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당신의 지난 이사를 떠올려보자. 그날 아침은 몇 시에 일어났고 누구를 만나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사를 마무리했는지 되돌아보자. 스웨덴에서 겪은 이사도 '짐을 옮긴다'는 핵심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작지만 큰 영향을 미치는 차이가 있다.
비유하자면, 스웨덴에서의 이사는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는 것과 비슷하다. 즉, '스스로 하세요'(DIY)다. (물론, 돈이 많다면 사람을 쓸 수도 있지만 난 무직의 이민자다. 두 국가 간의 물가비교는 참고.) 상자를 구해서 짐을 포장하고, 차로 직접 날라서 옮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럽은 해치백이 많다는 말을 들었는데, 살아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인건비가 비싸다 보니 직접 뭐를 싣고 이동할 일이 겁나 많다. (우리나라도 요즘 배달비가 비싸진다는데, 처가에서 지낼 때 나온 평균 배달비가 7000원이었다. 배달이 이러니 이사업체는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 한 술 더 떠 스웨덴에선 차량 뒤에 다는 트레일러도 많다. 이사뿐만 아니라 가구를 옮기거나 큰 쓰레기를 버릴 때 등등 종종 사용한다.
청년주택 예시
그렇다 보니, 이삿날은 온 가족이 함께 돕는 날이다. 심지어 우리는 청년주택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ungdomslägenhet으로 이사 가다 보니 같은 단지에 사촌이 살아서 친척들까지 와서 도와주었다. 한국에서처럼 이사 트럭에서 사다리차를 통해 짐을 슝슝 나를 수 없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직접 상자들을 날랐다. 이렇게 이사가 고된 일이다 보니, 스웨덴 사람들은 이사를 한국만큼 자주 다니지 않는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이런 게 재미있다. 인건비가 비싸다는 점이, 이삿짐을 직접 옮긴다는 과정을 거쳐, 이사 자체를 자주 다니지 않게 한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 신기하다. 적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막상 겪기 전에는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는 SvenskBostäder라는 공기업에서 운영하는 청년주택에 입주하다 보니 집 청소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이전 세입자의 가구들도 남아 있었다. (이전 글의 수도계량기 교체도 그랬듯이, 정부가 하는 일이 기업에서 하는 것만큼 알잘딱 하게 처리되기 어렵다. 대신 싸다. 좀 많이) 그래서 입주일자부터 일주일도 넘게 지나 집 청소가 되어서 며칠 동안 이삿짐도 풀지 못한 채 여행 온 것처럼 지냈다. 반면에, 조합을 통해서 집을 산 처남은 깔끔하게 준비된 집에 입주했다. (스웨덴의 주택매매 개념은 한국과 1:1로 대응되지 않는 면이 많아서 아직 잘 모르겠으니, 이 글에선 더 깊게 다루지 않겠다.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면,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무기한으로 거주할 권한을 산다. 정부도 기업도 아니라 주택 조합이 그 거래를 주관한다.)
결국 "트레이드오프"다. 전공지식 중에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몇 안 되는 개념으로, 쉽게 말해 '한쪽에서 빼서 다른 쪽에 더한다'는 말이다. "싼 게 비지떡"이란 속담과도 통한다. 물론 싸고 좋은 물건이 제일 좋겠지만, 그러기 어렵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들어가게 된다. 일례로 정부가 운영하는 저렴한 임대료의 주택이지만 불편한 서비스라는 방안을 선택할 수도 있고, 인테리어도 좋고 편리한 환경을 가졌지만 비싼 주택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인건비가 비싸다면 여유롭게 일할 수 있겠지만, 나도 여유로운(?) 서비스를 받거나 아니면 이삿짐을 나르는 것처럼 그 일을 직접 해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가 실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많은 질문들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다. 정답과 오답이 있거나 좋고 나쁨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민을 오기 전 들었던 많은 말이 스웨덴 같은 '좋은 나라'에 가서 좋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호의에서 나온 말임을 알기에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라고 답하며 대부분 넘어갔지만, 이 블로그의 이전 글들처럼 내 일상은 그런 말들과는 거리가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 온 이민자들도 선진국에서 온 이들과 개발도상국에서 온 이들로 나눌 수 있다. 지금 내 상황이 어느 쪽에 가까울까?
그래서 그런가 해외에서 오랜 생활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을 만날 때면, 어렵고 힘든 선택을 내린 것을 안다면서 가서도 몸 건강하게 잘 지내고 부모님한테 연락 자주 하라는 말을 들었다. (군대 가기 전에도 비슷한 말들을 들었던 기분이다.) 그렇다, 나는 이런 트레이드오프를 선택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앞으로의 다양한 갈림길에서 어떤 트레이드오프를 택할지 궁금하다. 그 기준으로 좋은 쪽보다는 좋아하는 쪽을 선택하길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