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아끼지 않을까
(꼴찌로 아는 내 마음)

꼴찌로 아는 내 마음

by 덕용안

나는 왜 나를 아끼지 않을까


꼴찌로 아는 내 마음


아프면 말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단순한 문제처럼 보인다. 입을 열고 나 오늘 좀 아파, 하면 되는 것이다. 가족한테도, 친구한테도.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어디서부터 막히는 건지 설명하기도 어렵다.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그냥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해졌다.

그래서 아프면 아픈 대로 출근했다. 힘들면 힘든 대로 일했다. 말하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고, 티가 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나갔다. 그게 편했는지 아닌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게 내 방식이었다.


핸들이었다.


그날 아침 내가 처음으로 알아챈 것이 통증이 아니라 핸들이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그게 이미 어떤 신호였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빨간 신호에 걸렸을 때 우연히 내 손을 내려다봤다가, 아 저거 좀 이상하다, 싶었다. 평소보다 확실히 힘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는데, 그제서야 배가 아프다는 것이 실감됐다. 이상한 순서였다. 아프다는 것을 나는 아파서가 아니라, 핸들을 쥔 손을 통해서 알았다.


배는 아침부터 아팠다. 잠에서 깨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았다. 옆구리 쪽이 묵직했고, 거기서 더 심해질지 말지 잠깐 기다렸다. 심해졌다. 그래도 일어나서 세면대로 갔다. 칫솔에 치약을 짜면서 오늘 예정이 뭐가 있는지를 생각했다. 오전에 라인 점검이 있었다. 오후에는 납품 관련해서 챙겨야 하는 것이 있었다. 아프다는 것과 일정이 동시에 머릿속에 있었는데, 둘이 서로 교섭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정이 이겼다. 그냥 그렇게 이겼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었다.


그때 신발 끈을 묶다가 왼쪽 끈이 오른쪽보다 조금 짧다는 것을 발견했다. 배가 아픈 채로 신발 끈 길이를 비교하고 있는 것이 — 이상하긴 했는데, 그래도 잠깐 신경이 쓰였다. 왼쪽 끈은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 그냥 원래 이랬던 건지, 아니면 늘어난 건지. 배가 아프고 라인 점검이 있고 납품 일이 있는데 나는 신발 끈 길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새벽 일을 하신다. 그 시간에는 주무시고 계실 때였다. 방문이 닫혀 있었다. 깨우기 싫어서 소리를 줄이고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배가 또 한 번 쑤셨다. 이를 잠깐 악물었다. 그게 전부였다.


차를 몰고 나오는 동안 신호가 유독 많이 걸렸다. 빨간 신호 앞에서 멈출 때마다 몸이 조금씩 앞으로 기울었다. 의도한 게 아니었다. 핸들 위로 상체가 구부러지고, 거기에 이마를 얹고 싶다는 충동이 잠깐씩 왔다. 당연히 안 됐다. 신호가 바뀌면 다시 도로였다.


왜 나는 나를 아끼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어온 것은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신호 앞에서였다. 갑자기였다. 배가 아파서 이마를 핸들에 얹고 싶은데 그것도 못하면서 도로 위에 있는 내 모습이 한 번 보였고 — 그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낯설다는 것도 이상한 표현이긴 하다. 매일 이렇게 살았는데. 그런데 그날은 낯설었다.


회사까지 가다가 중간에 핸들을 꺾었다.


결심이라기보다 판단이었고, 판단이라기보다 그냥 몸이 먼저 결정한 것 같기도 하다. 통증이 올라올 때 눈앞이 잠깐 좁아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때 아 이건 좀 안 되겠다, 싶었다. 그냥 너무 아팠다.


연차를 냈다. 처음이었다. 몸이 아파서 쉰다는 이유로 연차를 낸 것이. 회사에 메시지를 보내는 손이 좀 떨렸다.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기분,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 기분 — 그런 것들이 잠깐 있었다가 지나갔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화면을 꺼버렸다. 왜 꺼버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꺼버렸다.


