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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드곽 Jan 08. 2023

퍼즐 맞추기가 즐겁습니까?

인생은 다나카처럼...

과정의 즐거움


"(짜증 난 목소리로) 이제 이 퍼즐 어떻게 할 거니?"

천 피스의 '라푼젤' 퍼즐을 놀랍게도 이틀 만에 맞춘 딸아이에게 물었다.

"글쎄, 맞추는 게 재밌어. 이거 엇다 둘진 잘 모르겠어." 하며 웃는다.


나의 퍼즐에 대한 추억들은 그다지 좋지 않다.


5년 전 가족들과 함께 떠난 이태리 여행의 백미, 미켈란 젤로의 천지창조, 바티칸 공간 내에서도 가장 신성하다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미켈란젤로가 무려 4년 동안 목과 피부에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며 그렸다는 전설의 천장화. 그 500년 전 천재 조각가가 화가로써의 첫 도전에서 완성한 문제적 역작. 그 벅찬 감동을 추스를 길이 없어 구매한 'The Original 2천 피스 천지창조 퍼즐'(한국의 유사 상품 대비 7배 비쌈).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의욕적으로 시작한 퍼즐은 봄에 시작하여 여름, 가을을 지나며 먼지가 쌓이고, 거실 마루 청소에 걸림돌로 자리매김 후 일부 피스가 진공청소기 등으로 유실되며 5부 능선을 채 넘지 못하고 결국 비싼 쓰레기로 운명을 다했다.


젤로 형의 '천지창조'의 감동을 내 손으로도 꼭 한번 재현해보고 싶었으나 의욕은 오래가지 못했고 무엇보다 과정이 즐겁지 못했다. 비슷비슷한 피스들을 수없이 골라내고 맞춰보고, 난이도가 낮은 외곽을 맞추고 나서는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오며 가며 하루에 한두 피스를 맞추고, 결국 몇 달을 그냥 방치하게 되었다.   


즐거움,
나와 아이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아이는 그 지난한 맞춤의 과정의 중심에 본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저 본인이 하고 싶었던 리스트 중 하나를 시간이 생겨 시도하고 그 과정이 소소히 즐겁고 작은 보람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 맞춘 퍼즐은 하루 만에 cool하게 부셔서 박스에 도로 담아서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나는 어떠했나? 아마도 그 감동의 소용돌이 속 타인의 시선을 무의식 중에 의식하지 않았을까? 이 멋진 천지창조를 우리 집의 거실이나 안방에 유럽여행의 흔적이 보이는 오리지널 대형 퍼즐로 액자에 넣어두고 혹시라도 집에 손님이 오면 뭔가 한마디 하고 싶었을 듯도 하다. "천지창조 실제로 보니 정말 감동이더라. 이거 무려 바티칸에서 수녀님한테 100불 주고 산 '오리지널'이야.", 'ㅋㅋㅋ 바티칸에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다 Made in China일 텐데...'


시작할 때의 지향점이 달랐다. 남들에게 보여줄 잿밥에만 관심이 있던 나는 과정의 주인이 아니었으니 과정이 지난했고 즐거울 리가 없었다.


잿밥에 관심이 있는 삶


사실 잿밥에 관심이 있는 삶은 그리 드물지만은 않다. 김연아나 손흥민을 보고 스포츠 스타가 장래희망 1위로 급상승하거나, 일반인 출신의 몇몇 스타 유튜버의 성공사례로 유료 온라인 교육시장에 뜨거워지거나, 주식이나 부동산의 상승장이 오면 도처에 숨은 고수들이 유/무료 오프라인 강의와 책을 판매하는 큰 장이 서고 어그로를 끌 수 있는 제목만으로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곤 한다. 우리 모두 과정을 떠나 즉각적이고 빠른 성공을 원한다.    


기획 1년, 캐릭터 데뷔 4년
무려 5년간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  


지난해부터 유튜브, 지상파, 케이블을 종횡무진하며 다나까라는 가짜 일본인 부캐로 유명해진 개그맨 김경욱. 나몰라 패밀리로 반짝했지만 개그맨으로서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대중은 없었다. 2000년식 샤기컷, 울프컷 헤어스타일에 알마니 빅로고 반팔 티셔츠를 입고, 루이비통 벨트를 매고 어설픈 일본어로 비호감 캐릭터를 만든 그.


최근 5년간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는 썩 좋지 않았다. 특히 '19년 아베정부의 반도체 핵심부품의 수출 통제로 촉발된 역대급의 일본상품 불매운동인 NO JAPAN운동이 격렬했다. 유니클로 주요 매장들의 문을 닫았고, 잘 나가던 렉서스 등 일본차들의 매출이 급감했다. 아예 일본 브랜드 차를 타고 거리를 나서기가 눈치 보일 정도였다. 김경욱의 다나까로써의 시간이 이 불매 운동의 시간과 겹친다. 물건을 사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던 시절, 무명 개그맨으로서 선택한 새로운 비호감 캐릭터(일본인 호스트바 선수)로 유튜브 안에서 4년을 살아 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라디오스타 22년 12월 방영분 중)

유세윤: "(다나카 씨가) 단시간에 뜬 줄 알았는데"

다나카: "이 짓거리를 4년 동안 했다.(2018년에 올린 첫 영상)"

김구라: "반응이 없을 수도 있는데 4년을 계속 밀었어?"  

다나카: "쏘오데스, 다나카를 하면서 내가 행복한 거니까, 하늘을 보면서 원망도 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반응그가 없어, 다나카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반응 안 해 줍니까..." 이 장면에서 고생한 사람들이 보이는 통상적인 슬픔을 짜내는 회상 장면이 전혀 없었다. 그 힘들었던 과정을 유쾌하게 표현하는 매우 MZ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깊은 감동을 주었다.  


가까이서 보면 모두 비극

반응이 없었던 4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훌쩍 나이를 먹었을 것이고, 같은 SBS출신의 또래 개그맨들의 성장과 성취를 묵묵히 지켜봤을 것이며, 캐릭터 포기를 고민도 했을 것이며, 예상치 못했던 역대급의 일본 불매 운동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다나카'로 살면서 스스로 행복했던 것, 그만이 느낄 수 있는 결과가 아닌 과정속에서의 행복과 우직함이 결국 보이지 않는 긴 시간의 터널 끝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대나무처럼 싹을 틔우고 커가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자수성가 스토리보다 신선하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격변의 시대, 불확실과 다양성의 시대, 낯선 것들의 시대, 소소하디 소소한 Ultra Micro Life의 시대.  


오직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자, 뿌리내리는 시간을 견디고, 빛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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