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갈 뻔한 밤
여자친구가 어느 날 서울에 가자고 했다.
이유는 크지 않았다.
여자친구 친한 언니가 나를 보고 싶어 했다.
그게 다였다. 그냥 기차를 탔다.
셋이서 만났다.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노래방도 갔다.
음치치고는 그나마 잘한다는 말도 거기서 들었다.
즐겁게 놀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 막차가 없어져 있었다.
언니 집도 서울이 아니었다.
그냥 만남의 장소가 서울이었을 뿐,
셋 다 갈 곳이 없었다.
모텔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 둘에 남자 하나는 방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는 묻지 않았다.
물어보는 게 더 이상한 것 같아서.
다음 모텔도 마찬가지였다.
셋이서 머리를 맞댔다.
둘이 먼저 들어가고 나머지 한 명이 한참 뒤에 따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결국 통했다. 그 밤을 그렇게 해결했다.
살다 보면 뜻밖의 방식으로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모텔이 아니다.
노래방이다.
노래방에서 여자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이었는지 전화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어쨌든 둘만 남은 그 잠깐 동안 친한 언니가 나한테 말했다.
여자친구 버리고 나랑 만나자고.
그때의 나는 순진했다.
진짜인 줄 알았다. 모든 게
그 순간에는 농담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없었다.
숨 막힐 정도로 예쁜 얼굴이었고 솔직히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고민이 됐다는 것을 여기 쓰는 게 맞는지 잠깐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이니까 쓴다.
순간 이런 사람이랑 사귀어보면 좋겠다는 고민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아니라고 해야만 할거 같아서 아니라고 했다.
여자친구가 돌아왔다. 그러자 언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얘가 나 까다고. 남자 하나는 잘 고른 것 같다고.
그때는 그냥 지나갔다. 나중에야 생각났다. 시험이었다는 것이.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아니었고, 상황을 만든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시험을 보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결과를 채점해 준 사람은 당사자가 아니었다.
시험이라고 알려주지 않는 시험이 더 많다.
외면이 아름다워도 결국은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교훈처럼 들려서.
그냥 그날, 그렇게 했다.
여자친구가 돌아올 것이었으니까.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냥 그때의 나는 그 선택을 했다.
그때는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냥 지나간 밤 하나가,
내 선택을 남기는 날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