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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Nov 17. 2023

GUIDE TO EVERYTHING

원제: RUTHERFORD AND FRY'S COMPLETE GUIDE TO ABSOLTELY EVERYTHING - Hannah Fry and Adam Rutherford


총점(Score): 9.5/10


- 한 줄 평(My comment)

지각(관념)과 실재의 차이를 인식하여, 직관의 한계를 바로잡으려는 태도를 기르자.


- 감상(Impression)

이민을 앞둔 이 순간,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주는 책이다.


세상이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바꾸어야, 바뀌어야 한다. 지난 10년은 그 방법을 찾기 위한 시행착오였다. 그리고 그 끝에 답을 찾았다.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으므로 일일이 적지 않겠다. 다만, 그 흐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세상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점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이유로 동의할 것이나, 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다시 말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세상이 바뀌기를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다'가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를 원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선 내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원하고 싶어 할 만한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주관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근거로, 그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와 매력성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말한다. 세상을 온전히 객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고.

"물론 객관적인 우주가 존재하지만, 움벨트는 인간이 개들과 환경을 공유하더라도 우리의 주관적 세계는 그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다만, "오직 과학만이 우리에게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서 주관적이 아니고 정말로 객관적인 관점을 부여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책의 다른 문장 "이 모든 것의 결론은 과학이 편향되었다는 것이다."을 고려해 보면 정말로 애매한 표현이다.

편향된(주관적인) 과학이 객관적인 관점을 부여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관적 세계는 객관적인 세계일 수 없다는 말이다. 복잡해 보이는 이 말을 곱씹어보면 다시 말해, 내가 바란 세계의 객관성을 뒷받침해 줄 근거를 혼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가정부터가 주관적이라는 뜻이다.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지는 말이다.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지난 내 10년의 시도는 허무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내가 바란 세상이 지닌 주관성이란 한계를 인식하니 새로운 길이 보인다. 방향을 돌려,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한다면 여전히 주관적이지만 그나마 객관적인 세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열쇠 구멍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지만, 보다 다양한 열쇠 구멍으로 바라보는 편이 하나의 열쇠 구멍으로 보는 편보다는 더 객관적인 관점이리라.


이제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 열쇠 구멍마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볼 시간이다.




- 내용 정리(Summary)

정리하기 어려운 책이다. 아직 내 유머력이 떨어지기 때문일까? 책은 1장부터 제목을 비트는 유머를 던진다. 영어 원제는 '절대적으로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가이드'이지만 "모든 가능한 지식을 갖춘 도서관은 지식이 전혀 없는 도서관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말로 초반부터 예상을 벗어난다. 자잘한 드립들로 피식거리며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지만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모순과 역설의 웅덩이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꾸안꾸 스타일로 빌드업된 책의 내용을 정리하려니, 마치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책의 내용을 정리할 때처럼 막막하다. 한 조각이라도 빠지면 완성이라 부를 수 없는 퍼즐을 설명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내용을 각 부분별로 정리하는 대신, 읽는 내내 머리에 맴돌았던 "스펙트럼"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풀어보는 편이 흥미로울 것 같다.

"스펙트럼", 듣기만 해도 애매하다.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편이 익숙한, 인간이란 주관적인 종이 놓인 객관적인 우주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또 한 번 만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가슴 한 편이 아려온다. 인간이란 하드웨어가 지닌 한계로 인해 우리는 스펙트럼적인 특성을 갖는 우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관을 통해 이분법적으로 이해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도구가 과학이라고 책은 말한다.* 주관적인 인간과 객관적인 우주 사이에 놓인, 건널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논하며 저자들은 슬퍼하거나 좌절하거나 한탄하지 않는다. 다만,  9가지 장을 통해 각각 가능성, 환경, 원, 역사, 시간, 자유의지, 편향, 사랑, 직관이라는 익숙하지만 모호한, 마치 시계 문제처럼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구름 문제인 주제들을 하나씩 다루며, 우리가 지닌 한계를 유머를 통해 유쾌하게 풀어낸다.


