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뺨
어린 시절, 나는 밖에서 살았다.
해가 질 때까지.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앉아 친구와 수다를 떨었고,
이야기가 끝나지 않으면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있었다.
혼자 걷기 무서워지는 시점이 되어서야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늘 그랬다.
방학 어느 날, 학교 운동장 골대 옆에 잠바 하나가 걸려 있었다.
주머니를 뒤졌다.
돈이 나왔다.
친구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는데,
보는 사람도 없었고 멈출 이유도 없었다
그 돈이 오락실과 군것질로 다 사라진 뒤에도,
집으로 걸어오는 발바닥이 어떤 온도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도 늦게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분위기가 달랐다.
아빠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를 앞으로 불렀고,
무릎을 꿇게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한 가지만.
그 큰 손이 내 왼쪽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 것은 통증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 이전의 내가 그 순간 이후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부터 밖에 나가지 않았다.
친구들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내 방에만 있었다.
오고 가는 것도 혼자였다.
말을 줄이는 것은 생각보다 빨랐고,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 것은 그보다도 더 빠르게 익숙해졌다
그 습관들이 하나씩 쌓이는 동안 나는 그게 반항인지,
그냥 무너진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익숙해졌다, 혼자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지면 사람이 낯설어지고,
사람이 낯설어지면 마음을 꺼내놓는 법을 잊는다. 그 순서로 나는 집돌이가 됐고,
그 순서로 나는 내 속을 타인에게 전해본 적 없는 사람이 됐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정답은 모른다.
처음이라 서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아이 몸에 남기는 것과, 아이 안에 남기는 것은 다르다.
몸에 남긴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안에 남긴 것은
그게 아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채로, 수십 년을 같이 걷는다.
나는 지금 여기까지 왔다.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 안에 왼쪽 뺨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