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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드곽 Dec 15. 2022

그대에게

그대를 추앙합니다


무슨 복인지 알 수 없으나, 어려서 부터 내 주변에 늘 우렁각시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꼼꼼치 못하고 피가 끓는 대로 사는 그저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의 인간이라 그랬을까? 기억도 채 다 못하지만 그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무심한 시간들이 많이도 흘렀다.


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큰 응원의 메시지가 되는지...


6년 전 내가 인도에서 긴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사무실의 공기와 주변의 시선은 군에 다녀온 '복학생'의 머쓱함, 월남전에 파병되었다가 돌아온 특수부대 출신'람보'의 처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잊혀졌던 사람, 늘 전화 넘어 목소리로만 존재하던 낯선 사람, 10년 전쯤의 시간에 멈춘 사람… 서울 본사에 근무하던 동료들에게 '귀임 주재원'이란 그렇게 짐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하필 왜 우리 팀으로 오셨을까요?' 하는 감출 수 없는 표정들.


후배들과의 어색하고 어색한 시간들이 조금이나마 덜 어색해지던 무렵, 한 친구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곽 님은 곧 다른 데로 가실 거잖아요?". 뭐 딱히 오라 하는 다른 팀도 없었지만 이 팀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니들이 이따구로 하는데 맘 붙이고 일할 수 있겠니...?‘를 굳이 티 내지 않으며 "그런 소문이 있어? 그런 소리 나는 못 들었는데. “로 일관되게 답을 해 주었다.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한 열 번쯤 돌림노래처럼 하며 서너 달이 흐르고 난 그 팀의 팀장으로 보직임명이 됐다. 속마음은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아마도 팀원들 대부분 심히 부담스러웠을 것이 분명했다.


팀원 중엔 아주 작고 시크한 여자 후배가 있었다.

도토리 키재기 하듯 고만 고만한 연차의 친구들 중에 선배 도토리 역할을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에 대한 대체적인 키워드는 '이기적인', '까칠한', '속을 알 수 없는' 등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실제로 그녀의 바디 랭귀지가 그러했다. 허공에 인사하기, 칼퇴하기, 회의 시간에 조용하기, 혼자 커피 갈아먹기, 늘 에너지 레벨이 매우 낮았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팀장이 되었을 무렵 몇 안 되는 팀원 중에 '에너지 있고', '소통이 좋은'  그 또래의 친구들 몇몇이 유학, 해외 주재, 이직 등으로 동시다발로 팀에서 사라졌다.  '아 XX, 가뜩이나 사방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복학생 팀장 놀이 외롭고 서글픈데, 차 떼고 포 떼고 일복만 터진 코딱지만 한 팀... 쉽지가 않네.' 신입사원 한 명과 최근에 입사한 경력직 한 명, 대기 발령에 가까운 귀임 주재원 몇을 빼고 나면 그 시크한 도토리와 나만 팀에 덩그러니 남았다.


'월남에서 돌아온 람보와 까칠한 도토리 복식 조'


불난 호떡집이 뻔한 그 팀의 일 년 후는 어땠을까?


하루하루 우당탕탕 좌충우돌이 없지 않았지만, 그 공포의 외인구단 팀은 경영진들을 잘 모시고, 아홉 개 국가에 진출한 열개가 넘는 해외법인들과 잘 소통하며 큰 구멍 내지 않고, 크고 작은 예민한 이벤트들을 무난하게 막아냈다. '에너지 레벨이 매우 낮은' 그녀와 나는 6인용짜리 구조용 고무보트를 둘이서 자리를 돌려가며 미친 듯이 노를 저어 최대한 뭍으로 향하고 또 향했다. '내일은 모르겠고, 오늘만 버텨보자.'란 맘으로...


함께 일을 하면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작은 도토리는 놀랍게도 일어, 중국어, 영어 삼개국어 동시 통번역이 가능한 언어 천재였다. 보고서를 거의 출판 도서 수준으로 격을 높이는 글쓰기 능력자였다. 아울러 여행사 수준의 출장 계획 수립과 변경 시 행정처리의 달인이었다. 도처에서 손님들이 본사를 방문하고 경영진들이 수시로 해외법인 방문을 하던 그 시절 의전과 출장이 일상인 상황에서 그녀의 손과 글, 언어는 정말 도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한폭탄들을 정말 깔끔하게 제거하고 물 밑에서 조용히 처리해 주었다.


'왜 이런 언어 천재, 일 천재가 그런 콜드 한 평가를 받았을까?'


이 작은 선배 도토리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래서 일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업무 속도가 다소 느리게 느껴진다. 본인의 작문 능력이나 완성도가 일반 직장인 수준을 뛰어넘다 보니 주변의 다른 도토리들의 날림공사가 눈에 잘 보였을 것이다. 참고 참다가 나온 한마디 한마디들은 매우 쉬크했을 것이며, 철없고 자존심 강한 어린 도토리들의 맘에 비수처럼 꽂혔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본인도 회의시간에 입을 닫게 되고, 다른 도토리들과 뭘 좀 같이 하게 되면 본인 스탠더드가 높다 보니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이러고도 월급 받니? 니들 썅...'


나와 둘이서 6인용 보트를 몰았던 그 시절, 이 도토리는 정말  보트의 여섯 자리를 뺑뺑 돌며 쉼 없이 노를 저었다. 나는 바지 사장으로 그 큰 보트가 속도와 상관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작은 도토리가 본인 생각과 속도에 맞춰 힘껏 노를 저을 수 있도록 지켜보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늘 보트에 함께 있음을 감사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색과 다른 향, 피고 지는 시기도 제각각, 때론 꽃, 때론 낙엽
같은 사람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어...'


모두가 우려했던 그녀와 함께 팀을 운영했던 그 소중하고 기적 같은 시간은 결과적으로 좋은 추억, 해피엔드였고, 그리 길지 않게 2년을 조금 넘겨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시간은 늘 냉정하고 무심하다. 좋은 시간도 계속 좋을 수 없고, 힘든 시간도 계속 힘들게 허락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평가 또한 냉정하고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제각각의 과녁에 꽂힌다.

누군가에겐 둘도 없이 좋은 사람, 누군가에겐 입이 가벼운 사람, 누군가에겐 재수 없는 사람, 누군가에겐 오지랖이 넓지만 정말 따뜻한 사람. 그 사람의 인생의 어떤 단면서 어떤 사람을 어떤 관계로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될 수 있는 고차 방정식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창 밖엔 눈이 제법 굵고 담담하게 내리고 있다. 문득 알 수없이 벅차고 감사하고 먹먹하다.


작은 도토리 그대


못난 선배가 잘해주는 것 없이 큰 짐만 지우게 하고 고생을 시켜 늘 미안했었다.

아이들이 커서 아빠가 거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직장에서 만난 선후배의 관계라는 것도 그러하다.


그늘이 넓은 큰 플라타너스 같던 선배의 존재는 어느덧 앙상한 겨울나무로 작아진다.


걸음마를 걷던 후배는 어느덧 훌쩍 선배 나무보다 키가 커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하다.


막연한 걱정은 부질없는 걱정으로 허무하게 마무리가 되고, 꿈을 꾼듯한 그 추억들은 오히려 오래 허락되지 않는다.  


새로운 시간 앞에선 그대


6년 전 그날의 격한 걱정의 시간처럼 모두의 우려와는 달리 또 한 번의 좋은 시간들이 이어질 것을 믿는다.


오히려 그 시절 '천재'인 그대를 내가 뒤늦게 발견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천재를 발견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삶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 다른 서로에게 되돌려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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