이들이 담담하게 전해준, 객관적이진 않지만 객관적인 관점을 부여할 수 있는 과학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이, 바꿀 수 없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미친 짓을 하려는 내게 역설적인 위안을 준다. 그 말속에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이에게, 그 한계 앞에서 느껴지는 좌절감보다는 그럼에도 다시 한번 해 볼 때 드는 즐거움에 주목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마치 모두 언젠가 죽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즐겁게 살아보려는 태도가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돌이켜보라. 우리는 프로그램된 한계를 넘어서서, 깊은 곳에 있는 우리의 세포, 마음의 틈새, 원자와 우주의 구조까지, 손이 미치지 않았던 곳에 도달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인지하는 방식의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과학을 발전시켰다.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과학만이 우리에게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서 주관적이 아니고 정말로 객관적인 관점을 부여할 수 있다. 과학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안내서를 작성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끝이 없는 가능성

절대적으로 모든 것 l 너무 많은 지식은 위험하다 l 지식의 원 l 폐차장의 토네이도

2장 생명, 우주 그리고 모든 것

상상력이 부족한 종과의 근접 조우 l 크기가 중요하다 l 익숙지 않은 가계도 l 갑각류 연대기 l 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l 스파이더-맨, 앤트-맨 그리고 맨-맨 l 외계인은 얼마나 높이 뛸 수 있을까? l 죽거나 부서지고 곤죽이 되기 l 우리는 믿고 싶다

3장 완벽한 원

4차원 구는 어떻게 생겼을까? l 완벽하게 둥근 물체가 있을까? l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l 지구는 정말로 구형일까? l 우주의 구체들

4장 태고의 바위

지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l 지구는 얼마나 오래전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l 6,000년의 지구

5장 시간의 간략한 역사

지금 몇 시야? l 1초란 무엇인가? l 흔들리는 세계 l ‘그것이 상대성이다’ l 신체 시계 l 영원한 하마 l 100피트 낙하 l 시간의 흐름을 헤쳐 나가기

6장 자유롭게 살라

최면 마인드 컨트롤 좀비화 마법 l 빠르게 일찍 생각하기 l 악마 l 혼돈 l 양자 영역 l 다중 세계 l 운명인가 자유인가?

7장 마법의 난초

세상이 끝난 후 l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아는 것을 좋아한다 l 초자연적 활동 l 우리는 모두 호구일까? l 파일 서랍 열기 l 지루함을 무시하고

8장 내 개가 나를 사랑할까?

다윈의 프랑스 친구가 노인의 얼굴을 감전시킨 실험 l 내 포-포-포-포커페이스를 읽을 수 없다 l 놀랐지! l 감정의 범위 l 다른 동물들 l 몇몇 후회도 있었네 l 이것이 사랑일까? l 개들이 우리를 사랑할까?

9장 열쇠 구멍으로 본 우주

네 개의 F l 냄새 맡을 것이냐 맡지 않을 것이냐 l 치명적인 질병의 냄새를 맡는 방법 l 당신의 눈을 검사할 시간 l 내가 보는 것이 보이는가? l 보이는 것을 넘어서 l 감독판 l 실재를 향하는 진정한 안내자

감사의 글

그림 출처

참고 문헌




- 문장들(Verses): 가슴에 담고 싶은 문장들을 여기에 담는다.

[들어가는 글]

이 책은 인간이 인식하는 방식에 따른 우주보다는 실제 우주의 참모습을 보기 위하여, 어떻게 우리의 원숭이 뇌를 억제하려고 노력해 왔는지를 설명하는 안내서다. 직관적으로 사실이라고 느껴지는 것과 과학자들이 발견한 진실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다. 종종, 그런 진실이 훨씬 더 믿기 어렵다.


