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도 나인데
지금은 중소기업에 다닌다. 이것을 먼저 말하고 싶었다.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면 중간이 너무 답답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 지금의 나는 괜찮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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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듯 퇴사하고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뭘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쉬었던 것 같은데, 쉬는 것인지 멈춘 것인지 모호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다시 쿠팡에 지원했다. 다른 센터였다.
왜 다시 쿠팡이었냐고 하면 — 솔직히 거기밖에 없었다.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고, 지게차 면허는 있었고, 쿠팡은 지게차 사원을 계속 뽑았다. 어쩌면 이전 센터 사람들과 맞지 않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환경이 달라지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그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가봐야 아는 것이었다.
같은 선택을 다시 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인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인지 — 그 경계가 생각보다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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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센터는 달랐다. 사람이 달랐고, 분위기가 달랐다. 지게차가 조금씩 익숙해졌다. 이전 센터에서 욕을 먹으면서도 탔던 시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전 센터에서 욕을 들었던 날들이 가끔 생각난다. 말로 하는 것도 있었고, 표정으로 하는 것도 있었다. 표정으로 하는 쪽이 더 오래 남았다. 그 시간이 나쁘기만 했냐고 하면 — 모르겠다. 적어도 포크를 다루는 감각은 거기서 쌓였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2년이라는 시간을 한 문장으로 쓰면 짧아 보이는데, 실제로 2년이 지나는 동안은 짧지 않았다. 계절이 여덟 번 바뀌었고, 몸이 많이 달라졌고, 지게차 위에서 내가 어디쯤인지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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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관리직 제안이 왔다. 캡틴, 출고 관리자. 빨간 조끼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뉴스에서 가끔 나오는 쿠팡 관련 보도에 나오는 것처럼 소리 지르고 다니는 사람들 —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없다. 뉴스는 과장이다. 실제 관리자들은 그냥 빨간 조끼를 입고, 현장을 돌아보고, 문제가 생기면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관리자가 되면 핸드폰을 쓸 수 있다. 일반 사원도 지게차 사원도 8시간 내내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는데, 관리자는 된다. 사소한 것 같지만 — 그게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일반 사원으로 일해본 사람은 안다. 바깥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그것이 생각보다 중요했다.
어떤 것들은 잃고 나서야 얼마나 필요한지 안다. 핸드폰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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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조끼를 입었다. 처음 입었을 때 어색했다. 어제까지 지게차를 탔던 사람이 오늘 조끼를 입고 관리를 하는 것이. 사원들이 나를 보는 눈도, 내가 나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달라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일은 달랐다. 지게차를 타는 것과 현장을 관리하는 것은 쓰는 근육이 다른 일이었다. 몸을 쓰는 비중이 줄고 판단을 쓰는 비중이 늘었다. 잘 맞는 부분도 있었고 잘 안 맞는 부분도 있었다.
그렇게 일하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 그것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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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퇴사는 조용하지 않았다.
매니저가 면담을 요청했다.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같이 일하던 관리자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한 명이 아니었다. 현장 흐름을 읽는 것, 문제가 생기기 전에 먼저 치우는 것 —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됐다. 되는 것이 보였다.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오히려 문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다는 말이 쌓일수록, 더 잘해야 한다는 무게도 같이 쌓였다. 어느 날부터 이 기대를 계속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왔다. 더 이상 잘할 자신이 없는데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았다. 그 간격이 커질수록 두려웠다. 잘하고 있는데 두려운 것이 이상한 것인지 — 그때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사회 경험이 별로 없었다. 공무원 시험을 5년 했다. 그 뒤에 사업을 2년 했다가 망했다. 그게 전부였다. 직장이라는 곳에서 버티고 성장하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잘한다는 말을 들어도 —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할 기준이 없었다. 남들이 기대하는 만큼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왔다. 한계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못 버텨서가 아니라 — 이 기대를 감당하는 것이 나한테는 너무 컸다. 그게 맞는 판단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는 것도 안다.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더 버텼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 선택을 했고, 그것이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최선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아는 것과, 그때 알면서도 했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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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냐고 하면 — 어쩔 수 없다. 그때의 나도 나다. 사업을 망친 나도, 지게차를 못 타서 도망친 나도, 관리직을 두고 나온 나도. 전부 같은 사람이다. 부정하면 편하겠지만, 부정해봤자 없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지금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가끔 그 시간들이 생각난다. 빨간 조끼를 입고 창고를 돌아다니던 것, 핸드폰을 못 갖고 들어가던 8시간, 처음 지게차에 올라탔을 때 포크가 말을 안 듣던 것. 당시에는 그냥 힘들고 어색한 시간이었는데 — 지나고 나면 다 어딘가에 쌓여 있다. 어디에 쓰이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질문을 지금도 가끔 한다. 답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동시에 내가 살아온 방식이기도 해서. 그것을 고쳐야 할 것으로 볼 것인지, 그냥 나로 볼 것인지 — 아직 결론이 없다.
결론이 없는 채로 살아가는 것, 그것도 방법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