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있는 22년 11월 21일의 스웨덴 스톡홀름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내린 눈의 무게에 비틀거리는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오늘 한낮에 20도까지 올라갔다고 하는 고향의 풍경을 맘에 그려본다. 겨울이 이곳에 먼저 찾아온 것처럼, 역사의 흐름도 단지 이곳에 먼저 찾아온 것뿐 일지 모른다. 또, 같은 이름이지만 우리의 겨울과 이곳의 겨울은 다르다. 역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이 글을 통해 그저 흩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애견과 함께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음을, 혹은 현장 미팅을 취소하고 원격으로 전환할 수도 있음을 접하길 바란다. 그를 통해 눈이 많이 내릴 어느 날 출근을 앞두고 문득,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스웨덴의 19~20세기를 적는다.
19세기 들어 스웨덴의 인구는 전통농업국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엄청난 인구이동이 뒤따른다. 인구의 20~25% 가량되는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민을 선택하고,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며, 도시들은 철도로 연결된다. 이러한 막대한 변화는 불평등한 사회 계층을 낳기에 자유 교회와 같은 대중 운동이나 초기 사회주의처럼 새로운 생각을 부른다.
6.25 전쟁 후 우리도 비슷한 역사의 흐름을 거쳤다. 58년 개띠로 대변되는 베이비 붐, 인구의 이동과 경제의 성장. 이런 변화들이 불러온 불평등에 맞선 노동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과 같은 새로운 생각들 말이다. 물론, 흐름은 유사하나 디테일은 다르다. 자유 교회나 사회주의 대신 노동권이나 민주화라는 차이가 있다. 바로 이 부분에 스웨덴의 역사를 알아가며 느끼는 재미가 있다.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에서, 우리가 선택해야만 했던 것들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쉬어가기
지금은 부유한 스웨덴도, 한 때는 20% 이상의 사람들이 이주를 선택할 정도로 가난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스톡홀름에 이어 시카고가 스웨덴인이 두 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도시가 되었을 정도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갔을까? 구직? 고임금? 종교적 자유?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대서양을 건널 돈이 없어서 스웨덴에 머물러야 했다.
20세기는 박물관의 설명을 구글 번역본과 함께 원문 그대로 적는다. 나로서는 담아낼 수 없는 무게감을 느낀다.
"빈곤 스웨덴"은 20세기 초반에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엄청난 소득 격차와 사회적 갈등이 있는 농업의 세계, 빈민가 지역과 소작농 막사가 있는 국가, 부모가 부양할 수 없는 아이들을 경매에 내놓는 국가.
"Poverty Sweden" was still here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ry. An agrarian world of huge income differentials and social conflicts, a nation with slum districts and share-cropper barracks, a country where children whose parents are unable to provide for them are put up - or rather, down - for auction.
수십 년 안에 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신석기시대부터 삶을 지배해 온 숲과 들판의 고단함은 쇠퇴한다. 대신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와 도시, 사무실과 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복지 사회, 평균 수명이 역사적으로 정상이었던 것의 두 배입니다. "여가", "휴가", "소비"와 같은 개념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살아있는 현실이 됩니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이 마음으로 스웨덴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1900년에도 스웨덴 국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과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이미지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Within a few decades, all this changes. The drudgery of forest and field which has dominated life ever since the neolithic, declines. Instead there are now more people working in towns and citiies, in offices and in industry. Sweden becomes one of the world's wealthiest countries - a democracy, a welfare society, with an average life expectancy twice what has been historically normal. Concepts like "leisure", :"hoildays" and "consumption" become living realities, even to ordinary people. It is only now that people begin, in their heart of hearts, to feel Swedish. In 1900 there are still few people who know what the Swedish flag looks like. Our present-day image of ourselves and our national identity goes back no more than a hundread years in time.
역사학 교수 딕 해리슨
Dick Harrison, Professor of History
처음 이민을 왔을 무렵에 밤거리를 나서는 스웨덴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들은 이런 나라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도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나라, 일반인도 "여가", "휴가", "소비"를 즐길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그 행운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내가 그들에게 뭐라고 하다니.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설명하지 못할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느낀다. 생긴 지 백여 년 지난 "대한민국"이란 개념으로는 채울 수 없이 답답하다.
11월 말에도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가는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다른 개념을 원한다. 그 개념은 "전지구적 서사"일 수도, 혹은 "인류세", 또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 개념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동질감이 자리를 잡게 되어 오늘날의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다. 당신의 가슴속에도 자리할 그 감정을, 스웨덴의 역사를 다룬 글들에서 느꼈길 바란다.
*쉬어가기
스웨덴인이란 무엇인가? 국립역사박물관은 이 질문에 같은 역사를 공유하며 같은 국기를 흔들고, 같은 노래를 부르며 같은 축제를 즐기는 것이 스웨덴인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한국인과 스웨덴인,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우리라고 느낄 관념은 무엇일까?
지금은 명쾌하게 구체화되지 않는 그 답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 국립역사박물관은 방문하기 전보다 더 무거운 질문을 안겨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