그러나 과학은 단순히 아는 것만이 아니다. 알지 못하는 것과 그것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즉 아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와 끊임없이 확장되는 지식의 길을 따라가는 인간의 더듬거림과 실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과학자와 탐험가의 오류, 자아 egos, 통찰, 지혜와 편견, 그들의 노고, 비극, 막다른 골목, 뜻밖의 행운, 그리고 정말로 잘못된 결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오늘의 위치로 데려온 역사의 그림 맞추기 퍼즐 조각이다.

이 책은 틀리는 것이 어떻게 바로잡는 방법이 되는지, 어째서 당신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 항상 쉽지만은 않은지, 그렇지만 마음을 바꿀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어떻게 미덕이 되는지(일반적으로, 하지만 특히 과학에서)에 대한 찬사다.


실재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 그러나 당신이 기꺼이 찾아 나설 준비가 되었다면 이 책은 이제까지 발명된 최고의 도구들이 어떻게 실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 주는지에 대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1장~9장]

요약하자면, 아이디어는 깔끔했으나 실행은 형편없었다.


이 모든 것에는 이상하고 반직관적인 counter intuitive인 결론이 있다. 모든 가능한 지식을 갖춘 도서관은 지식이 전혀 없는 도서관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무한한 도서관은 쓸모없는 도구이고 원대한 희망의 좌절이다. 끝이 없는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0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작동하는 단어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렸다. 이것이 진화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과 훨씬 더 비슷하다.


자연이 무작위 한 회오리바람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사서라는 것이 생명계의 현실이다. 자연은 큐레이터 curator다.


그러니 당신도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보라! 크고, 장엄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각하라. 진화가 지구에서 무엇을 창조했는지를 생각하고, 전체 우주를 아우르는 상상의 자유를 누려 보라. 가능성에는 끝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진화는 우리보다 훨씬 더 상상력이 풍부하다. 우리의 형이상학으로 꿈꾼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작동하는지에만 제약을 받는다.

: ""옳은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라는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가 떠오른다.


진화에 대하여 우리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과학사의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 아니고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Theodore Roosevel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위치한 곳에서,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그러나 우리의 임무는 이처럼 완벽하게 합리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리석은, 어떤 억측이든 바로잡는 것이다.


벼룩이 사람 크기라면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는··· 벼룩만큼일 것이다.


생물계에서 정확히 둥근 모양을 얻기에는 특이성과 미묘한 복잡성이 너무 많다.


그리고리 페렐만, 당신의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행성의 생명체가 맥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 자체도 약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명확하게 보이는 결론은 태양의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하여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따라 약간 모호해진다.


따라서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말이 사실일 수는 있지만, 우리가 아는 한 완벽한 구에 가장 가까운 물체는 과학자들이 만든 공이었다.


이들 창조 신화에는 패턴이 있다. 표면상으로는 아무리 독특한 미친 소리처럼 보일지라도 몇 가지 범주에 대체로 들어맞는다. 무질서로부터 질서가 나오는 (그리스 신화처럼) 혼돈의 기원이 한 가지 유형이다. 핀란드 민속설화뿐만 아니라 중국 신화, 힌두교 설화를 비롯하여 수많은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우주 알 cosmic egg은 또 다른 유형이다. 또 하나의 유형은 엑스 니힐로 ex nihilo ―무無로부터―인데 여기에는 기독교 신화뿐만 아니라 흥미롭게도 오늘의 우리가 가장 검증 가능한 과학적 버전의 창조로 받아들이는 빅뱅도 포함된다.


진짜 미친 짓은 21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방법론과 날짜에 집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 몇 시냐는, 외견상 간단해 보이는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누가, 또는 더 적절하게 무엇이 시간의 궁극적인 중재자인지를 알고 나서 시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의 사소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시간의 나무 꼭대기에 앉은 것은 시계가 아니고 결정 decision이다.


모든 거래 당사자가 거래 기록에 마이크로초 microsecond(즉 1/1,000,000초)까지 표시되는 시간 기록을 남겨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의 시계가 완벽하게 동기화되도록 확실히 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의 시계를 어떻게 동기화했을까?

