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ha Jun 24. 2022

'성공하였습니다'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회사 밖에서 식사하려면 오고 가는 데만 30분 이상 걸린다. 되도록 식사를 빨리 마치고 조금이나마 휴식 시간을 즐기기 위해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려면 사원증에 현금을 미리 충전해둔다. 식당 입구에 설치된 카드리더기에 사원증을 가까이 대면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균형 잡힌 가정식 백반을 먹을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자연스럽게 갖다 댄 사원증에 카드리더기가 '실패하였습니다'라며 큰소리로 외친 것이다. 잔액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식당 입구에 늘어선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을 향했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나는 이파리가 모두 떨어진 한겨울의 나무처럼 처량하게 서 있었다. 동료 직원이 대신 결제해주었지만, 창피한 생각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하고서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갑작스레 '실패하였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니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라거나, '다시 한번 시도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표현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더 적절하고 의미 전달이 분명하며 오해의 소지가 없는 문장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였습니다'라니. 구내식당을 관리하는 부서에 건의해서 고치든지, 기계를 제작한 회사에 강력히 항의하든지 하고 싶었다. 점심 한 끼 먹는 일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다시 구내식당에 갔다. 전날 있었던 일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경제적이면서 영양 만점인 구내식당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충전한 사원증을 카드리더기에 자신 있게 내밀었다. 카드리더기는 '성공하였습니다'라며 큰소리로 외쳤다. 평소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나쳤던 소리가 새삼스레 귀에 꽂혔다. 매일 찾는 구내식당에서 '성공하였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늘 성공한 삶을 꿈꾸면서도 '성공하였습니다'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매일 성공하고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를 깨워서 학교에 보내는 성공. 지옥 같은 교통체증을 뚫고 출근하는 성공. 회사에서 처리하는 작은 업무들의 성공. 가족이 함께 따뜻한 집에서 잠들 수 있는 성공. 실패가 두려워 작은 실수에도 자책하고 예민해지기만 했던 나는 수많은 성공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예측하지 못하는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성공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오늘도 성공할 거야'라고 다짐하며 구내식당을 향한다. 카드리더기가 외치는 한마디 말에서 매일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가 그런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큰소리로 외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보고서 결재가 끝날 때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할 때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마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외친다.

  '성공하였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