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조용히
도망치듯, 조용히
퇴사하던 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수에게도,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도. 그냥 마지막 날 일을 마치고 나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말이 맞는지,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는 말이 맞는지 — 지금도 구분이 잘 안 된다.
사업이 망했다. 이 문장을 쓰는 것이 아직도 조금 이상하다. 망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겪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돈의 문제만이 아니라 —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게 되는 것. 그게 더 오래 남았다.
그래서 쿠팡에 들어갔다.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일을 해야 했다. 반품 센터였다. 반품된 물건들이 컨베이어 위로 흘러오면 분류하고, 상태를 확인하고, 정해진 자리로 보내는 일. 단순하다면 단순한 일이었다. 복잡한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처음에는 오히려 편했다.
생각을 많이 안 해도 되는 일이, 어떤 시기에는 필요하다.
그러다 문자가 왔다. 지게차 운전 인원을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일반 사원 전체에게 뿌려진 문자였는데, 읽고 나서 바로 신청했다. 망설임이 거의 없었다.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즈음 계속 있었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 사업이 망하고 나서 내 손에 남은 것이 없다는 느낌이 오래갔는데, 지게차 면허라도 있으면 달라질 것 같았다.
두 번 만에 됐다. 처음 시험에서 떨어지고, 두 번째에 붙었다. 지게차 사원이 됐다. 월급이 사십만 원 올랐다. 숫자만 보면 만족스러웠다. 실제로 만족했다. 그 돈이 당시에는 꽤 크게 느껴졌으니까.
문제는 지게차를 잘 못 탄다는 것이었다.
운전은 할 줄 알았다. 면허가 있었다. 그런데 실제 물류 센터 안에서 무게를 싣고, 좁은 통로를 통과하고, 정확한 위치에 내려놓는 것 — 그건 별개였다. 감각이 쌓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시간이 쌓이기 전에 욕이 먼저 쌓였다. 사수들한테 여러 번 들었다. 말로 하는 것도 있었고, 말 없이 표정으로 하는 것도 있었다. 표정으로 하는 쪽이 더 오래 남았다.
잘하고 싶었다. 못 하는 것을 들키기 싫었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있으면서 서로 방해가 됐다. 긴장하면 더 못 하고, 더 못 하면 더 긴장하고 — 그 루프가 어느 지점부터 빠져나오기 어려워졌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때로는 잘하는 것을 가장 방해한다.
핸드폰을 못 쓴다는 것도 있었다. 8시간 내내. 일반 사원도 지게차 사원도 마찬가지였다. 들고 들어가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규정이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생각보다 무거웠다.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막혔다기보다 — 이 공간 안에서 바깥이 완전히 차단된 느낌. 창문이 없는 곳에서 8시간 동안 좁은 통로를 오가는 일. 그게 익숙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퇴사를 결심한 것이 어느 날 특정 순간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서서히 결심이 됐던 것 같다. 어느 날 출근하면서 오늘이 마지막이겠다 싶었고, 그냥 그렇게 됐다.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질문을 그 이후로 오래 했다. 사업도 망하고, 지게차도 못 타고, 말도 없이 나왔다.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가 어려워지는 순간 말을 못 하고, 말을 못 한 채로 버티다가, 결국 조용히 나오는 것.
문제라고 하면 문제인데 — 그게 고쳐야 할 결함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세상을 버티는 방식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쁜 방식이라는 것은 안다. 나한테도, 주변 사람한테도 좋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알면 바뀌는 것이었다면 이미 바뀌었을 것이다.
알면서도 못 바꾸는 것들이 있다. 그게 의지의 문제인지 구조의 문제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지게차 위에서 보던 센터 천장이 가끔 생각난다. 높고 넓은 창고 천장에 형광등이 줄지어 있었다. 그 빛 아래서 포크를 올리고 내리던 시간들. 잘 못 했지만 — 그 시간이 아예 없던 것처럼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때 뭔가를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지게차 기술은 별로 못 늘었다. 그런데 내 한계가 어디쯤인지, 어떤 상황에서 내가 조용히 사라지고 싶어지는지 — 그게 조금 더 선명해진 것 같긴 하다. 그것도 배움인지 어떤지는, 아직 판단 중이다.
도망치듯 나오는 것도 어떤 사람한테는 생존의 방식이다. 그게 부끄럽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것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