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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되는대로 May 11. 2024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斷想)

우리 잊지 말기로 해요


5월 초인데도 거리 벌써  땡볕 있다.


한강에서 갈라져 노원구로 이어지는 동부간선도로 중랑천 물길, 수량이 넉넉하고 깨끗한 물길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찾아간다.

행정구역 상 '서울특별시 성동구 송정동'이다.


'가람교'가 보이는 작은 둔치에는 벌써부터 혼란스럽게 쳐놓은 텐트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올망졸망하게 몰려 한가로운 강바람에 서로 의지해 졸고 있던 풀꽃들이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방문에 놀라 바람 없는데 흔들거렸다.


예뻤다.

연약해서 예뻤다. 그래서 사랑은 동정심과 비슷한 것이라고 하나보다.



오늘 있을 큰 행사평가하는 평가위원 자격으로 현장을 찾아가는 제법 험난한 길을 지나야 했다.

현장 교통통제로 곳곳이 차로 막힐 것이라는 말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게다가 목적지와 가장 지척인 한양대입구역에서 내려 3번 출구 밖으로 나오니 길이 복잡해서 처음에는 방향도 못 찾았다. 둔치 입구를 찾는 도 어려웠고 내려가서도 고불고불 구절양장이 따로 없더라.

가람교는 직선거리상으로는 가까웠지만, 사람 인연이 그렇듯, 그렇게 가까이에 두고 길을 돌고 돌아 2km의 땡볕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초행길이라 눈에 보는 것들이 새로우니 신선했고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 재미는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열차로 이동하는데 집에 가까워질수록 길이 익숙해지며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 그런 것도 아니다. 왠지 낯설고 뭔가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전에 매일 다니던 길이긴 했으나 근무지가 바뀌어 지나다니지 않다가 근 2년 만에 다시 지나게 되니 뭔가 좀 다른 느낌이다. 어느 승장 번호가 환승에 편리한 지점인지 어느 곳이 사람이 덜 타는 지점인지 알았는데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동 중에 객차 저편에서 한 무리의 일행들이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달리는 열차의 창밖을 응시하다 이들에게 시선을 돌린 나는 문득 머릿속에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처음에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어지기 좋은 지점에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잡목들과 바닥의 풀이 점점 사라지고 이동하기 좋은 상태로 변했다.

길이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그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른 위치에 더 필요한 길이 생기거나 이제는 그 길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되니 사람들 발걸음으로 다져져 단단했던 바닥이 다시 물러졌다. 풀도 나기 시작했다. 풀이 나니 잡목들도 자라기 시작했고 길게 이어졌던 노란 흙바닥은 더는 그냥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길이 있는 줄 알고 찾아왔던 사람들도  어진 걸 알고 돌아가버렸다.

길이 사라졌다.




사람 사이에도 마음의 길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이란 처음부터 서로 동할 수도 있고 한쪽이 먼저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감정이 연결되면 마음에도 길이 생긴다.


요즘 같은 sns 매체가 다양하게 사용되는 시대에는 마음 간 길을 연결할 방법들이 많다.

시대의 변화는 사람 간의 연결관계를 더욱 복잡하고 다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연락의 문제는 중요하다. 소통에 있어서 몸통이 되기 때문이다. 사업관계이든 친구나 연인관계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연결이 뭔가 어색하고 어설프다. 보통은 한쪽의 연락에 한쪽의 답은 뜨뜻미지근하다. 안부를 묻고 상대를 궁금해하는 연락에 뭔가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확인도 늦고 답도 늦다.


하지만 상황이 호전되어 서로 마음이 열리면 각별하고 친밀한 관계가 된다.  연락의 빈도는 점점 비중이 비슷해진다. 종종 나중에 역전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잘 연결된 관계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통계적으로는 비슷한 비중으로 수렴하게 된다.


그렇게 힘들게 이어진 연결도 끝이 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유로 인해 관계가 약해지고 둘 사이의 길이 닫힐 무렵이 되면 그들의 문제(감정)를 제일 먼저 드러내는 것이 연락이다. 연락의 확인이 점점 늦어지고 답장이 늦어지고 그러다가 뜸해지면서 이윽고 닫히게 된다. 그래서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집중해야 할 사안이 연락문제인 경우도 있다.


'인연은 우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다.'




사내격언 중 상당히 과격하지만 꽤 깊은 통찰을 주는 표현이 있다. '직장 내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승포자(승진포기자)'라는 말이다. 그는 직장에서 더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바라는 게 없기에 어떤 쓴소리든 다 하고 윗사람 눈치도 보지 않게 된다. 바라는 없다는 필요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굽신거리거나 무서울 게 없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이러한 점을 들어 인간관계의 본질을 중하게 꼬집었다.


하지만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는 판도라가 있다. 그것 '진심'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계에 어떤 위기가 왔을 때 그들이 그동안 진심을 통해 쌓아 놓았던 "애착(집착 X)"이 그것이다. 애착이 가장 강한 관계는 가족 간의 관계이다. 애착은 사랑의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이다. 숭고한 마음이다. 관계를 궁극적으로 지켜주는 힘이다. 관계에서 나 자신과 상대에게 진심이었을 때 나를 다독거려 돌이키게 하고 상처받은 상대에게 위로를 주거나 견디게 할 힘이 되는 인생이 부여해 주는 선물이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모든 위기는 견디면 지나가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에너지는 파동의 형태를 그리며 움직인다.
세상을 운행하는 모든 힘에는 주기가 있어
강해졌다가 약해지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힘든 때를 견뎌내야 하고 행복한 때에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관계란 종종 힘이 들기도 하고 아픔이 되기도 하다.


'인연은 우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다.




https://youtu.be/TV-U45a4Auk?si=8lPHUQWyv5JrNba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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