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에서 지내면서 겪은 일들 중 수도계량기 교체 건에서 소소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받아서 기록으로 남긴다.
만약 수도계량기를 교체하기 위해 오기로 한 수리기사가 아무 연락도 없이 그날 방문하지 않았다면 기분이 어떨까? 나라면 빡쳐서 당장 고객센터에 전화부터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인어른은 하루도 아니고 이틀이나 방문하지 않은 데다, 마지막 날에도 오기로 한 시각보다 1시간 넘게 늦게 온 수리기사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옆에서 그 일상적인 대화를 듣고 있는데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리기사가 떠나고 장인어른에게 물었다. "괜찮으시냐? 저렇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 화가 안 나시냐?" 그러자, "그게 그런 거지 뭐"라고 답하셨다. 납득이 가지 않지만 꼬치꼬치 캐묻기도 뭐해서 넘어갔다. 그리고 퇴근한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내의 답은 "그건 수리기사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일정을 잡은 관리자, 나아가 회사의 잘못일 수 있다."라고 했다.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예전 직장에서 위에서 급하게 잡은 일정에 갈려나갔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럴 땐 시간을 갖고 스웨덴과 한국을 구성하는 사회적인 모델의 구성품들을 하나씩 면밀하게 따져봐야 스스로 납득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고민에 빠졌다. 감정은 이럴 때 시작점으로 삼기 좋은 실마리다. 한국에서 만약 수리기사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우선 화가 났을 것이다. 왜 화가 났을까? 상황을 따져보면 우선 소중한 휴가나 반차를 썼거나, 근무 일정을 조정해서 어렵게 시간을 냈을 것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반대로 스웨덴의 장인어른이나 아내에게 그런 일정 조율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나도 개인 사정에 따라 재택근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수리기사가 오지 않아도 '뭐 다음에 오겠지'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택근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 가능할까? 그것은 '이 사람이 집에서도 열심히 일하리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택근무가 회사근무와 유사한 결과를 낸다는 보장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재택근무가 보편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장이 되는가? 일이란 기본적으로 하기 싫기 때문에 대가로 돈을 받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집에서 일하면서도 회사에서 일할 때처럼 집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에 대한 근거는 아내나 처남의 재택근무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명확하게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집에서도 회사처럼 집중할 수 있어 보였다. (물론 시간을 좀 더 유동적으로 사용했지만, 하루를 마칠 때에는 결국 목표치를 채웠다.) 하지만, 오늘까지 마쳐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회사에서 일했을 적, 일정을 수립하더라도 뒤로 미뤄지는 경험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작지만 중요한 차이점은 합의를 통해 수립된 목표라는 사실이다. 이 사람들이 옆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메신저를 통해 매니저와 대화를 많이 나눈다. 매니저가 시키고 담당자가 따르는 것이 아니라, 터놓고 얘기하면서 일정을 수립한다. 그렇게 서로가 합의한 목표이므로, 재택근무를 한다고 일정을 맞추지 못한다면 평가로 바로 돌아온다.
'아하, 이런 거구나' 점점 실마리를 잡아간다. "권력의 원리"에서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서 "책임을 공유하라"는 원리가 이렇게 실생활에 구현되어 있었다. 정리하면, 재택근무한다고 매니저랑 합의한 목표를 못 채우면 그 대가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렇기에 생긴 신뢰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근무를 조정할 수 있고, 수리기사가 하루이틀 오지 않아도 열받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머릿속으로 정리하자, 수리기사가 처한 상황이 다르게 보였다. 매니저와 수립한 일정을 무슨 이유에서건 그는 지키지 못했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그는 짤릴 것이었다. (아내 직장 동료 중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은 사람도 있고, 장모님도 해고 걱정을 가끔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장인어른도 일정을 지키지 않은 수리기사와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되게 냉혹하다. 학창 시절 화를 엄청 내셔도 막상 평가할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후한 점수를 주셨던 선생님과 친절하게 잘 대해주시면서도 평가는 칼 같으셨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이민을 오기 전 궁금했던 점들이 이렇게 하나씩 풀린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안락한 상황에선 나태해지는 본성을 가졌다. 그런데, 스웨덴의 근무환경이 우리나라보다 더 안락해 보이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나태해지지 않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인 사회였다.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떤 식으로 왕관과 무게의 조율을 실생활에서 구현하는지 그 디테일을 좀 더 알고 싶다. 그를 배우고 정리하며 나누어, 내일의 우리는 어제와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