모든 은행을 마스터 타임키퍼와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을 사용했다.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원자시계에 직통으로 연결되는 선이다.

: 간단해 보이는 시간이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를 일으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다음과 같다. ‘지금 몇 시야?’라는 질문의 대답은 실제로 ‘지금 우리 모두 원하는 시간이 몇 시야?’의 대답이다.


고려할 것이 한 가지만 남았다. 상대성 relativity을 고려하면 이 모든 것이 창문 밖으로 사라진다.


왜곡되는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고, 시간에 대한 당신의 인식이다.


언젠가는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한 사람이 바로 그런 실험을 고안해 내고 시간의 왜곡이 인간에게만 독특한 현상이 아님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인간은 창의력과 지식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경이로운 존재다. 그와 동시에 심각한 결함도 있어서, 놀라운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 정말 형편없다. 깨달음을 향한 첫걸음은 바로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타협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은 미묘하고도 중요한 퍼즐을 제시한다. 뒤돌아보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볼 때는 우리의 행동이 지나간 일에 묶여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에 구속되지 않고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의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고 느낀다. 두 가지가 모두 사실일 수 있을까?

: 스펙트럼!


자연은 암울하다. 그리고 교활하기도 하다. 우리 종은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그런 것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도 이렇게 끔찍한 기생충 이야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아마도 자유의지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스펙트럼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에 관한 연구가 늘 그렇듯이― 실험에서 보고된 혁명적 통찰은 처음에 보였던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결론은 인간의 뇌, 의사결정, 자유의지에 관한 연구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공통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라플라스는 설명했다.

“그리고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의 눈앞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이 이미 마지막 원자 하나까지 모든 사람의 행동을 계획해 두었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까지도 환상에 불과함을 의미했다.

: 모순과 역설


두 영역 모두 라플라스의 악마를 심하게 훼손하고 시계장치 우주의 톱니바퀴를 산산조각 낸다. 그들은 바로 양자역학과 혼돈 chaos이다.


로렌츠는 ‘혼돈 chaos’이 ‘현재가 미래를 결정하지만, 근사적 현재는 근사적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는 자연의 기본 법칙을 알더라도, 우연 같은 것이 정말로 없더라도, 우주가 인과관계의 사슬일지라도, 모든 것을 말 그대로 극미 수준의 세부까지 측정하고 계산할 수 없는 한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위치, 속도, 운동량을 알지 않는 한― 라플라스의 악마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수준의 세부적 정보가 없이는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라플라스는 틀렸다. 우연은 단지 인간의 무지를 말하는 완곡한 표현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라플라스의 악마가 들어 있는 관 뚜껑에 더 많은 못이 박혔다. 혼돈은 전체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않는 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이들 원자의 위치를 아는 일은 어떤 유용한 의미로도 불가능하다. 아주 작은 것과 아주 복잡한 것의 본질에는 확률적 특성이 있다.

혼돈과 양자역학을 결합하면 가능한 미래의 완전히 엉킨 거미줄에 이르게 된다.


우주 또한 시계장치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양자 수준의 핵심에는 진정한 무작위성이 있다. 그렇다고 예측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일 해가 뜰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날아다닐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주를 올바르게 이해했다면― 모든 인과관계의 깔끔한 사슬 속에는 때때로 무작위성의 거품이 있다.


진실은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된 행동과 선택에 기초한 행동을 어떻게 구별할까?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에게 자유의지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예측 가능할 수 있고, 당신의 결정이 무작위성에 기초하면서도 여전히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는 무지의 대안으로 우연과 확률에 관한 라플라스의 아이디어에 기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이는 마치 각자가 아침마다 일어날 때, 그날 살인자가 되거나,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거나, 벼락을 맞을 낮은 가능성이 있는 것과 같다. 또는 그런 가능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그런 가능성이 있는 세계와 구별할 수는 없다.