집 근처 내과에 먼저 들렀다. 진료 대기 번호를 뽑고 앉아 있는데, 옆에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가 엄마 옆에서 배를 감싸 쥐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 등을 문지르며 조금만 기다려, 하고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을 받고 나서야, 나도 배 아프다는 말을 처음으로 소리 내서 했다. 메시지 말고, 목소리로.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누워서 천장을 봤다.


천장에 얼룩이 하나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른다.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날 처음 봤다. 몇 년을 이 방을 쓰면서 한 번도 저 얼룩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 이상하다기보다, 그냥 그랬다는 것이 좀 쓸쓸했다. 천장을 볼 일이 없었다는 뜻이니까. 누울 일이 없었다는 뜻이니까.


통증이 가라앉는 속도는 생각보다 천천했다. 그 묵직함이 있는 동안 나는 계속 천장을 봤다. 그러다 얼룩이 호랑이 옆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아챘다. 귀가 있고 목이 있는 것 같은 모양. 왼쪽에서 보면 호랑이인데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면 그냥 얼룩이었다. 배가 아프고 연차를 냈고 이게 처음이라는 온갖 생각이 있었는데, 한 30분쯤 그 얼룩이 호랑이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른다.


이상하게 그날 하루가 굉장히 길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길었다. 현장에 뭐가 생긴 건 아닌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몇 번 했다. 오래간만에 시간이 내 것인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 그런 느낌이 있었다.


밤이 꽤 됐을 때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부엌에서 소리가 나서 나갔더니 어머니가 계셨다. 배가 아프다고 했다. 아침에 방문이 닫혀 있어서 못 했던 말과 같은 말인데, 그날 저녁에는 됐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뜨거운 보리차를 가져다줬다. 죽이 아니라 보리차였다. 그게 그 순간에는 맞았다.


나중에 왜 말을 못 하는지 생각해봤다. 딱 떨어지는 이유는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말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학습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 같기도 하다. 원인을 찾으면 고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언제부터였는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꽤 먼 데까지 간다.


초등학교 때 배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급식을 먹고 갑자기 배가 뒤틀렸는데, 선생님한테 말을 못 했다. 옆 짝이 먼저 알아채서 선생님을 불렀다. 나는 그때도 괜찮다고 했다. 보건실 침대에 누워서도 왜 말을 못 했지, 싶었다. 열 살인가 열한 살이었다.


어쩌면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말을 못 하는 것이 결함인지, 아니면 그냥 어떤 사람들이 가진 방식인지 — 아직 모르겠다. 다만 그 방식이 나를 너무 오래 혼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조금 알 것 같다.


말을 못 한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당연한 것을 오래 잊고 있었다.


그날 연차가 처음으로 나를 아낀 것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었다. 배가 너무 아파서, 그냥,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것이 — 나한테는 처음이었다.


아,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 신발 끈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왼쪽 신발 끈을 오른쪽이랑 길이를 맞춰봤다. 확실히 짧았다. 끈 매는 방식 문제인지 끈 자체가 줄어든 건지 여전히 모르겠는데, 왜인지 그게 자꾸 생각났다. 아팠던 것도 생각나고 연차도 생각나는데, 거기에 왼쪽 신발 끈이 같이 생각나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그날 기억에 같이 붙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잘 말할 수 있게 될지는 모른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 그게 쉬워질지 어떨지. 아마 쉬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DNA가 다른 것 같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냥 나는 그렇게 생긴 사람인 것 같다.


그래도 그날 이후로 한 가지는 달라졌다. 아플 때 아프다는 것을, 일단 나는 알기로 했다. 남한테 말하는 것은 아직 어렵지만 — 적어도 나한테는. 그것부터.


천장 얼룩은 아직 거기 있다. 오늘도 누워서 봤다. 왼쪽에서 보면 여전히 호랑이 옆모습 같은데,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면 또 그냥 얼룩이다. 어느 쪽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