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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드곽 Nov 18. 2022

변화, 그 설레임

'이제 내 차롄가?‘

누구나 짤린다.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상사가 잠시 보잔다. 왠지 좋은 얘기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야외 정원에서 뵈시죠. 집무실이 조금 답답할 것 같네요." 나도 그냥 한번 툭 건드려 봤다.  

10분 여만에 밖으로 나온 상사의 표정이 묘하다. "다음 주 초에 조직 개편이 날 것 같은데 미리 말씀드리려고..." 멋쩍은 웃음을 주고받고 나는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구나 이런 때가 오는 거죠? 저라고 예외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서로의 눈빛과 마음이 다른 채로 대화는 한두 마디를 허공에 하고 짧게 마무리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짐을 싸고, 마치 몇 달간 준비한 연극무대처럼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닷새만에 사표를 내고 20년간의 직장생활의 매듭이 아닌 새로운 시간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퇴사의 전성시대

불과 몇 년 전까지 이런 장면에선 대부분 이렇게 전개되지는 않았다. 면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고, 이후 막연한 분노와 막막함이 몰려오고, 가족들이 떠오르고, 불면증에 뒤척이고, 부담스러운 주변의 시선과 싸우는 지리멸렬한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시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은 내가 뭔가 대단히 용감하고 특별해서는 아닐 것이다. 세상이 회사보다 훨씬 더 빨리 변화는 시대에 한 회사를 오래 다닌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막막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월급이 주는 안정감과 소진. 어찌 보면 그 틀 안에서 더 이상 배울 수 없고, 성장할 수 없음을 앎에도 스스로는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던게지.


신포도로 오해받을 용기

3년 전 먼저 퇴사한 선배가 퇴직하던 날 술자리에서 툭 던졌던 말이 생각이 났다. "철봉에서 손을 놓으면 마치 수십 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한 십 센티 정도네." 이런 넋두리가 여우의 신포도처럼 정신 승리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21c가 20% 넘게 지난 오늘은 변화를 오히려 기다리게 한다. 드라마처럼 사표를 하늘에 뿌리고 Bill Contu의 Gonna Fly Now(영화 록키의 테마송) 배경음악과 함께 힘차게 퇴장하는 멋진 가오는 없었으나, 막연한 설렘이 있었다.


'정말 수고했고, 스무 살 그날처럼 다시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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