이 질문에 답하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로서는 항상 물어볼 운명이었다. 우리는 당신이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것을 안다. 우리도 그렇다. 그러나 무엇을 믿는지와 무엇이 진실인지는 종종 매우 다른 문제이다.

: 자유의지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사실 그 조차도 스펙트럼의 중간 지대일 것이다.. 그래서 있다고 믿는 것과 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있다고 믿는 선택지를 택할 것이다. 내 어깨의 힘도 빠진다....


인간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방어하는 솜씨가 그 신념이 엄청나게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조차도 대단히 훌륭하다는 것이다.


요점은 시커스 신도들이 클라리온의 외계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해서 그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깊이, 그리고 멀리 갔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그들이 진실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버리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그들의 믿음은 보존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화되었다. 무너진 예측에 대한 시커스 신도들의 완전한 헌신은 사회적으로 검증되었고,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될수록 더욱더 진실이 되어야 함이 분명했다.

: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심리


그런 신념과 사후 합리화를 조롱하기는 쉽다. 당시에 많은 사람이 그렇게 했다. 그러나 캠핑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은 추종자의 다수가 잘못 인도된 취약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왜곡된 믿음이 인간 조건의 한 측면을 반영하며, 경멸이나 조롱보다는 연민 어린 공감이 더 나은 대응임을 깨달았다.


재계의 거물이며 억만장자인 워런 버핏 Warren Buffet은 이런 성향을 멋지게 설명했다.

“인간이 가장 잘하는 일은 모든 새로운 정보를 이전에 자신이 내린 결론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아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직관은 우리를 배반한다.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 것은 무시하고, 이미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강화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자들은 털가죽, 오리 같은 주둥이, 유독한 가시가 있는 이 기이한 포유동물이 가짜라고 생각했다. 결국 진화는 심지어 사기꾼보다도 더 터무니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때로 우리는 실험을 설계하면서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찾고, 흥미진진한 새로운 이론을 열광적으로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그들의 빛나는 새로움에 반하는 증거를 무시한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과학이 편향되었다는 것이다. 과학은 극적인 결과, 새로운 결과를 발표하고 비슷한 발견을 확인하거나 강화하는 방향으로 편향되었다. 크고 긍정적인 진술 쪽으로 편향되었다.


그러나 결과를 재현하는 일은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과학적 과정의 주춧돌이다. 당신이 얻은 결과는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독립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때로 과학의 강점이 자기 수정력 self-correcting이라고 자랑한다. 사실이지만, 반드시 ‘우리가 수정할 때’라는 중요한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러한 수정은 마법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과학은 인간적 결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학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의 마음은 진실을 전혀 추구하지 않는 기본적 설정들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편향을 ―우리가 인식하는 한― 탐지하고 수정하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당신을 속이려는 사람들을 단단히 조심하라. 그리고 당신의 뇌 또한 당신을 속이려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현시점에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감정의 정의에 관한 과학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당신이 용기, 우려, 흥분을 느끼고 불안, 두려움, 좌절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 장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감정을 범주화할 수 있고 표정에서 그러한 범주를 읽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이러한 이론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 이론은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멋진 기술이라도, 과학은 사람의 표정에서 감정을 추론하는 데 신뢰할 만한 도움을 주지 못한다.


누군가가 놀라거나 혐오감을 느끼거나 행복할 때 항상 놀라움이나 혐오감이나 행복을 나타내는 표정을 지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는 모든 동물을 새라고 정의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더 깊이 생각하여 도도새, 타조, 박쥐, 꿀벌을 기억하고, 생물계가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함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럴듯한 정의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을 해독하는 것이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놀랍고, 당혹스럽고, 좌절감을 느낄 정도로 복잡한 존재다. 인간의 감정 상태는 과학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잘 정의된 상자에 깔끔하게 분류되기를 거부한다.

이것이 감정의 분류에 관한 다윈의 견해가 부적절한 이유에 대하여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이다.


