측되기 전까지는 정답이면서 오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함정에 빠졌다고 울지 말아요 우리 어린이들. 산타할아버지가 착하다고 선물 주실 거예요! 함정에 빠지지 말았다고 좋아하지도 말아요 우리 어른이들. 나쁜 애들한테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다니까요. 그러니까 루돌프야 산타할아버지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 "제가 원하는 건 소득증명이 완료된 깨끗한 세후 300억 원이에요."라고 전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