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나길 음치로 태어났다.

나는 태어나길 음치로 태어났다.

by 덕용안

음치


나는 태어나길 음치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것을 몰랐다. 티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따라 불렀다. 아주 큰 소리로. 거실에서도 불렀고 방에서도 불렀다. 가족들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그냥 두었던 것 같다. 어린아이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귀엽게 보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모른 척했을 수도 있다.


나는 노래를 못하지 않는다고, 조금 생각했다. 그 조금이 꽤 오래 갔다. 의심해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것이 용기를 만들 때가 있다.




어느 날 친척들과 노래방에 갔다.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무대가 있는 방이었는지, 그냥 소파만 있는 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마이크를 들고 뭔가를 불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의 나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그냥 불렀다.


노래를 불렀다.


고모가 말했다.


"너 음치야."


초등학생인 나는 그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조금이라고 쓰는데

사실 그날 노래방 안의 불빛이 어떤 색이었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화면에서 나오던 빛이 얼굴 쪽으로 오던 감각도 기억한다. 아마 조금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자리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조용해졌다.


그때부터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됐다.


정확히는 누군가 앞에서 부르지 않게 됐다. 혼자 있을 때도 잘 안 부르게 됐다. 부르다가 멈추는 일이 생겼다.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어린 시절의 어떤 말들은 오래간다. 본인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음악은 계속 들었다.


음치라고 노래까지 듣지 말라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많이 들었다.

출퇴근길 내내 듣고, 집에서도 틀어놓고, 좋아하는 가수가 생기면 그 사람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이보람 씨 노래도 그렇게 알게 됐다.


음악 프로를 봐도 저 사람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잘 모른다. 기준이 없다. 잘한다고 하는 사람을 들어봐도 내 귀에는 그냥 노래다. 못한다고 하는 사람도 그냥 노래다. 그게 불편하지는 않다. 그냥 듣고 그 사람을 본다. 그게 다다.


무언가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무서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뭔가 달라지나 싶었는데 달라지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였다.


한 번은 여자친구랑 여자친구 친한 언니랑 셋이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한 곡을 불렀다. 안 부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중에 여자친구가 말했다. 음치치고는 그나마 잘하는 편이라고.


음치치고는. 그 말이 위로인지 아닌지 잠깐 생각했다가

그냥 위로로 받기로 했다.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럼에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음치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굳이 고칠 필요를 못 느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냥 그게 나였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 그렇게 살면 됐다.


그러다 요즘 들어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숨고에 견적을 올렸다. 성인 음치 교정을 해주는 사람을 찾았다. 나를 치료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견적서가 왔다. 금액을 봤다.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약속을 잡았다.


당일날 취소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몸이 안 좋았던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가고 싶지 않았다. 두려워서인지, 귀찮아서인지, 아니면 굳이 고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인지. 그 경계가 잘 안 보인다. 지금도.


취소하고 나서 그 업체 프로필을 한참 더 봤다. 후기도 읽었다. 다들 좋아졌다고 했다. 나도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 생각이 든 김에 다시 약속을 잡지는 않았다.


음치라고 잘 살고 있다. 그것만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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