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하루 위로 '좋아함'이라는 색이 번질 때
내 세계는 대개 현관문 안쪽에서 끝난다.
신발장 앞에 놓인 실내화, 소파 왼쪽 끝에 납작하게 눌린 자국, 창밖으로 보이는 것들 — 그것이 내가 주말을 보내는 공간의 전부였다.
밖에 나가 있는 시간 동안 발바닥이 붕 뜨는 느낌.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에야 발이 땅에 닿는다. 그 감각을 알아챈 뒤로 외출 계획을 먼저 세우지 않게 됐다.
그 내가 알람을 맞춰놓고 인천까지 갔다.
무채색의 주말 위로 목적지 하나가 생긴 날이었다.
* * *
여자농구를 챙겨 본다.
일정을 찾아보고, 경기 시작 전에 자리를 잡고, 마지막 버저가 울릴 때까지 화면을 끄지 않는 방식으로
—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가 걸렸고, 보다 보니 끝까지 봤고, 다음 경기를 찾아봤다.
그즈음 퇴근 후 시간이 잘 채워지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몸이 피곤한 것인지 그냥 시간이 지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됐다.
경기가 있는 날, 퇴근 후 두 시간의 온도.
응원하는 팀이 두 팀이다. 각 팀에 선수가 한 명씩 — 두 명을 먼저 좋아했고, 팀이 둘이 됐다. 마음이라는 것이 균등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을 농구장 일정 앱에서 다시 확인했다.
그게 처음이었을까,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아는 일이.
* * *
직관 구장을 찾아봤을 때 — 인천, 용인, 청주.
청주는 거리가 멀었고, 용인은 평일 경기가 많았다. 인천이 남았다. 주말 오후 낮 , 두 팀이 맞붙는 일정.
아침, 손이 분주했다.
물병을 넣었다가 꺼냈다가, 겉옷을 한 번 바꿨다가, 핸드폰 배터리를 두 번 확인했다 — 챙길 것이 많지도 않은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
고속도로는 출퇴근으로 매일 달렸던 길이었다.
달라져 있었다, 핸들을 잡은 손의 온도가.
해야 해서 밟는 액셀과 가고 싶어서 밟는 액셀은 같은 동작이었지만 발바닥의 감각이 달랐다.
휴게소에 들렀다.
커피를 샀고, 소시지도 샀고, 호두과자도 샀다 —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들르고 싶었던, 어딘가로 가는 중간에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소시지를 씹는 것이 나들이의 물리적 증거 같은 기분이었다.
구장 근처에서 주차장을 한참 찾았다. 골목을 두 번 돌았고 막힌 길을 한 번 만났다. 이마트 주차장에 겨우 댔다.
거기서 구장까지 오 분.
서툰 길 위에서 헤매는 일. 처음 가는 곳에서만 허락되는 감각이었다.
* * *
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코트가 실제로 있었다.
화면 속에서만 보던 그 직사각형이 바닥에 있었고, 수십 번 본 등번호가 저기서 움직이고 있었다
— 픽셀이 아닌 살과 뼈로 된 사람이라는 것.
자리를 찾아 앉았다. 유니폼을 입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응원 도구를 손에 든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빈손이었다.
아무것도 안 한 척 코트 쪽을 봤다.
경기가 시작됐다.
운동화가 바닥을 문지르는 소리, 공이 바닥을 치는 진동, 감독이 벤치에서 외치는 목소리
— 화면에서는 들리지 않던 것들.
심판의 판정에 야유를 보내는 사람 , 심판이 호루라기를 부는 타이밍, 관중이 동시에 숨을 멈추는 순간.
그 소리들이 비어 있던 마음의 구석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기분.
평일 내내 창문 없는 현장을 오가던 귀에 처음 닿는 종류의 소음이었다.
경기는 한 팀이 이기고 한 팀이 졌다. 이긴 팀도 내 팀이었고, 진 팀도 내 팀이었다.
승패는 갈렸으나 기쁨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지는 팀도 내 팀이라는 이 기묘한 너그러움. 나에게 허락된 다정한 반칙이었다.
응원하는 팀이 둘이면 지는 경기가 없다. 생각보다 묵직한 장점이었다.
* * *
경기가 끝나고 주차장까지 오 분을 걸었다.
차에 올라서 잠깐 앉아 있었다.
코트의 색, 공이 바닥을 치던 진동, 관중석에서 내려다보이던 등번호.
그것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잠깐 실감이 안 됐다.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같은 길이었다.
달랐다, 핸들의 무게가.
가는 길이 설렘 쪽이었다면 오는 길은 채워진 쪽이었다
— 배고픈 것과 배부른 것이 같은 상태가 아닌 것처럼.
공무원 시험을 보던 시절에도, 사업이 기울던 시절에도, 지게차 위에서 욕을 먹던 날에도 — 나를 위해 하루를 쓴다는 것이 없었다.
오늘은 달랐다. 주차장을 못 찾아 골목을 돌았고, 휴게소에서 소시지를 씹었고, 좋아하는 선수들이 뛰는 것을 두 눈으로 봤다.
내일이면 다시 창문 없는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오늘 인천에서 본 코트의 색깔은 눈동자에 아주 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
왕복 네 시간짜리 선물.
무채색의 하루 위로 '좋아함'이라는 색이 번질 때, 길은 비로소 인천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