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minic Cho May 29. 2023

스웨덴어에 대한 감상

- 스웨덴어는 시작은 쉬웠지만, 배울수록 어려워진다. 이 글은 스웨덴어가 왜 그런 특성을 갖는지 우선 설명한 뒤, 한국어와의 비교를 통해 이 특성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탐색해 보고, 이를 통해 한국어를 다른 관점에서 보았던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적었다.


스웨덴어에서 어려운 점은 단수-복수형 명사와 형용사가 있고, 관사[a, an, the]가 단어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사과 1개는 ett äpple로 영어의 an apple과 유사해서 배우기 쉽다. 그러나 복수형은 äpplen이고 그 사과가 1개 있을 경우는 äpplet, 그 사과가 여러 개 있을 경우는 äpplena이다. 또한, 영어는 이런 변형이 많은 경우에 복수형은 -s, 관사는 the로 일관되나 스웨덴어는 단어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남자를 의미하는 man을 예로 들면, en man [남자 1명] män [남자 여러 명] mannen [그 남자] männen [그 남자들]처럼 a, an 대신 en이 위치하고 the 대신 en 이 붙는다. 그러나, 여자를 의미하는 kvinna를 예로 들면, en kvinna [여자 1명] kvinnor [여자들] kvinnan [그 여자] kvinnorna [그 여자들]과 같이 관사의 형태가 다르다. 반면에 단수와 복수 형태가 동일한 어린아이를 뜻하는 barn도 존재하는데 ett barn [아이 1명] barn [아이들] barnet [그 아이] barnen [그 아이들]과 같은 형태다.

더 어려운 점은 영어와 달리 형용사도 단수와 복수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큰 [big]을 의미하는 stor은 어린 아이나 사과와 같은 특수한 관사 형태를 가지는 명사를 꾸며주는 경우 stort, 복수형 명사를 꾸며주는 경우는 stora가 된다. 형용사 또한 이렇게 변화하는 형태가 통일되어있지 않아서 아름다운 [beautiful]을 의미하는 vacker의 경우 특수한 관사를 갖는 명사를 꾸며주는 경우 vackert, 복수형의 경우 vackra가 된다.

이 정도로 끝나면 괜찮은데, the 명사가 주어로 사용될 경우는 the 역할을 하는 관사인 den이나 det을 붙인다. 예를 들어 "그 큰 남자가 달린다"라는 문장은 "Den stora mannen springer"이지만 "그 큰 아이가 달린다"는 "Det stora barnet springer"가 된다.

동사는 또 어떤가? 달린다는 springer라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 running과 같은 의미로 과거형은 sprang이다. 과거완료형은 sprungit, 미래형이나 to-부정사의 형태로 쓰일 때는 springa, 명령형은 spring이다. 그리고 명사나 형용사와 마찬가지로, 이런 변화 형태는 단어마다 다르다.


정리하면 처음엔 영어와 비슷한 단어도 있고 어순도 유사해서 배우기 수월했으나, 배울수록 조졌다는 생각이 드는 언어다. 10년을 배워도 쓰고 싶은 단어마다 변화형이 정확한 것일지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이에 기반하여 스웨덴어 문화, 나아가 말하기에 대한 간단한 가정을 세워본다. 스웨덴 사람들은 이웃과도 말을 잘 안 하고 거리 두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중간에 아는 사람이 있거나 친해지고 나서는 정말 말도 많고 농담도 자주 한다. 아마도 이렇게 어법이 복잡하다 보니 "말하기 어려워 그냥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격식 있는 대화할 때도 주어 생략은 기본인 우리나라 문화('당신은 식사를 하셨나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본 적이 없다. "식사는 하셨나요?"가 일반적이고 친한 경우는 식사 대신에 "밥은 먹었어?"라고 묻거나 정말 친할 경우는 "밥?"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에 익숙하다 보니 이렇게 어법을 생각하면서 말하려고 하니 죽겠다. 말하기의 측면에서 보면 스웨덴어는 불필요한 에너지의 소모가 심하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에 듣는 입장에서는 편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전에 예시로 든 "Den stora mannen"의 경우에 den을 통해 주어가 "그 큰 남자"를 강조함을 알기 쉽다. 다른 예로는 en stor man [큰 남자 1명]과 stora män [큰 남자들]처럼 형용사를 통해 명사의 단수-복수도 구별할 수 있다. 이렇게 깐깐하기 때문에 한국어에서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가능한 여지를 스웨덴어는 좀 더 줄일 수 있다.

말하기 어렵지만 해석이 쉬운 언어와 말하기는 쉽지만 해석이 까다로운 언어를 쓰는 두 다른 집단이 있다면, 아무래도 전자 쪽이 후자 쪽보다는 말수가 적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이런 근거로 아내에게 한국어가 스웨덴어보다 더 말하기 쉽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날카로운 반대에 부딪혔다.

아내는 한국어는 주어에는 '은는이가'를, 목적어에는 '을를'과 같은 조사를 붙이고, 존댓말과 반말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써야 해서 어렵다고 반박했다. 또한, '-다'가 아니라 '-는데'와 같은 연결어로 문장을 마무리('밥 먹었다'가 아닌 '밥 먹었는데')해서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외국인에게는 관계에 주목하는 한국어도 말하기 쉬운 언어가 아니었다. 문장에서의 단어의 관계와 함께, 상대방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한국어도 참 까다롭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선후배보다는 동기와 대화하는 것이 편했었나 싶다.

아내의 반박은 또한 '말하기가 어려울수록 말수가 줄어드는 것'이라는 가정에도 부합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상대방과 진솔하게 말하려는 상황에서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 조성해야겠다. 평어체로 말하고 문법이 틀렸더라도 어느 정도는 넘어가자. 그보다는 상대방의 감정과 의도, 관점을 올바르게 이해했는지에 주목하자.

반면에 글을 쓸 때에는 문법에 주의하여 오해의 여지없이 명확하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또한,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간단하면서도 유머나 이미지를 첨부한 글을 써야겠다.


지금까지 스웨덴어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어와 스웨덴어의 차이를 비교했지만, 이 글은 두 언어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대신에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모국어도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괴테가 이미 말한 원리를 내 나름대로 익히려는 노력이다. 다시 말해 스웨덴어를 배우면서 내가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어의 특성을 새롭게 바라보고 두 언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정리해 가는 과정을 기억하기 위해 쓴 글로서, 앞으로도 스웨덴어를 배워나가며 한국어를 다르게 바라보는 경험을 쌓아나가고 싶다.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로 브런치스토리로 이전]

[2022/09/17 원문 작성]

매거진의 이전글 국립역사박물관 - 3. 1800년대 ~ 1900년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