이것이 후회의 기능이다.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 후회는 표현하기가 매우 복잡한 감정이다.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얻을 확률을 계산해야 하고, 그 계산이 빗나갔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미 일어난 일을 분석하고, 다음번에 다르게 행동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해야 한다.


그러면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자. 개가 우리를 사랑할까? 과학은 단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만이 아니다. 과학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표적이다. 우리는 진실에 접근하면서도, 동시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인정한다. 과학은 또한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활동이다. 데이터뿐만 아니라 의견의 불일치, 토론, 논쟁이 과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감정과 개의 내면적 정신 상태 같은 주제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데이터는 부족한 주제다. 논쟁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토픽에 관해서는 이 책의 저자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드물지만 즐거운 경우다.


이 충돌은 ‘계속됨 To be continued’이라 표시된 파일에 있다. 우리는 고양이든 개든 사람이든 다른 존재의 실상을 알 수 없다. 우리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동의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을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주를 이해하는 과학의 우월성이 사랑의 연구에 충분히 반영되지도 않고, 과학이 사랑을 설명하는 최선의 언어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우리 두 사람은 이 문제를 화가, 팝 스타, 그리고 멋 부리는 시인들에게 남겨두고, 각자의 애견과 함께 산책하러 나간다.


특히, 때로 진화의 F 네 개라고 다정스레 언급되는, 먹기 Feeding, 싸우기 Fighting, 도망치기 Fleeing 그리고 번식 Reproduction에서. (번식에는 비속어인 Fuck의 F가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_옮긴이)


움벨트는 본질적으로,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wholeheartedly 개인적이다.

우리의 모든 감각 중에 아마도 후각이 가장 감정을 자극하는 감각일 것이다. 어디선가 풍겨 오는 냄새가 순간적으로 당신을 어린 시절이나 몇 년 전의 휴가로 데려가는 순간의 경험은 얼마나 강렬한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는지를 거의 알지 못한 채로 세상을 방랑한다.


시각은 실재 reality의 객관적인 스냅사진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그리고 실제로 테스트할 방법이 없는― 것은 뇌가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광자에 반응하여 동일한 내면적 경험을 구성하는지의 여부다.


그렇지만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성문화하려 할 때마다, 과학이 찾아내는 것은 차이점이 전부다. 색채 감지, 냄새 맡는 능력, 맛에 대한 민감성에는 생물학적 다양성이 있다. 당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색깔, 피하고 싶어 하는 냄새에 관한 사람들의 엄청난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사실이다.


우리 인식의 한계는 하드웨어로 설정되고, 하드웨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맞춰 진화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지속적인 생존을 보장하기 위하여 세심하게 조정된다. 그러나 우리의 몸이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경험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자만심의 낭비일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움벨트에 갇혀 있고, 감각과 생물학의 제한을 받으며 진화의 역사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경계에 묶여 있다. 우리가 광대한 우주 속의 먼지 한 점에 불과한 이 행성에 (또는 근처에) 머물면서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절망적일 정도로 제한된다. 우리는 실재의 극히 일부만을 볼 수 있다. 열쇠 구멍으로 우주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렇지만 과학과 수학, 그리고 끝없는 호기심 덕분에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심지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존재함을 안다. 우리의 뇌에는 수많은 결함과 오류가 내장되어 있다. 편견, 선입견, 편향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한 그렇게 하려는 불타는 열망도 내장되어 있다. 우리의 지각이 제한적이고 왜곡되고 인간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바로 그 사실이, 잘못된 직관을 바로잡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이것이 우리의 영광스러운 목표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돌이켜보라. 우리는 프로그램된 한계를 넘어서서, 깊은 곳에 있는 우리의 세포, 마음의 틈새, 원자와 우주의 구조까지, 손이 미치지 않았던 곳에 도달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인지하는 방식의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과학을 발전시켰다.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과학만이 우리에게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서 주관적이 아니고 정말로 객관적인 관점을 부여할 수 있다. 과학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안내서를 작성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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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 원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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