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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나현 May 29. 2020

엄마와 책

내 외모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하얀 피부와 부리부리하고 커다란 눈, 낮은 콧대에다가 얇고 작은 입술까지...

커 가면서 더욱 더 닮아가는 것을 느낀다. 

어릴 때 보던 엄마 모습이 거울 속의 내 얼굴에서 보일 때면 반가움과 신기함이 뒤섞인 느낌이 든다.


엄마의 외적인 모습은 드문드문 사진처럼 정지된 화면으로 기억이 나지만 행동과 말투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엄마를 떠올리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여러 모습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책과 엄마다.


엄마는 텔레비전 보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 당시에 즐비했던 책 대여점에서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빌려서 하루종일 책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만화책을 읽고 엄마는 글밥이 가득한 소설책을 읽었다.

솔솔 나는 엄마 냄새를 맡으면서 엄마 옆에서 책을 읽는 순간이 정말 좋았다.

내가 읽던 만화책이 금방 다 끝나 버려도 책 읽는 엄마의 곁을 오래오래 떠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읽던 책들을 읽었는데 대부분의 책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읽었던 책의 줄거리를 더듬더듬 기억해가며 책 제목을 찾아내서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엄마가 조금 더 좋아졌다. 

그 책은 부부의 불임과 불륜을 다룬 이야기였는데, 유명한 문학상을 받은 소설이었다.

초등학생에게 그 책은 읽어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럴 때마다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고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물어봤는데도 엄마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단 한 번도 짜증내거나 귀찮아하지 않고 최대한 내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줬다. 또, 그런 책은 아이가 읽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읽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읽고, 지금 잘 모르더라도 나중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렇게 말해 준 엄마 덕분인지, 아니면 외모를 닮은 것처럼 성격도 닮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처럼 되어야겠다고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모르는 내용을 물어볼 수 있는 엄마와 함께 책을 읽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책 속에 파묻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았다. 특히 힘든 일이 생겨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면 더더욱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가 그토록 책에 파묻혔던 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서였을까?



대학교 입시를 할 때도 오로지 국어국문학과에만 원서를 썼다.

그냥 책이 좋아서. 그리고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고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을 때, 나중에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아주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엄마가 나에게 줬던 아름다운 기억과 따뜻한 사랑 덕분에 나는 이렇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해주고도 싶었다.



엄마가 아직도 책을 좋아할지 모르겠다. 

내가 책에 파묻혀 있던 이유처럼 엄마가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책을 좋아하고 여전히 무언가를 읽는 것을 좋아해서 브런치의 열혈 구독자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내 글을 엄마가 읽게 된다면 엄마가 어린 나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시시콜콜 설명해주고 싶다. 

그리고 엄마 옆에서 오랫동안 엄마 냄새를 맡으면서 같이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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